A부서로 출근한 첫날, 아끼는 정장을 차려입고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출입문을 열었다. 너무 조용했다. 혹시 오늘이 휴일인가. 다들 어디 갔나?
말이 안 되지만 상황을 이해하려면 어떤 거라도 갖다 붙여야 했다. 조심스레 두세 걸음 걷는데 누군가 소리를 들었는지 고개를 들었다. 나를 발견한 팀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알은체를 했다. 그리고 연이어 파티션 위로 고개를 든 팀장 셋이 덩달아 일어났다. 팀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은 9시 5분 전, 나는 팀장들에게 원래 이렇게 늦게 오냐고 물었고, 팀장들은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되었노라 했다. 거짓말처럼 이삼 분을 남겨놓고 팀원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에게 최대한 친절하게 ‘어서 오세요.’라는 인사를 건넸지만 돌아오는 것은 소리없이 까닥이는 고개짓이었다.
나는 인사를 굉장히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다. 출근하면서 최대한 낭랑한 목소리로 직원들에게 안부를 묻고 자리에 앉는 게 하루의 시작이었다. 나에게 깊은 영감을 준 상사들이 그랬다. 힘차게 출입문을 밀면서 환한 미소와 함께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를 감히 거역할 수 없었다. 그 아우라는 일에 지친 누군가에게는 큰 활력소가 되었고, 다음 단계로 건너갈 수 있는 브리지가 되었다. ‘힘들어도 잘해 보자고’를 수시로 외치면서 어떻게든 끌고 가려는 리더십이 멋져 보였다.
얼마 전까지도 그런 카리스마가 조직을 잘 이끌어 가고 그것이 리더의 정석인 것처럼 퍼져 있었다. 바로 직전 선배들까지 그럭저럭 비슷한 분위기로 ‘리더 대접’을 잘 받고 나갔다. 나도 이렇게 해야만 되는 걸로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다. 내가 배웠을 당시 조직과 지금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한 부서에 MZ세대에게 ‘나를 따르라 식’의 일방적인 끌고 감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임홍택의 『90년생이 온다』에서 말했듯이 90년 대생들이 신입 사원으로 입사하게 된 지금은 더 이상 권위와 통제가 통하지 않는다. 예전의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는 거다. 사소하지만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가치관에 경고등이 켜졌다. 전체적으로 침체된 것처럼 보이는 나의 부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래서 든 생각이 ‘누가 좀 과장 매뉴얼 좀 만들어 주면 좋겠다.’였다. 가끔 정말 궁금하면 선임 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조언을 듣기도 했지만 상황도 다르고 성향도 다르니 참고는 하지만 따라갈 수는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그래도 뭐라도 해야 하지 않냐고 나 자신을 부추겼다. 그래서 나름 괜찮은 부서장이 되려는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나는 부서장이 되면 저절로 권위가 따라온다고 생각했다. 내가 9급이었을 때 5급이던 부서장이 얼마나 어렵고 무서웠는가를 떠올리면서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직급은 아무런 영향도 힘도 없다. 그 사람이 존경받을 수 있는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 사람인지에 따라 ‘추앙’의 여부가 결정된다.
조직 내에 어떤 인물의 전문성, 경험, 지식 등을 그 사람의 권위로 인정하고 이를 수용하고 따라가는 현상을 두고 '권위의 수용'이라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카리스마 리더십 유형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권위가 인정받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수년에 걸친 일관적인 태도, 존경할 만한 업적과 덕망을 주변으로부터 인정받았을 때 저절로 고개가 숙여져야 된다. 나는 그저 직급만 올라가면 생기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출·퇴근 인사도 내가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과장 대우를 받고 싶은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했다. 그렇게 보아하니 그냥 ‘꼰대스러운 과장’이 되기에 꼭 합당한 조건이었다.
늦은 오후,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다. 목이 말라왔다. 컴을 들고 정수기로 가려고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 쭉 둘러보니 일하는 직원들의 등과 이마가 보였다. 하나같이 고개를 모니터에 고정한 채 등의 움직임은 거의 없다. 어느 시인은 등은 표정이 살아있는 또 하나의 얼굴, 싸늘하게 닫힌 문이라고 했던가. 칸칸이 나눠진 네모난 공간에서 등을 동 그렇게 말고 자판을 두드리는 그들은 마치 밤을 기다리는 쥐며느리 같다. 이들과 친해지려면 시간이 걸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