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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행시 Dec 11. 2022

인사하고 헤어짐

김영하 <작별인사>

  ‘머지않아 너는 모든 것을 잊게 될 것이고,

   머지않아 모두가 너를 잊게 될 것이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작별인사』는 김영하 작가가 『살인자의 기억법』이후 구 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이다. 처음 책의 제목을 만났을 때 사실 조금 구태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꽤나 읽히는 책의 제목들이 유행어를 패러디한 듯한 구성에 이미 길들여져서 일까? 난데없이 심플한 네 글자는 무성의하게 보였다. 독자의 생각을 읽었는지 작가는 친절하게 제목을 정한 이유를 에필로그에 밝혔다.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진다. 그리고 이 말이 거자필반(去者必返), ‘헤어진 사람은 반드시 만난다.’라는 말과 쌍을 이루고 있다. 많이들 알고 있지만 사실 유래는 여기서 처음 접했다. 열반을 예고한 석가모니가 이를 슬퍼하는 제자 아난을 위로하며 한 말이라고 하는데 단순히 위로의 말이 아닌 듯하다.     


 곰곰이 문구를 헤아려 봤다. 사람은 모두 죽기 마련인데 이승에서는 헤어져 만날 수 없지만 죽은 다음의 세계인 저승의 삶은 알 수 없으니 어쩌면 그곳에서는 만날 수도 있지 않겠냐는 회유의 말이지 아니었을까. 자신의 죽음에 대한 객관화와 슬퍼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일말의 희망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심오하다. 이 참에『법구경』도 읽어보면 좋을 것 같기는 하지만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서 일단 패스.     


 소설은 수많은 작별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처럼 키워졌지만 결코 인간이 아닌 기계와 실제 인간, 그리고 매일 업그레이드되는 인공지능들 틈에서 우리의 삶은 무엇이고 어디로 향하는지를 묻고 있다.   

   

 책을 읽기 힘들어진 세상, 나는 내 손안에 모든 정보가 들어있는 스마트폰을 보면서 가끔 무섭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좋아하는 브런치 북을 매일 들여다보며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마음 힐링을 하면서도 이 것 때문에 내 글을 쓸 시간은 빼앗겨 버린다는 푸념 조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작품을 눈 깜짝할 사이 내놓은 김영하 작가도 그런 생각을 했을까? 책의 말미에 주인공 철이를 만든 최박사의 고백이 눈에 띈다.


 ‘나는 일찍이 인류가 인공지능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했지. 그건 맞았어. 그러나 인간이 이렇게 무기력하게 문명을 포기할 줄은 몰랐단다. 그건 내가 틀렸지. 인간은 이제 지적인 면에서 인공지능의 발끝도 따라갈 수 없고, 언젠가 인공지능은 우리가 컴퓨터 하드디스크의 불필요한 파일들을 삭제하듯 아무 쓸모 없어진 인간 뇌를 싹 지워버릴 거야,’


 스마트폰, 유튜브나 쇼핑앱들을 보고 있으면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게 나의 시간이 사라져 버린다. 그래도 도저히 손가락을 치울 수가 없다. 뭔가 자꾸 더 보고 싶어지게 하는 것들. 생각은 없어지고 욕구만 생겼다. 하루 종일 원고지와 책만 들여다볼 것 같은 작가마저도 스마트폰의 괴물 같은 마력을 거부할 수 없음을 고백한 것은 아닐까.


 가능한 글을 쓸 때는 스마트폰은 멀찌감치 놓아야 한다. 물론 숙련된 사람들, 스마트폰의 유혹 따위에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그럴 필요가 없겠지만. 여하튼 나는 전자와 같은 환경을 일부러 만들어야 한다.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책 속에서 어려운 단어가 나왔다고 스마트폰에서 단어를 검색하기 시작하면서 이미 독서는 끝났다. 검색이 끝났음에도 나의 손과 눈은 책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책과 이별이 시작된 것이다.


 삼일을 들여 간신히 읽기를 끝내고 글을 쓰기 위해 스마트폰은 다른 방에 두고 왔다. 예고된 작별이었다.


 방금 전 나는 '이별'과 '작별', 두 단어를 모두 사용했다. 차이가 있던가. 이쯤에서 이별(離別)과 작별(作別)을 찾아봤다. 둘 다 사람이나 다른 것과의 헤어짐을 뜻하는 말이지만 이별은 '서로 갈라져 헤어짐', 작별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헤어짐'으로 되어 있다.


 한자(漢字)까지 확인해보니 같은 헤어짐이지만 이별은 '너 갈 길 가고, 나 갈 길 간다'라는 의미로 읽힌다. 반면에 작별은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서로에게 예의를 갖추고 서로 잘 되기를 바란다'는 의미까지 느껴진다. 같은 말이지만 '작별'에서 오는 느낌,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과 굉장히 잘 어우러진다.


 이 책은 언뜻 보면 공상과학소설로 읽히기 쉽지만 성인에게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 인간은 그 영특함으로 문명을 발전시키고 인공지능을 창조했지만 결국에는 그 인공지능에 의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잃고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게 되며, 결국에는 인류가 멸망하는 결과를 자초한다는 내용이다.


 진부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등장인물의 대화에서 우리 자신을 향한 원초적 질문이 나온다.

"누구는 디지털 마약으로 현실을 잊고, 누군가는 무모하게 맞서 싸우다가 미치고, 누군가는 나처럼 이렇게 세상의 바깥에서 은신하고..."


  삶에 뚜렷한 대안은 없다. 괴로울 때는 현실을 잊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고, 정의를 위해 싸울 필요가 있을 때는 당당히 나서야 할 테고, 나로 인해 내 가족이나 가까운 누군가가 상처를 입을지도 모른다면 은신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 순간들이 찾아올 때 나는 사람 또는 뭔가와 '이별' 또는 '작별'을 할 것이다.


매년 12월 말쯤이면 공직사회 내부도 싱숭생숭하다. 내년 1월 초 정기인사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민선시장이 바뀌었고, 첫 번째 대규모 인사라면 지역 주민들도 흥미롭게 지켜본다. 새 주인이 야심 차게 준비한 조직개편과 인적 쇄신을 하겠다며 이리저리 자리를 바꿔대는 통에 어느 누군가는 쓸데없이 편을 가른다.


 그대로 있을 것인지. 옮길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느닷없는 인사에 놀라지 말고 함께 했던 동료들, 선배들과 훈훈한 작별의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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