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판에 담긴 주꾸미 볶음을 한 젓가락 집어 들고 입에 넣는 순간, 정말로 생각지도 않게 남편 얼굴이 떠올랐다. 유난히 주꾸미를 좋아하는 그가, 이걸 먹어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렇게 맛있는 걸 나 혼자 먹게 되다니. 생각지도 않게 목이 메여왔다.
누가 보면 애절한 사연이 있나 보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건 아니다. 남편은 아주 멀쩡한 상태로 스스로 한량임을 행복해하며 시골 방구석에 틀어박혀 유튜브로 세월아, 네월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명퇴를 하지 않았다면 내가 앉은 이 자리에서 그도 이 맛있는 주꾸미를 먹고 있었을 텐데, 아쉽지만 그는 지금 3년 차 농업경영인이다.
남편이 지방공무원 7급 고참쯤 되었을 때 전 직원 등산대회가 있었다. 지금은 화합대회니 단합대회니 해도 등산보다는 양궁카페나 볼링 등 실내에서 조용히, 그것도 싫다 하면 밥만 먹고 헤어지지만. 나 때는 그랬다.
사실 등산대회라기보다는 먹기 대회, 그저 회식 분위기였다. 산 중턱마다 판을 벌여놓고 오며 가며, 이 부서 저 부서 직원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즐거움을 나눴다. 산바람과 안주 바람을 동시에 맞아가며 어우렁 더우렁, 그러다가 흥에 겨운 누군가는 노래를 힘껏 부르기도 했다.
남편이 동료들과 민원과 옆을 지날 때였다. 직원들과 술을 드시던 민원과장님이 남편을 불렀다. 그분은 전에 남편이 모셨던 분이다. 남편은 본디 술을 좋아하지 않지만 거절할 수가 없어 쭈뼛 쭈뼛 종이컵을 내밀었단다. 한 잔을 들이켜자 과장님이 “옛다~”하며 안주로 말린 주꾸미 한 개를 주시더란다. 쓴 소주맛을 희석시키려고 냉큼 받아 한 입 깨무는데 ‘어~ 이게 뭐야?’하면 섬광이 스치는데, 태어나서 그렇게 맛있는 주꾸미는 처음이었다고.
얼마나 입에 맞았던지. 남편은 자리를 뜨지 못하고 아예 철퍼덕 앉아버렸다.
그 주꾸미는 평소 낚시를 좋아하는 민원과장님이 직접 잡아 준비한 것이다. 주꾸미를 손질해서 소금 간을 한 후에 그물망에 넣어 며칠간 통풍으로 적당히 말리고 다시 거두어 차곡차곡 비닐팩에 담아 냉동실에 보관했다.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찜기에 넣고 찐 후 도시락통에 찹찹이 담아 온다고 했다.
그런 정성이 들어서 인지 맛도 좋았나 보다. 남편은 한 개라도 더 먹고 싶은 마음에 자리를 잡았지만 워낙 탐내는 사람은 많고 주꾸미는 부족했다. 그 와중에 과장님이 규칙을 만든 게 소주 한 잔에 주꾸미 한 개였다.
얼마나 주꾸미가 먹고 싶었는지 남편은 마시지도 못하면서 연거푸 두 번이나 소주잔을 내밀었고 하사품으로 주꾸미 2개를 받은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합 소주 세 잔을 마신 남편은 그날 어떻게 산을 내려왔는지도 기억을 못 했지만 그때만 해도 동료애가 남아 있던 터라 서로 챙겨줘서 무사히 집으로 배달되었다.
남편은 20년도 더 된 일이지만 주꾸미를 볼 때마다 타령을 했다. 호기심에 시장에서 사다가 과장님의 레시피를 따라 해 봤지만 어림도 없었다. 어느 만큼이 소금이 들어가야 하는지를 모르니 어느 때는 짜서 못 먹고, 어느 때는 곰팡이가 피어 푸르뎅뎅했다. 아직도 미스터리 한 말린 주꾸미의 맛.
물론 오늘 먹은 구내식당 메뉴는 주꾸미 볶음이었다. 얼마나 잘 볶았는지 윗니와 아랫니에 부담 없이 곱게 씹히는 데다 혀 끝에 감칠맛과 주꾸미향이 기분 좋게 밀려왔다. 이런 맛을 나만 보고 있자니 혼자 부엌에 앉아 밥 한 그릇과 총각김치를 베어 물고 있을 남편이 생각난 거다.
‘그 사람도 주꾸미 좋아하는데.’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남편을 생각하고 있다니. 이건 확실히 미친 게 틀림없다.
아니면 나이를 먹어 철이 들은 건지. 이제 기댈 사람이 그 밖에 없다고 깨달은 건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가끔 아파트 거실에 그와 단 둘이 앉아 있을 때가 많아지면서 저 불량하고 불성실한 남편마저 없으면 어찌 사나 싶은 생각이 불현듯 들 때가 있다.
언젠가 나도 이렇게 부드럽고 씹히는 맛이 좋은 주꾸미 볶음을 성공할 때가 오겠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지 모르겠지만 진달래 피고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따뜻한 봄날, 제철 주꾸미를 사다가 잘 한 번 말려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