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문이 왔다. 2023년 6월 28일 자로 시행되는 ‘만 나이 통일법(행정기본법 및 민법 일부 개정법률)‘ 의 적용을 안내하고 있다. 그동안 많은 논란이 있었던 나이 계산에 대한 확실한 해법이다. 자신의 나이를 얘기할 때 법적 나이냐, 실제 집 나이냐를 곰곰이 따지는 불편한 일들이 없어졌다.
계산법은 단순하다. 생일이 지났는지 지나지 않았는지에 따라 조금 다르다. 생일이 지나지 않았다면 지금 연도에서 내가 태어난 연도를 뺀 후 거기서 1을 한 번 더 빼면 된다. 그리고 생일이 지났다면 연도에서 태어난 해를 빼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아직 생일이 돌아오지 않은 아기는 개월수로 말하면 된다.
가령 예를 들어 2023년 3월 1일 기준으로 내가 태어난 때가 1983년 12월 3일이라면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았으니 2023에서 1983을 빼고 1을 한 번 더 빼니까 내 나이는 39세, 아직 40세가 되지 않은 거다. 앞자리의 숫자가 낮을수록 좋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사람에 따라 다르다. 물론 안타깝게도 나의 진짜 나이는 아니다.
이렇게 계산을 해보니 정년퇴직까지 7년이 남았다. 물론 사람 일은 알 수가 없어 그전에 명예퇴직이나 조기 퇴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7년 후, 나는 공직자가 아니게 된다. 나도 주민등록과 실제 생년이 달라 어렴풋하게 정년 시기를 고민해 왔다. 법적 연령이 기준이지만 좀 빨리 나가야 되는 것은 아닌지 싶은 거다. 아무도 그만 다니라고 종용하지는 않지만 변화를 따라잡기에 버거워졌다. 그렇다면 당연히 빨리 나가야 되는 것이 아니냐고 할지 모른다.
아니다. 나는 아직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몇 가지 있다. 늦은 출산으로 아직 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있다. 연금이 나올 텐데 뭐가 걱정이냐고 하겠지만 2008년 공무원연금법 개정으로 원래 받을 금액에서 3, 40만 원이 줄어들었다. 퇴직하면 건강보험도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면서 월보수액의 7.09%의 보험료를 내야 한다. 그 기준에 의하면 내 연금액이 2백5십만 원일 때 18만 원의 건강보험료를 내야 하고, 2만 원의 장기요양급여를 포함하면 20만 원을 내야 한다. 거기에 기본적으로 아파트관리비, 가스요금, 아직 다 치르지 못한 보험료 등을 제하면 실제 가용재원은 1백5십만 원을 웃돈다. 물가가 올랐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먼저 퇴직한 남편도 처음에는 남는 듯도 하더니 지금은 한 달 연금이 고스란히 소비로 이어지더라고 했다. 사람 만나는 것도 고민하게 된다고. 그렇다고 모든 만남과 취미생활을 끊을 수는 없지 않은가. 사람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산다. 자발적 고립이 아니라면 굳이 모든 연결을 중단시킬 필요는 없다. 때문에 돈을 써야 한다.
이제 남은 7년 동안 나는 무엇으로 은퇴 이후까지 끌고갈 지를 고민한다. 큰돈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몇 십만 원의 용돈벌이라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선배들 중에는 간병인, 장애인 도우미, 우체국 택배포장, 아파트 경비, 산불감시원 등 건강한 신체만 있다면 가능한 일들을 찾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간다. 동기들과 모여 은퇴 이후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그런 일이라도 하는 선배들이 부럽다는 말을 한다.
물론 정말 60세 이후, 아무런 소득이 없는 사람에 비한다면 어린아이 투정 같은 이야기다. 배부른 소리인 줄 안다. 나는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을 믿고 싶지만 쉽게 동화되지는 않는다. 언젠가 TV프로그램에서 장년층 기타 자작곡이 소개될 때 '너는 늙어봤냐? 나는 늙어봤다.'라는 가사를 듣고 빵터졌던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이게 무슨 소린가 했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도전의 효과를 의심하고 실패에 대한 회복이 더디다는 데 있다. 정희진은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 』에서 지금 세대 갈등이라고 불리는 현상은 청년과 중년의 갈등이 아니라 계급 문제라고 했다. 20대는 어떤 부모를 두었는가에 따라 계급이 달라진다. '부모가 가난한 젊은이'는 경제적으로 불안하고 억울하다. 그리고 전문직이나 부동산 부자를 뺀 대부분의 50대는 나이 들수록 취업 기회, 자신감, 건강 같은 자원을 잃고 가난해지므로 세대갈등은 어리석으니 각자 나이를 감당해야 한다고 했다.
한때 혈기 왕성했던 시기에는 시간이 더디 간다고 짜증을 부렸는데 지금은 시간 가는 게 너무 무섭다. 그런 무섬증이 생길 즈음, 공식적으로 한 살을 더 얻었으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결국은 내 스스로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