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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행시 Mar 13. 2023

살기 좋은 마을

다문화가정이 없는 마을?

  작은 마을에서 민원이 들어왔다. 마을의 이런저런 일들을 해주던 마을국장 자리가 공석이 된 지 일 년이 되었다고 했다. 지난해 까지는 언제고 다시 배치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었지만 올해는 예산도 없어졌다 하니 '큰 일'이라는 거다. 이번에 새로 이장이 되었다는 마을 어르신은 한참이나 볼 맨 소리로 푸념을 늘어놓았다. 마을 일을 봐주던 사람이 갑자기 없어졌으니 이장님도 곤란하실 것 같다며 추임새를 넣고 조용히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담당자를 불러 자초지종을 물었다.


 우리 부서에서 인건비를 지원한 적은 없었다. 보통 지방자치단체에 인건비를 포함한 사업비가 내려오는 경우는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추진하는 대규모 단위사업이거나 지자체의 특수목적 달성을 위한 프로젝트다. 그렇다면 마을에서 인력을 운용했다는 것은 뭔가 특별한 사업을 수행중이거나 공모사업에 선정되었다는 얘기다.  


 마을 이장도 아니고 '마을 국장'이라니, 이런 직책이 있을 수 있는 건가? 다음날 담당직원과 마을에 출장을 갔다. 시내에서 출발해서 큰 도로를 타고 십오 분쯤 가다 오른쪽 깜빡이를 켜고 좁은 마을길로 들어섰다. 마을은 이백미터 정도 완만한 오르막 경사의 끝 지점에 있었다.  언덕을 오를 때는 몰랐는데 그 언덕에서 다시 마을 안 길을 따라 내려서는데 '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마을의 생김새가 이탈리아 콜로세움 안에 있는 경기장 같다.  중심을 이루는 가운데 부분은 논바닥 이었지만 그 논을 중심으로 나선형으로 길이 나 있고, 그 길을 따라 띄엄띄엄 집들이 있다. 낮은 지붕에 색깔도 다양했다. 2시, 막무가내로 쏟아지는 햇볕에게 점령당한 집들의 앞 마당은 한가롭고 따스해 보였다. 마을 중심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건물이 마을회관이었다. 회관 옥상에는 태극기와 새마을기가 나란히 펄렁거리고 있다.


 회관 안으로 들어가니 책상과 의자가 빼곡하다. 대부분은 의자가 없이 그냥 맨바닥인데 이곳은 주민수에 맞게 의자를 마련해 놓았나 보다. 전화 통화를 했다던 이장님은 악수를 청하는 나를 보더니 쑥스럽게 웃었다. 사람이 얼굴을 보지 않고 이야기를 하면 어쩔 수 없이 오류를 낳을 수밖에 없나 보다. 그렇게 볼 맨 것 같던 이장님의 목소리는 너무나 부드러워 나긋나긋하기까지 하다.


 이장님은 어제에 이어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이 마을에 큰 자랑거리가 있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자랑거리, 마을의 풍광, 콜로세움 경기장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우리 마을에는 다문화가 없어. 여기는 다 한국사람끼리 살아. 흐흐흐"


  설마... 내가 잘 못 들었나?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그래도 귀를 기울였다.

  이장님은 나의 경청에 매우 흡족해하면서 여러 번 '다문화 없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마을에 사는 주민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했다. 누구네는 서울서 직장 생활하다 귀촌한 부부이고, 누구 누구네는 부모님이 사시던 집터를 부수고 다시 새 집을 지어 장남이 들어와 농사를 짓고 있으며, 어디는 전원주택을 예쁘게 지어놓고 주말에만 놀러 오는 이들이 있었다. 그렇게 해도 100명도 안 되는 작은 마을이었다.


 들어보니 대부분 장. 노년층이다. 다문화 가정이 이루어질 연령층이 형성되지 못했다. 결혼이민 여성이 있다는 것은 그래도 아직은 젊은 층들이 있다는 건데, 이 마을은 이미 오래전부터 고령화가 진행된 것이었다. 이런 걸 자랑으로 여기는 이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은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 국장도 우리 부서의 사업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지난해 농촌체험마을로 선정되면서 간사를 일시적으로 고용했던 것이다.  한떄 'oo마을'이 유행하면서 농촌지역은 마을 만들기가 성행이었다. 범죄 없는 마을, 문화마을, 꽃피는 마을, 창조적 마을 등등 종류도 많고 사업도 많았다. 이런 사업들이 모두 인건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것은 사업내용에 따라 인력운영도 가능했다.


 그분의 일도 그런 경로로 채용된 일자리였지만 1년 게약기간을 채우더니 그만 나오겠다고 하더란다. 말로는 시내에 다른 일자리가 생겼다고 했지만 여기처럼 편하고 좋은 자리도 없는데 왜 그만두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 이장님 옆에 앉아 계신 노인회장님의 말씀이었다.


 하지만 그 편하고 만만했던 꿀보직은 벌써 6개월이 지났지만 채워지지 않았다. 채용공고를 내고 도와줄 만한 이들에게 개인적으로 부탁을 했지만 오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그걸 나보고 해결해야 한다고 이장님은 졸랐다. 내 업무가 인력 소개도 아니고 우리 부서의 사업비로 하는 일도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권한 없는 행위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한참 이야기를 듣다가 자세히 알아보고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기로 사무실로 복귀했다. 그리고 체험마을을 담당하는 직원과 통화했다. 그쪽 담당직원도 난감한 상황이었다. 채용된 간사는 당초 체험마을을 만드는 일인 줄 알고 왔는데 시간이 갈수록 체험마을에 대한 의지는 없고, 그저 할아버지, 할머니들 뒤수발만 하러 다녔다고 했다는 것이다.


 사무실에 앉아 농촌체험마을 홈페이지를 만들고, 신청자 모집을 하는 일을 해야 하는데, 걸핏하면 마을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와서 문자를 읽어 달라고 하고, TV가 안 나온다고 고쳐달라고 하는 등 업무와 상관없는 일들로 하루하루를 보냈다고 한다. 뭐 인정 많고 다정한 어르신들이라 얻어먹는 것도 많고 일에 비해 보수도 괜찮았지만 아직 젊은 그녀는 커리어가 필요했다.


 결국 마을에서 원하는 사람은 전문가가 아니라 주민들의 생활을 도와주는 서비스 인력인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전문 커리어가 필요했다. 전형적인 미스매칭이었다.


 작은 시골마을의 미스매칭 일자리 고리를 끊을 사람은 마을 주민들이다.  '다문화 가정'이 없다는 것은 결코 자랑이 될 수 없다. 외국인 근로자가 없으면 농사도 지을 수 없게 된 마당에 배타성을 드러낸 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나는 우리나라의 인구가 줄고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도 줄어드는 줄 알았다. 아니다. 세계의 인구는 자꾸 늘어나고 있다. 이제 100억의 인구를 내다본다고 한다. 그렇다면 마을일을 봐주는 간사든 사무국장이든 이제 외국인일 가능성은 더 많아진 것은 아닌가. 시골마을에서 외국인을 만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다.


 그동안 무슨무슨 마을을 만든다고 배경에는 주민교육이 포함된다. 대부분  마을사람들이 원하는 내용으로 이뤄지는데 가끔은 변화의 시대,

타인과의 어울림을 생각하는 분야도 포함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다양한 문화를 경험한 사람들이 다양한 활동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마을 말이다. 그래서  마을 만들기는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늦은 오후 나는 이장님에게 전화를 했다. 1년간 고용할 예산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고 필요하다면 청년일자리나 공공근로인력을 신청하시라 했다. 좀 야박하지만 사실이었다.


 그리고 정말 소심하게 몇마디를 했다. 다문화가정이 많아졌고 흔한 일이다. 다문화가정 없다는 것을 자랑하면 마을의 인심이 각박한 것처럼 들린다고. 이장님 반응이 걱정됐지만 다행스럽게도 웃으며 받아 주신다.

봄꽃이 피면 또 오라고. 넵.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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