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후, 퇴직을 앞둔 실장님이 차나 한 잔 하자고 했다. 마침 공모사업 브리핑도 끝나고 추가 경정 예산 심의도 마친 때라 여유가 있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내가 참 냉정하다는 걸 다시 확인했다. 한때 부서장으로 모셨던 분이고 내가 업무로 힘든 시기에 심적으로 큰 도움을 받았음에도 그 시기가 지나면 대번 대번하게 여겼다. 마치 나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이 자리를 보존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모니터 아래 작은 거울 속에 내가 보인다. ‘너는 우째 그러니?’
휴대전화를 챙기고 씁쓸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본관과 별관을 잇는 구름다리를 지난다. 봄이라는 계절이 성큼 다가왔는데도 햇살은 어딘가로 도망가고 하늘에 구름이 가득하다. 날씨도 참 냉정하구나.
예전 실장님이 계실 때와 다름없는 구조였다. 방 주인은 빠르면 6개월, 길어야 1년 반 만에 바뀌었다. 잠시 머물다 가는 자리라 특별히 바꿀 필요가 없을 테지만 키 작은 나에게 테이블이 너무 높았다. 실장님은 여전히 따스했다. 훌훌 털고 나갈 일만 남은 말년의 공직자 모습이 저렇구나.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잠깐 생각했다.
흰 바탕에 금테를 두른 도자기 찻 잔에 홍삼차가 담겨 있다. 잔 아래 작은 접시에는 찻잔 바닥만 한 크기의 도일리 페이퍼가 놓여있다. 도자기나 유리로 된 찻잔은 받침 접시에 잔을 내려놓으면 아무리 조심해도 소리가 난다. 그래서 점잖은 자리에는 찻 잔 아래 종이나 천으로 만든 조각을 깔아 놓는다. 이럴 때 쓰라고 요런 소품까지 생산하다니 참 세밀한 경제다. 잔 소리까지 흡수해야 하는 귀한 말들이 얼마나 된다고. 그러고 보니 내가 아는 ‘잔소리’가 혹시 여기 ‘잔 소리’에서 유래되었는가 싶다. 싱겁기는.
우리는 주로 과거 이야기를 했다. 함께 근무했던 때를 상기하면서 웃음과 회환이 담긴 에피소드를 각자가 기억하는 방식으로 내놓았다 넣었다를 반복하면서 이십여분을 보냈다. 이윽고 실장님은 “실은~ ” 하면서 내게 정작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시책사업을 홍보하기 위한 캠페인이 있었다. 그 행사를 주관했던 부서는 실장님이 오래전에 근무했던 곳이고 대부분 직원들도 오랫동안 한솥밥을 먹은 사람들이었다. 대견하고 흐뭇했다. 행사가 끝나고 직원들에게 다가가 수고했다면서 악수를 나누는데 다음 차례에 있던 직원이 고개를 외면한 채 갑자기 몸을 돌려 휑하니 가버리더란다. 미처 못 보았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가까운 거리였고 마찬가지로 뭇사람들이 못 본척하기에 너무나도 황당한 풍경이었다.
실장은 무안해진 손을 얼른 거두었지만 순간 모멸감이 훅 치고 올라왔다. 다행히 다른 직원이 다가와 말을 걸어주었기에 망정이지, 실장은 손님들만 아니었다면 그냥 사무실로 들어오고 싶었다고. 괜히 ‘날씨가 춥네’를 반복하며 무안했던 오른손 위에 왼손을 가져다 놓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 이야기를 나에게 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나와도 관련이 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그와 나는 승진 경합을 했다. 나이는 어렸지만 공직 입문이 1년 빨랐고 성실했다. 내게는 그저 운이 좋았을 따름인데 그가 명단에 자기 이름이 없는 걸 알고는 그 자리서 그만둔다는 말까지 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는 며칠 휴가를 다녀왔을 뿐이었다.
공교롭게도 당시 실장님은 나의 부서장이었고 경합자와는 한 부서에서 10년을 같이 했다. 세월과 인연으로 씨실과 날실을 만들어 입을 거리를 짜낸다면 내 것은 짧은 목도리, 경합자는 두꺼운 스웨터를 넉근히 지어낼 만큼 차이가 컸다. 실장님이 고민이 많았음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실장님 자신도 결정권자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실장님과 나를 좋지 않게 이야기하고 다녔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상처가 컸을 테니.
벌써 3년 전 일이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승진을 못했다. 갑작스러운 사고나 명퇴로 승진 기회가 불쑥 생겼지만 그의 이름을 찾을 수가 없었다. 5급은 '관리자'라는 책무가 있어 교육도 필수로 받게 되었다. 때문에 미리 사전의결로 승진예정자를 결정한다.
나와의 경합 이후 여러 번 의결이 있었음에도 그의 이름은 없었다. 처음 두 번은 없는 게 다행이었다. 바로 승진을 했더라면 내가 정말 훼방꾼인 게 증명되니 말이다. 하지만 세 번, 네 번, 나와의 경합이 무색해진 때에도 그의 이름은 모니터 밖을 벗어났다. 다섯 번, 여섯 번, 이제는 그의 이름이 있기를 바란다. 내가 착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가 승진을 한다고 나를 반길 일은 없지만.
실장님도 나도 이제 그의 승진에는 아주 먼 타인에 불과했다. 그런데 왜 그는 승진이 안될까? 실장님은 경합자의 냉담함이 자신에게만 쏠린 것인지 알고 싶어 했다.
승진을 하고 일 년쯤 지났을 때 청사 마당에서 그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는 당연히 내 눈을 피하느라 고개를 돌렸지만 나는 머리를 숙여 인사하며 안부까지 물었다.
오래전 그와 한 부서에 있었다. 즐겁고 편안했다. 그에게 내가 그걸 기억하고 있노라고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순전히 내 기준으로. 하지만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나를 지나쳤고 나는 허공에 대고 인사하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보긴 했지만 인사하느라 흐트러진 앞머리를 메 만지며 내 길을 갔다. 모멸감을 느꼈고 그 장면이 오래 기억됐다.시간이 지나모멸의 색이 바래기는 했지만 여전히 잔상처럼 남았다.
내 이야기를 들은 실장님은 그제야 '아~'하는 소리와 함께 긴 숨을 쉬었다. 이제는 오히려 내가 먼저 외면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가 힘들다는 것을 그렇게 표현하는 거겠지. 실장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침묵했다.
똑똑하는 소리와 동시에 문이 열리더니 건장한 남자 한 명이 문 밖에 서 있다. 미팅 예약이 있었나 보다. 급히 실장님께 인사를 하고 나왔다. 밖까지 따라 나온 실장님이 퇴직 전에 부를 테니 시간을 내어 달라 한다. 대답대신 황송한 듯 고개를 숙였다.
김혜진은 <나는 가끔 나의 안부를 묻곤 해 > '마음의 속도'에서 '비슷한 상처를 받아도 어떤 사람은 뒤돌아 걸으며 잊어버리고, 어떤 사람은 종일 마음속에 담아두며 결국 밤을 새우기도 하듯 우리는 자신만의 걸음 속도로 제각각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라고 했다.
나는 확실히 후자다. 실장님도 그렇지 않을까. 모든 것이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난데없는 닥친 찜찜함을 불편해하는 것. 밤을 새우지는 않겠지 만 긴 시간 속에 퇴색되길 기다리는수밖에.
다시 본관과 별관 사이 구름다리를 지난다. 복도 창 밖으로 넓은 청사 마당이 보인다.
문득, 그날 나는 미안함과 겸손을 보이고 싶었지만 상대는 그마저도 '가진 자의 오만'으로 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