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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바라봐

변하는 감정

by 지원

그는 늘 그곳에 있었다.


그의 머릿결은 부드러워 보였으며 달빛에 반사되어 빛이 났다. 눈동자는 허공을 보는 듯 멍하고 몽롱해 보였다. 그는 혼자만의 공간에 있는 듯했다. 늘 조용하고 느릿했으며 옷만 바뀌는 동상 같았다. 마치 누군가를 그리워하듯 긴 한숨과 함께 한 번씩 밤하늘을 볼 뿐이었다.


나는 달빛을 맞으며 공원을 쉼 없이 달렸다. 누군가에게 쫓기듯 빠르게 달리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해가 지면 찾아오는 적적한 외로움이 단골같이 찾아왔다. 집에만 있으면 숨이 막히듯 조여 오고 갑갑해져 무작정 달리기를 시작했다. 달리다 보면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달리고 또 달렸다. 어느 날은 가쁜 숨에 쉼이 필요해 잠깐 멈췄을 때 먼 곳을 응시하는 그를 봤다. 달리는 나의 순간을 조금씩 조금씩 그가 차지했다. 나는 매일 같은 곳을 달리고 그는 매일 같은 곳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거기서 나는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어느 날은 집에 터덜거리며 돌아오는 길에 그의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무슨 이유로 그곳에 매일 있는지, 왜 같은 곳만 보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갑자기 드는 생각에 내일은 말을 걸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다음 날, 여느 때와 같이 러닝화를 신고 또 달렸다. 평소보다 공원은 더 한적했으며 바람이 은은하게 날렸다. 그리고 벤치엔 여전히 그가 있었다. 사색에 잠긴듯한 그 표정은 여전했다. 나는 그의 시간을 존중하고자 몇 바퀴 더 뛰고 말을 걸기로 했다. 사실 그의 시간을 침범하는 건 지금 하나 나중에 하나 똑같긴 하지만 내가 느끼기엔 다르니까


세 바퀴를 달렸나 벤치에 앉아있는 그의 표정은 변함없었다. 늘 같은 자세 같은 표정이라 동상인데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러다 눈물을 훔치는 그를 보며 사람이 맞긴 하네 하고 다가갔다. 너무 가까이 앉기엔 벤치가 꽤나 길어 그냥 끄트머리에 앉았다. 옆에 사람이 앉는 인기척이 들릴 텐데 그는 미동이 없었다. 차분한 풀벌레 소리만 우리를 감싸 안았다.


막상 앉으니 말을 걸기 머뭇거려졌다. 늘 용기 없는 내가 무슨 용기가 생겨 여기 앉아있는지 내 행동이 놀라웠다. 그래서 나도 그냥 달을 바라봤다. 달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평온했다. 바람을 느낄 수 있었고 작은 연못의 소리가 더 잘 들렸다.


“오늘도 달이 참 이쁘죠?”

그 고요함을 깬 건 그였다. 달을 바라보던 내게 선뜻 말을 건넸다. 갑자기 전해오는 낮은 목소리의 울림은 나를 놀라게 했다. 그가 말을 걸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 나의 심장은 쿵쿵 뜀박질을 했다.


“이쁘네요”

긴장한 내 심장을 무시하고 차분한 척 대답했다.


“공원을 달리는 분이시죠?”

내가 그를 봤던 것처럼 그가 나를 보고 있었다. 혹시 내 시선을 들킨 건 아닌가 불안해졌다.


“네, 달리고 나면 덜 외롭더라고요”


“아, 그래서 달리시는 거였구나. 저는 달이 너무 이쁘길래 제일 잘 보이는 곳에서 관찰해요. 보고 있으면 아무런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일종의 취미죠 “


이 말과 함께 그는 유쾌하게 웃었다. 그가 웃는데 약간 화가 났다. 달이 이뻐서 밤을 즐기기 위함이었다니, 나와 같이 외로워서 하는 줄 알았건만. 취미라고 웃는 모습에 배신감이 들었다. 나와 같이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인가, 외로운 사람이 저기 또 한 명 있네 생각하며 달렸던 시간들이 나에게 위로였던 탓일까 착각이라는 생각에 허무함이 밀려왔다. 그래서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말이 없는 시선에 그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달을 바라보았다. 그의 당황스러운 듯한 행동에 나도 아차 싶어 고개를 돌렸다.


부끄러웠다. 내 멋대로 그를 관찰하고 판단한 게 그로 인해 생긴 약간의 배신감이,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었다. 얼른 여기를 도망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무슨 생각으로 여기 앉은 거지. 착각이지만, 외로워 보였던 그에게 동질감을 느껴 나도 외롭다고 이야기해주려 했나. 당신만 외로워하는 게 아니라고 위로해주고 싶었던 것인가. 그렇게 되뇌며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다가 다시 말의 공허함을 깬 건 그였다.

“달이 매일 달라져요. 세상이 매일 바뀌는 것처럼 당신의 감정도 매일 달라질 거예요 당신의 외로움도 변하길 원할테니까요. “


이 이야기를 듣고 그가 달만 보고 있던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은 외로움보단 다정함이 더 끌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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