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나지만 아이가 걱정되었다. 아직 8살인 어린 딸은 아무것도 못 먹은 채 거의 탈수에 가까운 상태로 며칠을 보냈다. 지인에게 근처 병원을 소개받아 1월 1일 아침부터 부지런히 찾아갔는데 코로나 증상 중에는 설사가 있기 때문에 진료를 안 봐준단다. 큰 병원으로 가라는 이야기에 또다시 수소문해서 대학 어린이 병원을 찾아갔다.
중국에서는 휴대폰으로 결재도 하고 택시도 부르고 버스도 타지만 이제 막 중국에 도착한 우리는 아무것도 할 줄 몰랐다. 급한 마음에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봤더니 그냥 지나가는 택시를 손으로 부르라고 한다. 그건 나도 알아 이 사람아.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했냐고? 결국 손으로 지나가는 택시를 불렀다. 방법이 있나. 할 줄을 모르는데..
어린이 병원 앞 풍선 아저씨, 고생한 아이에게 쿨하게 선물
아이는 병원에 가서 피검사와 대변 검사를 했다. 결과는 로타바이러스. 전염병이기 때문에 정부에 보고를 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완치가 되면 완치확인서를 받아서 학교에 다닐 수 있다고 한다.
아이의 새로운 학기를 맞추느라 한국에서도 학기를 못 마치고 서둘러 들어왔는데 기운이 쭉 빠졌다. 그래도 일단 낫고 보자. 그다음에 생각하자.
약도 먹고, 죽도 만들어 먹고, 집에서 쉬면서 나는 며칠 만에 회복을 했지만 면역력이 떨어져서인지 아이는 도통 낫지가 않았다. 2주간 이어지는 설사에 아이는 병원을 세 번이나 가서 다시 검사를 했고 긴 병치레 끝에 결국 완치 판정을 받았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28일간의 자가격리에 이어진 2주간의 로타 바이러스와의 싸움.
몸도 마음도 지친 데다가 새로운 곳에서의 적응도 힘겨웠던 우리는 매우 예민해져 있었다. 아이와 나는 매일 실랑이를 했고 사소한 일에도 마음이 상했다. 아이는 대부분 자기가 이해할 수 있도록 상황을 설명해주고 설득해주던 엄마가 중국에 오고 나니 너무도 단호하고 자기를 이해해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중국에 온 후 엄마가 변했다며 엄마가 싫다고 했다.
코로나 검사장이나 병원에서 검사나 진료를 볼 때 내가 보이는 단호한 태도에도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 낯선 환경에서 나도 긴장도가 최고조로 올라가 있는 데다가 아직은 나도 환자였다. 그런데도 아이를 케어하기 위해 참고 해야할 일을 하고 있는데 계속해서 어리광만 부리는 아이에게 나도 서운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힘든 건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학교를 가고, 나도 내 시간을 보내고 아빠도 회사에 가는 평범하고도 소중한 일상이 너무도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