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로 찾아간 심리상담 센터는 상담사가 기껏해야 나보다 5살 정도 많아 보이는 남자였다. 처음 전화로 예약했을 때 여자와 통화를 해서 당연히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남자가 있어서 당황스러웠지만 성별에 상담이 달라지겠나 싶어 일단 상담을 시작했다.
내가 왜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 어떤 증상들과 어떤 불안함들이 있었는지 그간의 과정을 설명하는 동안 가빴던 숨은 차분해지고 혼자 마음고생을 해서인지 눈물도 흘렀다. 남자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듣고만 있었다. 중간중간 어떤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하기도 했다. 첫 상담이어서 깊은 상담으로 진행되지는 않았고 앞으로 상담을 본격적으로 진행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상담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면 어린 시절부터 기억이 나는 모든 일들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했다. 하나도 빠짐없이. 말하고 싶지 않은 과거가 있다면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그것도 이야기해야 제대로 상담을 해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잠깐 고민을 했다. 이 사람에게 상담을 계속 받을지 말지. 그리고 오늘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하다고 하고 연락을 드리겠다고 하고 나왔다.
내가 상담을 마치고 건너편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이 남자가 커피를 한잔 사러 왔다가 만난다면? 주말에 마트에 장을 보러 갔는데 이 사람이 건너편에서 가족들과 야채를 고르고 있다면? 한동네에 사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라이프 스타일이 겹칠 것만 같은 남자에게 지금껏 말 못 하던 힘들었던 일들이나 지금 삶의 어려움이 다 털어놓아질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다간 본격적인 상담은 받지도 못하고 맞는 상담센터 찾느라 돈만 수억 날리겠네 하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얼마 후 나는 다른 상담센터를 찾았다. 대형서점만 있던 한참 때와 달리 요즘 동네책방이 곳곳에 생기는데 우리 동네에 있는 대학가 앞에도 작은 동네서점이 있었다. 한번 들러본 적이 있는데 거의 심리와 철학에 대한 책들 위주의 서점이고 심리 상담도 이루어진다고 했다. 우연히 지나가다 들렀고 그날 바로 상담을 예약했다.
그리고 상담을 처음 간 날, 따뜻한 인상으로 나를 맞이해주던 상담 선생님을 만났다. 처음 상담을 갔던 때처럼 내가 왜 여기를 왔는지 또 구구절절 설명을 했는데 처음과는 다른 안정감을 느꼈다. 그리고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듣으며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당한 리액션으로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셨다.
그리고 나는 다음 주에도, 그다음 주에도 몇 달간 그곳에서 상담을 받았다. 정신과는 진료 예약을 취소했다. 처음 상담을 갔던 곳에서 말하고 싶지 않았던 어릴 적 상처는, 묻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레 이야기가 나왔다. 힘들었겠다 다독여주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 위로해 주는 사람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입 밖으로 꺼낸 이후 그동안 몇십 년간 나를 누르던 무거운 상처는 놀랍게도 많이 가벼워져 있었다.
내과에서 처방해준 신경 안정제도 상담사의 조언에 따라 얼마간 복용을 했다. 그리고 나의 증상은 점차 없어졌다. 무겁고 힘든 이야기들을 초반에 털어놓았더니 상담을 하면서 우는 일도 점점 줄어들었다.
명상치료, 음악치료, 미술치료 등을 병행하며 상담을 받았고 어느덧 웃으며 들어가서 웃으며 나오는 날도 많아졌다. 아이의 방학으로 인해 자연스레 상담을 마치고 얼마간의 휴식 후 다시 연락을 하기로 하고 상담실을 나왔다.
그리고 아이의 방학과 함께 코로나로 인한 온라인 수업, 중국으로 발령이 결정되어 준비해야 할 것들이 쏟아지며 나는 상담을 잊고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