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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공황장애 3

사회 불안 장애

by 유니스K

이번에는 정말로 병원을 가야 할 것 같았다.


얼마 후면 한국을 떠나기 때문에 치료할 거라면 하루라도 빨리 약을 먹기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취소했던 병원을 다시 찾았다. 나는 이병원 저 병원을 다니며 했던, 세 번째 네 번째 몇 번째인지도 모를, 왜 내가 여기 왔는지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했다. 영혼 없는 리액션의 의사에 조금 당황하기도 했지만 더 이상의 선택지가 없다는 생각에 나는 의사를 믿고 이야기를 해 나갔다. 불안증세가 아주 약간 있어 보이긴 하지만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 검사가 필요하다는 의사의 코멘트와 함께 상담은 끝났고, 나는 다른 방에서 수십 장에 달하는 우울증 및 기타 검사지를 작성했다.


일주일 후 의사는 나의 결과지를 가지고 상담을 시작했다. 문지와 30분 이야기 한 걸 근거로 의사는 나의 진단을 일명 사회 불안 장애라고 명했다.


내가 왜?? 물음표가 계속 생겼다. 나는 육아가 힘들 뿐이고 지금 중국에 가는 문제로 정신이 없다고요. 주변 사람들과는 문제가 없어요. 마음속으로 부정했다. 이거 어디선가 봤던 슬픔의 5단계 중에 첫 단계인 '부정'인가? 내가 지금 의사의 진단을 부정하고 있는 건가? 감히 전문가인 의사의 말을 부정할 자격이 내가 있나? 어느 것이든 각 분야의 전문가에 대한 무한신뢰를 가지고 있던 나인데 나조차도 내가 낯설다. 막상 나한테 닥치면 나도 별수 없구나 라는 생각에 헛웃음도 나왔다.


짚고 넘어가자면, 사회 불안장애란 사회생활 중 일어나는 다양한 상황에서 겪는 불안한 감정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평범한 일을 하면서도 불편감을 느끼는 것이다. 누구나 어느 정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것이 사회생활에 영향을 미칠 때 아마 장애라고 부르고 병원을 찾게 되는 것 같다.


걱정이 너무 많아. 너무 예민해. 그게 싫었다면 진작에 이야기해주지..

내가 종종 들었던 말들이다.


일반적인 사회 불안 장애의 증상이라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상황에서도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거나, 미래의 일에 대한 과잉 걱정, 일상생활에 지장이 오는 수준으로 사회적인 상황을 피하는 경우 등이 있다고 한다.


설문을 할 때 반복되는 질문이 있었다.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어떤지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약간씩 문장을 비틀어가며 같은 질문이 반복되어 나온다. 결론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떠냐는 것이다. 나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왔다. 물론 사람들과의 만남을 즐기지는 않는다. 특히 말이 많고 일명 기 센 사람들을 만나면 정말 기가 빨리는 느낌을 느끼면서 두통이 시작된다. 그래서 오래된 편한 사람들을 주로 만나고, 새로운 모임에 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이게 몸에 증상이 나타날 정도로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좀 재수 없게 들리겠지만 내가 그렇게 비호감의 인상은 아니다. 한 친구가 너는 사람들한테 호감형인데 왜 그렇게 사람들을 피해?라고 한 적이 있었다. 약간 우쭐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왜 사람들을 피했을까? 단순히 내향적인 사람이고 조용한 성격이라서라고 할 수는 없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말을 하고 모임에서 혼자 있는 사람을 보면 옆에 가서 밝게 이야기를 나누며 분위기를 좋게 만들어보려고 한다. 그런데 사실 원치 않는 관계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상대방에게 끌려간다는 느낌을 받으면 관계가 더 이상 유지하기 싫어진다.


결혼을 해서도 같은 문제가 있었다. 결혼 초기 누구나 그렇듯 착하고 예쁜 며느리 모드가 장착되었다. 그런데 나는 자주 찾아뵙지도, 자주 전화하지도 않고, 내가 할 일은 내가 결정해서 내가 하는 스타일로 살아왔던지라 안 하던 짓을 하니 나중에는 점점 버거워졌다. 주말에 오는 시부모님의 전화는 부담스러웠고 나와 남편 둘이 결정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을 같이 상의하고 싶어 하시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생겼다. 말은 못 했지만 전화기에 시부모님 번호가 뜨면 심장이 두근거렸다.


거절에 대한 책에 노래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사람들은 거절하기 어려워한다. 그리고 이제 거절할 일은 거절하는 게 미덕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나 역시 싫은 티를 못 내서 지속된 관계에 크게 상처받은 경험도 있다. 단순히 부탁을 거절하는 것뿐만 아니라 받기 싫은 감정을 계속 받아내는 것도, 하기 싫은데 하기 싫다고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도 다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것이고 나도 그렇게 오래간 살아왔던 것 같다.


나는 이게 불편해,라고 한번 말하고 그 관계가 깨지는지 더 깊어지는지 경험해 볼 기회도 없이 불편감을 참으며 관계를 유지하거나 자연스레 그 관계를 정리할 타이밍을 보다가 적절한 시기에 관계를 정리했다.


신경 정신과에서 상담을 하며 주변 친구들 이야기, 가족들 이야기, 아이를 키우며 느꼈던 이야기들을 하며 나도 자연스레 조금씩 나에 대해 알아가고 있었다.


나는 사실 외향적인 편은 아니라는 것, 아주 제한적인 관계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지만 타인이 생각하는 나의 그런 모습이 사회생활 중에 나도 모르게 나온다는 것이었다. 일종에 기대감에 부응하는 모습일지 내가 바라던 나의 모습일지는 모르겠지만 남들이 볼 때는 활동적이고 사교적으로 보이는 모습이 사실 내 본모습은 아니라는 거였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애써온 모습들이 나를 힘들게 했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내가 번아웃이 와서 이런 신체적인 이상증세가 나타났다고 생각해왔었다. 육아에 집중하다가 이제 아이가 학교를 가며 어느 정도 마음이 풀어지며 나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고 허무함을 느끼고 그러다 보니 우울감이 생겼다.라고 스스로 진단을 내렸었다.


나를 몇 번 보지도 않은 정신과 의사의 말을 백 프로 믿는 건 아니지만 아이를 낳고 기른 8년의 시간이 아니라 나의 문제는 훨씬 그 이전부터 차곡차곡 쌓여갔던 것 같았다.


의사의 조언대로 항정신성 약을 먹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루 반알씩, 그리고 하루 한 알씩, 증세가 나아지지 않거나 심한 어려움을 느낄 때 가끔 신경안정제도 먹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을 받으며 중국에서도 어떻게 약을 계속 먹고 어떻게 약을 끊어야 할지도 상의를 했다. 다시 가기 시작하던 심리 상담소도 계속 다니며 상담을 했다.


중국에 가기 전 준비로 안 그래도 바쁜 몇 달인데 일주일에 정신과와 심리상담소를 한 번씩 가고 안과며 내과며 치과며 병원들 투어 하며 약을 미리 처방받고 하다 보니 정말 미칠 듯이 바빴다. 코로나 상황이다 보니 외국인 초청장이나 비자 관련된 일도 매일 변화가 생겼고 비자가 안 나올지도 모른다는 초조함도 더해 갔다. 차라리 빨리 중국에 도착해서 해야 할 일 없이 격리 시설에 들어가서 푹 쉬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힘에 부쳤다. 그렇지만 결국 출국 날이 다가왔고 나는 의사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약을 가지고 나중에는 반으로 잘라먹으며 3개월 정도를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약도 다 먹고 이제 약 없이도 불안증세가 없다고 생각할 즈음에 예상치 못한 공황 증세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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