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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공황장애 4

매일매일 극복하기

by 유니스K

반쪽짜리 남은 우울증 약과 신경안정제를 입에 털어 넣고 일단 어떻게든 가라앉히려고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한 방에 있는 것은 아이와 아이 친구, 아이 친구의 엄마이다. 아이 친구의 엄마는 아직 나의 상황을 모르고, 또 특히 아이가 불안함을 느끼지 않게 하고 싶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어서 이 터널을 빠져나가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이런 걸 공황증세라고 하는구나! 하는 강렬한 느낌을 받은 게 처음인 데다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공포감으로 온몸의 세포가 곤두섰다. 정신 차리자,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안 죽어 이런 말을 속으로 계속 반복했던 것 같다. 그리고 다행히 그러다가 잠이 들었는지 깨보니 새벽이었다. 뒤척거리는 아이를 내 침대로 데려와 이불을 덮어주며 다시 잠이 들었고 그리고 아침이 되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아이들은 또 신나게 뛰어놀았고 엄마들은 반갑게 모닝커피를 내려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나 말고는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버스에서도 불안감이 다시 올라왔다. 이미 뭔가 느낌을 경험했기 때문에 대중교통이나 사람이 많은 곳에서 갑작스레 공황장애 증상이 나타났다는 경험들은 이제 남 이야기가 아니었다. 두통이 지끈거려 두통약을 먹었다. 도시 간 이동은 격리가 의무이기 때문에 회사에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기숙사에서 지내며 출퇴근하는 남편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오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남편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은 나도 알고 그도 알고 있었다. 이야기를 해봐야 서로에게 당장 좋을 것이 없어 보여서 말하지 않기로 했다. 남편은 이럴 거면 중국에 괜히 왔나 하는 이야기를 종종 했는데 아마 남편의 회사 때문에 오게 된 것이라 어느 정도 책임감을 느껴서인 것 같다. 같이 상의해서 한 결정이고 내 몸이 이런 것도 그 사람의 탓이 아닌데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싫었다.


나는 일단 가까이 지내는 엄마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만약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도움을 요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혼자가 아니라 아이와 함께 있고 지금은 아이의 유일한 보호자는 나 하나뿐이니 정말 말 그대로 이웃사촌들이 서로 돕고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두 명의 아이 친구 엄마들과 조용히 따로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을 때 이야기를 털어놨다. 사실 그날 공황 증세가 나타났고 그날 이후 불안한 마음이 생겼다고, 혹시 내가 도움이 필요할 일이 생기면 아이를 좀 부탁한다고. 그리고 유튜브와 인터넷으로 공황 증세가 나타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찾아보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두 번째 공황 증상이 나타났다.


아이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았는데 이미 내가 도착했을 때는 10명이 넘는 아이들과 엄마들이 있었고 갑자기 쏟아져오는 청각의 자극으로 나는 그 공간에 도착한 순간 심장이 두근거리고 어지러워 도저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그날따라 약간 컨디션이 떨어지는 것 같아 두세 개 남은 반쪽짜리 우울증 약 중 하나를 먹고 갔는데도 이미 그 남은 약은 나에게는 별 효과가 없었던 것 같았다.


옆에 있던 친구 엄마의 손을 잡아달라 해서 잡았지만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아 빈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멀리 떠드는 소리, 엄마들이 저녁 준비하는 소리 이런저런 소리들이 문 밖으로 멀리 들리고 빨래며 장난감이 있는 빈 방에 앉아 거울에 비치는 나를 보는데 내 모습이 바깥세상과는 말할 수 없는 거리감이 들었다. 그리고 가만히 한참을 앉아있는데 갑자기 주르륵하더니 눈물이 흘렀다. 그대로 앉아 있었다. 눈물을 닦지도 않고 그냥 앉아서 기다렸다. 어느새 눈물도 멈추고 미칠 듯이 뛰던 심장도 조금씩 가라앉았다. 화장실에 가서 얼굴을 정리하고 다시 테이블에 앉았는데 나 혼자 멀리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었다. 이제 아이들의 소음도 괴롭게 자극적이지 않았고 같이 음식을 나눠먹으며 시시껄렁한 농담도 주고받았다. 한 고비를 넘기는 데 내 손을 잡아주고 따뜻한 차를 내려주고 빈 방에서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배려해준 친구 엄마들은 이제 아이 친구 엄마를 넘어서 내 친구가 되었다.


공황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명상,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그 증상이나 상황에 더 빠져들기보다는 어떤 다른 일을 생각하며 벗어나는 방법을 추천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파스타를 만드는 과정을 냄비에 물을 붓고, 불을 켠 다음 물이 끓으면 파스타를 넣고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꽃을 만지며 그 시간을 오롯이 혼자 조용히 보내는 걸 제일 좋아한다. 그래서 상상을 해보기로 했다. 먼저 꽃을 넣을 꽃 통에 물을 채우는 것부터 시작한다. 꽃을 한 단 씩 꺼내 꽃 통에 한 단씩 넣어놓고, 가위와 나이프를 준비한다. 음악을 틀거나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보통 밤에 혼자 드라마를 틀어놓고 이어폰으로 들으며 작업하는 걸 좋아하니 조명도 좀 낮추는 게 좋겠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 정말 진정이 될지 아직 해본 적은 없다. 더 이상 증상이 발현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이제 부정할 수만은 없으니까, 준비를 해보기로 했다.


코로나로 인해 중국의 병원들은 문을 닫았다. 정신과 상담은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언어의 장벽으로 쉽지 않은데 병원조차 갈 곳이 없으니 이제는 약도 없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마음을 굳게 먹고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는 것.


내가 그렇게도 힘들어했던 인간관계에서 또다시 치유를 받고 내 솔직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 곁에서 힘든 시기를 함께 견뎌내는 것, 그리고 나를 믿어 보는 것. 그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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