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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씅쭌모 Sep 23. 2024

속 깊은 20대 아들이 엄마랑 대화한대요(1)

친절과 긍휼

  건강 회복을 위해 올해 휴직을 했다. 대학생인 큰 아이도 휴학중이라 대화할 시간이 많아졌다. 때로는 아무말 대잔치같은 맥락없는 수다를 떨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마치 평소에 사유하는 사람들처럼 진지한 모드로 얘기하기도 한다. 꽤 알맹이가 있어보이는 대화를 할 때는 기록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대화내용을 기록한다는 건, 상대의 동의도 필요한 부분이니만큼 아들의 허락을 구했다. 기록한 것을 전체 공유하는 것에 대해 말이다. 예상과는 다르게 흔쾌히 동의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어차피 엄마가 하려고 했다면, 끝까지 설득할 것이 분명할텐데 그 과정에서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현인같은 대답에 놀라기도 했고 미안하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의 짧은 대화는 당분간 글로 기록될 것이다.



<친절과 긍휼에 대해서>

  엘리베이터에서 '방 문' 정도 크기로 보이는 커다란 석고보드를 등에 지고 타시는 어르신을 봤어. 한 개만 가지고 타는 줄 알고 '닫힘' 버튼을 눌렀는데,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을 손으로 여시면서 두 번째 보드를 가지러 가시는 거야. 기다려달라는 등의 어떤 말씀도 하지 않으셔서 '닫힘'을 누른 건데 죄송한 마음이 들더라. 그래서 엄마가 먼저 말을 걸었지.

  "많이 무겁죠?" (당연히 무거운건데 그런 질문을 하다니......)

  "한 개에 10kg 됩니다."
  "땀을 많이 흘리시네요. 더워서 더 힘드시죠?"
  '뭐야, 힘든 것을 굳이 확인해야 하나?'

  왜 자꾸 이상한 질문만 하게 되지? 차라리 아무말도 안하는 것이 나을 뻔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냥 난, 어르신께 말을 걸고 싶었던 거 같아. 그래도 선한 어르신은 대답을 해주셨어.

  "이건 땀도 아니예요. 한참 더울 땐 줄줄 흘렀어요. 근데 이젠 힘들어서 이 일도 못할 거 같아요. 배운게 이거라서 이 나이까지 계속합니다." 라고 말씀하셨어.
  "석고 보드는 어디에 쓰는 거예요?"

  "벽에 붙입니다."
  그렇게 짧은 대화를 마치고 1층에서 내리실 때 '열림' 버튼을 계속 누르고 있었지. 어르신께서 고맙다고 말씀하시더라. 엄마는 좀더 친절을 베풀고 싶어서 "같이 들어드릴까요?" 여쭈었는데 괜찮다고 하시더라고. 아파트 단지를 나오면서 기분이 좋았어. 콧노래가 절로 나오더라.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낯선 분께 말을 걸었다는 거, 그리고 뭔가를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는 것이 뿌듯했던 거 같아. 그런데 그런 긍정적인 생각도 잠시 뿐, 내가 한 행위가 참으로 선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지 의심이 들더라. 갑자기 '동정'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거야. 내가 뿌듯하게 여겼던 마음이 어떤 감정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그게 궁금했던거지.
  너는 엄마가 오늘 느낀 마음이나 행동이 어떤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하니?


  

  엄마가 석고보드를 등에 지신 아저씨께 말을 건넨 것은 '미안함'이나 '민망함'에서 비롯됐을 거라고 생각해요. 만약 아저씨께서 한 개의 보드만 가지고 엘리베이터에 타셨다면 대화가 오가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저는 이 지점에서 엄마가 느끼신 '긍휼'이라는 마음이 어떤 감정의 기반에서 온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어요. 감정의 흐름을 예측해보면 '미안함'에서 '동정'이라는 감정이 파생되고 그게 '긍휼'이라고 생각이 되어서 '뿌듯함'으로 이어졌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동정'이 과연 '긍휼'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저는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다고 봐요. '동정'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기에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 자체가 타인과 나의 위치가 다르다고 가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긍휼이 여긴 마음이 우월감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면 그것을 진정한 긍휼로 보기는 힘들다는 거죠.
  그래서 내가 내 자신의 상황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고 있는지, 내 사고의 기초가 겸손인지 등을 평소에 성찰해볼 필요가 있겠다 싶었어요.



  엄마가 친절을 베풀면서 느꼈던 뿌듯함이 '미안함'에서 출발한 '동정심'을 '긍휼'로 착각해서 얻은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럼 네가 생각하는 '친절'과 '긍휼'은 어떤 차이가 있는거지?



  '친절'과 '긍휼'은 눈에 보이는 행동적 측면에서 봤을 때, 타인을 위한다는 점에서 동일해요. 하지만 긍휼은 그 내면까지 살펴보아야 하죠. 즉, 포함관계로 따지자면 친절 안에 긍휼이 포함된다는 의미예요. 친절 속에 진정으로 돕고자 하는 마음까지 있다면 그때야 비로소 긍휼이 완성되는 거죠.
  그런데 돕고자 하는 마음에도 단계가 있는 거 같아요. 좀 더 고차원적이고 아름다운 긍휼을 베풀기 위해서는 '동정'이 아닌 '공감'을 필요로 해요. 남과 나의 처지를 동일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거기서 상대를 기쁘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우러나와야 '공감'이 되는 것이에요. 아무리 돕고자 하는 의도가 있더라도 그게 '동정'이라면 그저 상대적 우월감을 겉으로 표현하는 것에 불과할 수 있다는 뜻이지요.
  선행에서도 교만과 겸손은 한 끗 차이라는 점을 오늘 대화를 통해 다시 느끼면서 내 바탕을 숭고하게 바로잡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네요.




  이건 위치가 바뀐 거 아니니? 니가 엄마고 내가 아들같다. 게다가 내가 묻는 말에 그게 정답인양 확신을 가지고 대답을 하네. 하하하. 그런데 50대 엄마가 생각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거 같구나. 엄마가 20대 일때는 이렇게 까지 깊게 생각하지 못한 거 같은데, 우리 아들 생각 깊이는 어마어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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