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한 신랑과 산책을 하면서 석양노을을 볼 때가 많다. 해지는 풍경에 그저 감탄하면서 넋을 잃고 바라본다. 연말 연시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해돋는 장관을 보려고 동쪽 바다를 향해 달려간다. 해돋이를 쉽게 볼 수 있는 숙소는 매년 예약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많다. 사람들이 그토록 일출을 보려는 이유는 뭘까?
1월 1일, 가장 흔하게 찾을수 있는 인터뷰는 일출을 본 사람들의 생각을 묻는 것이리라.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기대에 차있고 희망에 부풀어 있다. 새해 일어날 좋은 일들에 대한 설렘으로 충만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강한 자신감을 드러낸다.
사람들은 새날, 새해에 떠오르는 태양에 대해서 놀라울 정도의 의미부여를 하며 복을 빈다. 그래서인지 새해 첫날, 눈부시게 황홀한 해를 바라보며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모습에는 간절함이 깃들어 있다. 떠오르는 해는 '희망', '소망', '기운', '동기부여', '출발', '다짐' 등 새로운 시작에 대한 의미를 더 공고하게 해준다. 일출은 역동적인 젊음을 구체적 이미지로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해돋이를 보며 소리지르고 흥분하며 노래하고, 춤추기까지 한다.
그러나 지는 해를 바라볼 때는 한없이 차분해지면서 몸과 마음이 평온한 상태로 오래도록 지켜본다. 붉은 빛과 노란빛의 조화로 말할 수 없는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석양노을은 그 자체로 예술이다. 하나님이 빚으신 이 풍광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완벽한 예술작품이다. 그런데 한 해의 마지막 날, 저무는 해를 보려고 움직이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거 같다. 한 해가 끝나감을 알리는 일몰이 가져다주는 깨달음이 더 클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하룻동안 눈에 보이는 태양의 움직임을 인생에 빗대어 본다면, 지는 해는 늙어가는 중년 이후일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일출보다 일몰이 더 아름답게 여겨진다. 이상하지 않은가? 젊음의 상태보다 늙어가는 상태가 더 아름다울 수 있나? 나이듦의 아름다움을, 지는 해를 보면서 비로소 깨닫는다. 아름답게 나이든다는 것은 석양노을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평온하게 하고 안정적인 쉼을 가져다주며 황홀한 분위기에 매료되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렇게 나이들어가야겠다. 들뜸도 요란함도 없는 모습, 그러면서도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매력적인 모습,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면서 잠시나마 걱정과 염려를 내려놓게 만드는 모습. 그런 아름다운 모습으로 늙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