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 장편소설 '모순'을 읽고
인간이 인공지능과 다른 것이 무엇일까?
'나 같은 기계들' 책을 읽고 인간과 인공지능의 큰 차이는 '모순'적 행동이라 생각했다.
이 책이 마치 모순된 인간 삶의 정수를 보여주는 듯 했다.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쌍둥이 자매가 보여주는 모순!!
아내와 자식에게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특별한 사랑을 느낀 순간, 한 남자의 모순적 행동-폭력, 파괴, 무책임, 방랑-은 내 상식 밖이다. 아니, 상식 수준을 벗어나 용서받지 못할 행동이고 이해할 가치도 없는 행동이다.
오랜 세월 밖을 떠돌다 마침내 돌아온 아버지의 모습에는 반전이 없었다. 오히려 중풍에 치매까지 앓게 된, 그래서 사랑하는 딸 조차도 낯선사람으로 경계하는 몹시도 처량한 볼품없는 모습이었다.
어릴적부터 아버지 부재에 익숙하게 적응하며 성장한 안진진, 남편의 든든한 울타리라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조차 하지 못한 진진의 어머니, 놀랍게도 두 여인은 그런 아버지, 그런 남편을 용서하고 받아들인다.
안진진 어머니의 쌍둥이 자매는 또 얼마나 모순적인가?
지켜야 할 선을 분명히 가지고 있고,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 남다른 남편, 공부잘하고 반듯하게 자란 두 자녀, 정원가득 꽃이 있는 넓은 집을 가진 그녀는 자신의 인생이 평온한 무덤으로 점철된 삶이라 규정지으며 비관한다.
폭력을 일삼는 무능한 남편, 가출하는 딸, 경찰서에 들락거리는 아들, 새벽부터 저녁까지 돈을 벌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억척스러운 쌍둥이 언니의 무겁고 투박한 삶을 특별한 이벤트의 연속으로 쯤 생각하며 부러워할 수 있다는 것이 말이 되나?
결혼생활이 평탄해서 결핍이라곤 경험하지 못한 사람의 마지막 말이 바람이 씽씽 일도록 바쁘게 살아야 했던 언니처럼 살고 싶었다니..... 이런 모순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누구나 꿈꾸는 삶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죽고 싶을 만큼 답답하다 여기고, 여기저기에 치이면서 한 순간도 평온할 수 없는 삶을 부러워하는 사람이라니.......
난 안진진 어머니의 삶이 부럽지 않다. 아니, 그런 고통이 내게는 없기를 바란다. 비록 무덤처럼 평온하여 답답하고 지루할지라도 말이다. 그런데 그녀가 어떤 모진 일을 마주해도 결단코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생기를 더해가는 강한 정신력은 부럽다.
남편의 이중적인 모습을 마주했을 때는, '정신분열증의 이해와 치료'책을, 생계를 위해서 '일본어 회화책'을, 법정에 들락거리는 아들을 위해서 딱딱한 법률책을, 초라하기 짝이없는 모습으로 돌아온 남편을 위해 '중풍, 이렇게 치료한다', '가정을 파괴하는 병, 치매'를 탐독하며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고난이 축복이다'라는 성경구절이 있다. 사람들은 '축복'을 좋아한다. '고난'은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데 '고난'이 축복이라니 난감하다. 엄청난 모순이다. 고난이 없이는 사람을 성숙하게도 못하고 겸손케도 못하고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 알수도 없다고 힘을 주어 말씀하시는 목사님의 설교에 '아멘'이라고 크게 답한 적이 없는 거 같다. 아직은 그렇다.
모순투성이 인간, 그래서 삶은 예측하지 못하는 거 같다. 인간은 이성과 논리가 정서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하지만 많은 결정이 '정서'에 의해 이루어지는 모순적 행동을 하니까.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라 했다. 모순투성이 인간은 자신이 탐구한대로 이성적으로 살지 못한다. 오히려 그 반대일 수 있다. 그러니까 살아가면서 인생을 탐구하는 것이 맞는 거 같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같은 선택이나 결정을 하는 인간의 모순된 행동이 인생을 탐구하는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모순된 나를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