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흰'을 읽고

by 낭만솔샘

작가의 '흰'에는,


흰 페인트, 재, 흰색의 환 형태로 되어 있는 당의정, 불빛들, 백열전구, 흰 전등 갓, 흰 도시, 초, 얇은 종이의 하얀 뒷면


하얀 강보, 배내 옷, 레이스커튼, 흰 베갯잇, 흰 이불보, 흰 손수건, 흰 천, 수의


흰 갈매기, 두루미, 날개, 흰 나비, 흰 개


새벽안개, 은하수, 눈보라, 달이 숨은 구름, 흰 구름, 백목련, 수천 개의 은빛 점, 반짝임, 흰 돌, 모래, 성에, 서리, 눈, 눈송이, 만년설, 진눈개비, 백야, 빛의 섬, 흰 연기


하얗게 웃는다, 흰 입김, 젖, 흰 뼈, 창백한 주먹, 침묵, 아랫니


소금, 각설탕, 쌀과 밥이 있었다.


흰'을 읽고 나의 '흰'을 떠올려 보았다.

가장 먼저 보인 이미지는 빛이 스며드는 성근 조직의 얇은 흰 색 커튼이다.

빛으로 더 밝게 빛나면서 하늘거리는 커튼의 이미지는 김동률의 '여름의 끝자락' 노래를 생각나게 한다.


더운 여름의 끝자락

매미들은 울어대고

느릿느릿 읽던 책 한 권 베고서

스르르 잠든다

내가 찾아간 그 곳은

꿈에서만 볼 수 있는

아침이면 까마득히 다 잊혀질

아득히 먼 그 곳

가물가물 일렁이는

누구일까 애타게 떠올려 봐도 무엇을 찾고 있는지

코 끝이 시리다

'여름의 끝자락' 가사 중에서



마당에 초록의 나무들이 가득하고, 그 나무 위에서 매미들이 울어댄다. 안에서는 정원으로 통하는 통창을 활짝 열어서 얇은 흰색의 커튼이 바람에 나부끼게 하고 그 기분좋은 바람을 맞으며 마루에 눕는다.

'여름의 끝자락' 노래가 만들어낸 이미지다.

김동률의 낮은 음색으로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고요하고 편안해진다. 어릴적 나의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안방의 창과 창 사이에 나있는 작은 공간, 그 아늑한 좁은 공간이 너무 좋아서 자주 앉아 있곤 했다.

나의 전부를 감싸는 따뜻함으로 온 몸에 스며든 나른함을 즐겼던 거 같다. 그 시절, 그 공간을 떠올리면 평온해진다. 바람에 나부끼는 흰 색 커튼의 움직임이 김동률의 음색과 어우러져, 철없던 그 시절, 그래서 좋았던 그 때로 순간이동 시켜준다.


두번째로 떠올린 것은 흰색의 캔버스이다.

첫 번째 흰 색이, '고요나 평온'이라면, 두 번째 흰 색은 '가능성'이다.

며칠 전, 캔버스에 그림 그리는 영상을 우연히 봤다.

흰 색 바탕의 세로 축에 파랑, 하양, 빨강, 노랑, 보라 물감을 일정한 간격으로 짜 놓은 후 커다란 넙적 붓으로 물감을 쓱쓱 칠하면서 다른 색들과 섞이게 하고, 또다른 색을 덧입히기를 반복하더니 어느새 황홀하리만큼 아름다운 선셋 풍경을 완성했다.

또 다른 영상에서는 가로로 물감을 짜 놓고 붓으로 물감을 톡톡 두드리면서 칠하더니 울긋불긋 잎사귀로 가득한 나무들이 투명한 호수 위로 비치는 고즈넉한 자연을 감상하게 했다.

신기하고 신비로웠다.

흰 바탕 위에 점점이 찍힌 몇 개의 색상만으로 마법을 부린 듯 금새 멋진 풍광으로 탈 바꿈한 흰 색의 캔버스는 그 자체로 무한한 가능성을 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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