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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여 Jan 04. 2022

헤밍웨이⦁포우⦁휘트먼⦁프로스트- 미국의 대문호 만나다

미국인도 모르는 미국의 속살을 찾아서

요즘 서점가를 휩쓸며 베스트셀러라는 명성과 함께 부까지 거머쥐게 만든 미다스의 책인 ‘언어의 온도‘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높다. 혹자는 책의 내용이 궁금했고, 혹자는 한 권의 책으로 이룬 부를 부러워하기도 했을 것이고, 혹자는 섬세한 문장들에 밑줄을 그으며 그 안에 담긴 의미를 곱씹기도 했으리라.

창밖의 풍경이 초록색에서 빨갛고 노란 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면서 단풍의 유혹이 한창이다. 단풍이 든 게 나무인지 사람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알록달록한 단풍 명소의 풍경을 뉴스로 접하다 보면 나들이마저도 두려운 가을날. 그래도 분위기 좋은 카페나 집 근처 도서관, 아니면 가을 햇살이 가득한 거실에서 미뤄놓았던 소설이나 시집을 읽어보자. 이도 저도 어렵다면 거대한 미국을 배경으로 쓴 작품들을 통해 미국만큼이나 넓고 열정적인 독자를 확보한 문인 네 사람과 함께 가을 문학 기행을 떠나보자. 별책부록도 있으니 그 주인공도 확인해 보기를.    


미국 문학의 거대한 전설-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겨울 휴양지는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그 중에 최고는 키웨스트.

플로리다 최남단 육지 끝을 벗어나 모여 있는 400 여개의 섬을 42개의 연륙교로 이어놓은 202Km의 해상 고속도로 양옆으로 비취빛 바다와 푸른 하늘이 멋진 조화를 이루며 펼쳐진다. 바다 위에는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화려한 여성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요트에서 남아의 품처럼 늠름한 요트까지 마치 요트 경연대회가 열리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달리는 차창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에 하얀 색이 묻어나는 것만 같았다. 미국 최남단 키웨스트의 키워드가 될 만큼 유명한 헤밍웨이 생가. 하늘빛과 물빛 그리고 문학의 빛이 어우러져 만난 헤밍웨이는 그냥 모든 것에서 우리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90miles to Cuba Southernmost Point Continental USA’ 표지판 앞에서 많은 이들이 질서 있게 줄을 서서 인증 샷을 찍는다. 바로 미국 대륙의 최남단이자 쿠바까지의 거리가 90마일밖에 되지 않는 미국 최고의 휴양지이자 쿠바의 문화가 채색된 키웨스트를 상징하는 표식으로 키웨스트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상징물 중 하나이다.

여기에 화룡점정은 누구나 어린 시절에 한 번쯤 읽었을 소설 ‘노인과 바다’의 배경이자 그 소설의 집필실인 헤밍웨이 생가이다. 뉴욕의 한겨울을 경험하고 온 우리에게 마이애미가 준 크리스마스 선물은 작열하는 태양과 헤밍웨이와의 가슴 설렌 조우였다.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알아 챈 생가는 이층집과 넓은 정원이 있는 저택 박물관이었다. 제일 먼저 우리를 반긴 건 헤밍웨이가 키우던 고양이들이었다. 헤밍웨이의 상속자인 그들은 관광객들의 관심에는 관심조차 없다는 듯 유유자적하게 혹은 고고한 자태로 자신들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화보 사진의 모델처럼 침대 위에서 고혹적 포즈로 앉아 있는 고양이와 마당 그늘에서 단체로 오수를 즐기는 고양이들, 기념품 상점 계산대 옆에서 단잠을 자는 재무담당 고양이, 사진 찍는 우리에게 새침데기인 양 눈을 흘기는 고양이까지. 헤밍웨이가 창조한 고양이들이 호사를 누리는 고양이의 천국이 바로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돌아보는데 유독 눈에 띄는 건 수많은 영화 포스터들. 헤밍웨이의 원작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들이 많은데 우리에게 익숙한 건 ‘노인과 바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킬리만자로의 눈’ 등이다. 그 중에서도 내 눈길을 사로잡은 건 ‘노인과 바다’와 관련된 사진과 그림들이었다. 그리고 헤밍웨이의 집필실인 별채까지 돌아보고 나오니 문득 ‘노인과 바다’를 읽었을 때의 느낌이 생생하게 전해지면서 마음을 울리는 문장들이 떠올랐다.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니다.” 주인공 산티아고 노인은 무려 84일 만에 잡은 초대형 청새치를 지키기 위해 상어 떼와 싸우면서 이렇게 중얼거린다.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다.”    

그 순간 바다에서 사투를 벌이는 노인은 소설이란 허구의 세상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매일 살아내는 현실 속 우리의 자화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행한 천재 시인이자 추리소설의 대가-에드가 알렌 포우(Edgar Allan Poe)

헤밍웨이 고양이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른 소름 돋는 단편소설 ‘검은 고양이’로 잘 알려진 에드가 알렌 포우. 어릴 때는 무섭게만 느껴졌던 ‘검은 고양이’를 제대로 이해한 건 한참이 지난 뒤였다. 게다가 그가 추리 소설가이자 ‘갈가마귀’와 ‘애너벨 리’라는 상반된 분위기의 시를 쓴 시인으로 유명하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의 어두운 삶을 잘 보여주는 시가 바로 ‘갈가마귀’인데 특히 포우 자신이 생각하는 삶 속의 죽음은 바로 갈가마귀 울음소리인 “이젠 끝이다”라는 마지막 연에 잘 드러나 있다.     

“그리고 갈가마귀는 날아가지 않고 아직도 앉아 있었다,

나의 침실 문 바로 위 팔라스의 창백한 흉상 위에 아직도

그의 두 눈은 꿈꾸고 있는 악마의 모든 모습을 담고 있고

그의 위에서 흐르던 등잔불이 마루 위에 그의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

나의 영혼은 마루 위에 누운 채 떠돌아다니는 그 그림자를 떠나

떠오를 것이다

이젠 끝이다!“    

광기와 극단적인 감정을 통해 현대 추리소설의 단초를 제공한 추리 소설의 선구자였지만 작품만큼이나 그로테스크하게 짧은 생을 살다 간 애드가 알렌 포우.

뉴욕 북쪽에 있는 브롱스에 위치한 Poe Cottage는 에드거 앨런 포가 생의 마지막 부분인 1946년부터 1949년까지 지냈던 곳으로 작품 '애너벨 리', '유레카'를 완성했던 곳이다.

가난한 작가로서 자신만의 문학을 향한 마지막 불꽃을 태웠던 장소이자 그의 문학적 영혼이 살아 숨 쉬는 장소로서의 오두막집. 포우가 말년에 문학적 허기를 달래던 곳으로서의 의미가 큰 곳이지만 그와는 상반된 너무나 작은 이층집에 들어서니 후덕한 느낌의 안내인이 반갑게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1층의 단순한 가구들과 사진들에서는 그의 작품 성향과 연결이 쉽지 않았는데 실제 크기로 만든 검은 양복을 입은 포우의 입상(立像)을 마주하니 비로소 포우의 집에 초대받은 듯했다.

1층과 2층을 오르며 본 식탁이나 침대, 그리고 서재의 책상이 그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고 단지 포우만이 부재중이었다. 단출한 살림살이가 그의 가난을 보여주었고 그 안에서 예술정신만큼은 풍요롭게 발휘되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자 가슴 한편이 서늘해졌다. 헤밍웨이 생가와는 비교가 될 만큼 찾는 이가 적은 것도 포우가 지닌 원초적인 고독과 맞닿은 듯해서 발걸음이 조금은 무거웠다.

 그러나 오두막집 근처에 있는 포우를 추억하기 위해 만들어진Edgar’s Cafe에 들어섰을 때 카페 내부를 가득 메운 포우와 관련된 사진들을 보니 그 공간에서 만큼은 포우가 생전에 받지 못한 사랑과 위로가 가득한 것 같아서 오히려 우리의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미국의 위대한 시인-월트 휘트먼(Walt Whitman)

휘트먼 하면 첫 번째로 떠오르는 것이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명대사 "오, 캡틴 마이 캡틴!”이다. 이 대사는 키팅 선생이 학교를 떠나던 날 학생들이 하나 둘 책상으로 올라가 외치던 말로 휘트먼 시의 한 구절이다.    

"오, 캡틴 마이 캡틴!

일어나 저 종소리를 들으소서

일어나 보십시오. 당신을 위해 깃발이 휘날립니다

당신을 위한 나팔소리가 울리고, 당신을 위해 꽃다발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여깁니다

캡틴!

당신의 머리를 괴고 있는 이 팔이, 당신이 차갑게 누워 있는 이 갑판이 제발 꿈이기를."     

링컨을 흠모했던 휘트먼이 링컨 암살 후 통탄하는 마음으로 쓴 시가 바로 ‘오, 캡틴 마이 캡틴!’이기에 휘트먼을 민주주의의 아이콘이자 미국 문학의 위대한 캡틴으로 부르는 것이리라.

그 다음으로는 자유시의 아버지로서 시와 자연, 우주 그리고 인간은 하나라는 삶의 철학이 그대로 반영된 두 권의 대표시집인 ‘풀잎’과 ‘나 자신의 노래’이다.

전통적인 영시 형식과 운율을 과감하게 벗어버린 그의 시편들은 휘트먼 자신의 이야기이자 꿀벌이나 떡갈나무 같은 자연의 이야기이고, 농부와 마부, 뱃사공과 흑인들과 같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시집 <풀잎> 서문이 이를 그대로 말해 주고 있다.    

"대지와 태양과 동물들을 사랑하라

부를 경멸하라

모든 이에게 자비를 베풀고 어리석은 일에는 맞서라

당신의 수입과 노동을 다른 사람을 위한 일에 돌려라

폭군들을 미워하고 신에 대해 논쟁하지 마라

당신이 모르는 것, 알 수 없는 것을 공경하고

학교, 교회, 책에서 배운 것들을 의심하라“

뉴욕 주 롱 아일랜드에 위치한 휘트먼의 생가이자 박물관은 미국이 낳은 위대한 시인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시간대별로 해설도 진행되고 있었다.

그가 살았던 공간이 현재라는 시공간으로 옮겨온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그가 살아온 삶이 곧 그의 시라는 확신을 갖게 만들었다. 특히나 집 안의 오래된 우물과 정원에 세워진 여러 모양의 철제조각물, 연륜이 묻어나는 낡고 소박한 물건들은 그가 지향한 소박한 삶이자 자연 친화적인 삶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지팡이 짚고 선 휘트먼 동상이 뿌듯한 표정으로 “Hi!”를 외치며 우리를 반겨주는 것만 같았다.

나아가 생전에 평등, 자유, 우애 등을 통해 더불어 사는 삶이 중요하다고 노래한 민중시인의 인생이 작품에 진한 농도로 녹아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순간 한국에 가면 서재에 꽂혀 있는 그의 시집 <나 자신의 노래>를 다시 읽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들면서 시집과 마주했을 때의 감회가 예전과는 사뭇 다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미국적인 시인-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만났던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뉴햄프셔 주 데리에 있는 프로스트의 농가 겸 박물관에서 다시 만났다. 그는 평생 농부와 시인이라는 직업만 가졌기에 그 농장은 시적 영감을 생산하는 창고나 다름없다. 실제로 농장 앞에는 두 개의 오솔길이 있고 그 오솔길을 걸으며 쓴 시가 바로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었다.

시작 배경이 되었던 오솔길을 걸으며 음미해 본 ‘가지 않은 길’은 추억 속의 시가 아닌 내가 지금 살아가는 현재진행형의 시로 다가왔다.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더군요.

몸이 하나니 두 길을 다 가 볼 수는 없어

나는 서운한 마음으로 한참 서서

잣나무 숲 속으로 접어든 한쪽 길을

끝간 데까지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또 하나의 길을 택했습니다. 먼저 길과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나은 듯도 했지요.

풀이 더 무성하고 사람을 부르는 듯했으니까요.

사람이 밟은 흔적은

먼저 길과 비슷하기는 했지만,    

서리 내린 낙엽 위에는 아무 발자국도 없고

두 길은 그날 아침 똑같이 놓여 있었습니다.

아, 먼저 길은 한번 가면 어떤지 알고 있으니

다시 보기 어려우리라 여기면서도.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나는 한숨 지으며 이야기하겠지요.

"두 갈래 길이 숲 속으로 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라고.“    

우리가 교과서로 배울 정도로 유명한 시인의 박물관인데 찾아오는 이는 별로 없어서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래서 그곳을 지키며 안내하는 아리따운 아가씨에게 물어 보니 그녀의 말로는 하루에 열 명 정도 찾아오고 그것도 우리처럼 먼 곳에서 부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해서 조금 놀랐다. 역시나 그 날도 미국인 한 가족과 우리만이 프로스트 손님이었다.

프로스트의 시풍처럼 그 농장 주위는 고즈넉하면서도 새소리, 바람소리, 풀 내음이 우리 마음에 평화로운 위안을 불어 넣어 주었다. 그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 즉 시인의 길을 선택했기에 가난했지만 그 안에서 시를 통해 위로받고 그 시로 우리를 위로한 게 아닌가 싶다.

주변에 있는 돌담, 자작나무, 들판과 숲, 그리고 그가 심은 사과나무도 시적 영감을 주는 친구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를 읽으면 프로스트에게 자연이란 존재가 언제나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고 냉혹하기도 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 일까?

그 이유인 즉 우리에게는 늘 선택이라는 손님이 기다리는데 그 손님이 어떤 경우에는 친절하고 사랑스런 애인 같다가 어떤 경우에는 절교를 선언하는 냉담한 타인과도 같기 때문이다.

박물관에서 프로스트 생애와 작품 세계에 관한 비디오를 보고 나오니 입구에 주황색 나리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그 앞에 Robert Frost 우체통이 단아하게 서 있었다. 그 우체통을 보며 프로스트에게는 “당신은 이곳에서 행복했나요?‘를, 나에게는 ”내 인생에서 가지 않은 길은 무엇일까?“ 라는 편지를 띄워 보냈다. 오솔길을 따라 내려오니 프로스트에게서 답신이 왔다, 아주 행복했다고. 그러나 내게는 아직 답신이 없는데 아마도 아직까지 그 답을 찾으며 고민 중인 듯 했다.

책 속에서 만날 때와 그 작가의 이력을 모아 놓은 박물관에서 만나는 작가가 늘 동일하지는 않다. 작품을 읽으면서 그와 나누는 은밀한 대화가 쌍방향 소통이라면 박물관의 전시물은 일방향이기에 그런 차이를 느끼는 것이리라. 그래도 그 작품의 산파 노릇을 했던 곳을 직접 가봤을 때 책에서 만날 수 없는 그의 인간적인 체취가 진하게 와 닿는 것도 독특한 경험 중 하나이다. 그것도 발품을 팔아야만 얻을 수 있기에 어떤 기념품보다도 소중한 감동임에 틀림없다. 또한 그와 한 생을 함께 해 온 소품들이나 그 안에서 벌어진 소소한 에피소드를 통해서 작품에 드러나지 않은 그의 문학적 개성까지 엿볼 수 있다. 이렇게 누리는 호사가 문학 기행이 주는 작지만 큰 기쁨이기에 중독성도 그만큼 강하다. 자발적 중독성이기에 기꺼이 즐기는 것이리라.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하면서도 주변에 있는 작가들의 생가나 박물관이 있다면 몇 시간을 달려서라도 찾아간다. 마치 내가 그리던 옛 애인의 모습을 확인하기라도 하듯이.

그 재미도 쏠쏠하거니와 문학의 향기에 취하고 싶은 바람을 채워주는 자양분이 되기에 다음엔 어느 작가를 만나러 갈까 언제나 즐거운 고민에 빠지게 된다.


별책부록-동화의 아버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 뮤지엄

캘리포니아 주 산타바버라 카운티에 있는 솔뱅은 미국 속 작은 덴마크이다. 1991년 덴마크 이민자인 솔뱅이 만든 도시로 덴마크 전통 가옥과 풍차, 베이커리, 레스토랑들이 마치 덴마크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예쁜 소도시이다.

이곳의 상징물은 코펜하겐의 인어공주상을 그대로 재현한 동상과 동화의 아버지인 안데르센 뮤지엄이다. 덴마크 전통 가옥으로 지어진 안데르센 뮤지엄은 1층엔 서점이 있고 삐꺽거리는 나무 계단을 올라간 2층에는 안데르센의 모든 것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서가를 빼곡하게 채운 안데르센 동화책들의 다양한 버전들이다. 특히 미운오리새끼와 인어 공주, 엄지공주, 눈의 여왕, 백조왕자 그림책의 표지를 보는 순간 바로 동심의 세계로 빨려 들어갈 정도로 표지의 삽화가 생생하다.

그 옛날에 쓴 동화인데 지금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데르센의 동화는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세계적인 작가라는 불리기는 것보다 ‘동화의 아버지’가 그에게는 기분 좋은 애칭이리라. 크리스마스를 앞둔 솔뱅의 축제 분위기 속에서 안데르센의 동상은 많은 관광객들과 사진 찍기에 바빴다.

미국에서 만난 안데르센은 다른 미국 문호들처럼 스케일이 큰 작품을 쓴 작가는 아니지만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도 외로울 때 찾아가면 마음을 읽어주며 자상한 눈빛으로 처방약 주듯 동화책을 내밀어 줄 것만 같았다. 그 느낌은 마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것들을 읽어주는 안데르센 아저씨만이 줄 수 있는 따스함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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