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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여 Mar 27. 2022

다산초당에서 공감의 롤 모델을
만나다

벼들이 익어 노랗게 물든 논, 무수한 생명을 품은 갯벌과 이를 어루만져 주는듯한 바다, 이 둘을 고즈넉하게 바라보는 갈대를 눈에 담을 수 있는 남도답사 일 번지 강진, 그중 핫 플레이스인 다산초당에 올랐다. 다시 다산초당에서 백련사 가는 오솔길은 많은 이들이 익히 알고 있는 다산과 혜장 스님이 교감을 나누던 길이다. 이 길을 걸으며 다산과 혜장 스님이 나누었을 이야기를 떠올려 보았다. 혜장 스님에게 야생차를 배워서 자신만의 차(茶) 문화를 수립한 다산(茶山), 학문에 있어서도 한계를 짓지 않고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던 다산을 통해 학문의 시야가 넓어진 혜장 스님. 이렇듯 두 사람은 서로에게 스승이자 제자, 친구였는데 이것이 가능하게 된 데는 두 사람 모두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리라. 늦은 밤에 글을 쓰다가도 혜장 스님이 생각나면 달빛을 지도 삼아 오솔길을 걸어 백련사로 찾아가던 다산의 모습, 차를 마시다가 다산과 함께 깊어가는 가을을 음미하고 싶을 때면 동백나무숲을 지나 다산초당을 찾는 혜장 스님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흐뭇해지는 건 왜일까. 마치 젊은 시절 연애할 때가 떠오르기 때문이리라. 설렘과 사랑, 믿음을 잘 반죽해서 적절한 숙성 기간을 거쳐서 만들어진 연애의 결과물이 공감이기에. 그래서 두 사람의 교류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도 연애하듯이 연대하며 공감을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도 한편으로는 공감의 필요성을 말하지만 실제 생활에 적용하지 못하는 것 또한 현실이다. 결식아동의 눈으로, 지하도 노숙자의 눈으로, 쓰레기 분리수거가 버거운 경비 아저씨의 눈으로, 식당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의 눈으로, 데이트 폭행을 당한 여성의 눈으로,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힘든 시골 농부의 눈으로, 로봇으로 인해 해고된 근로자의 눈으로, 취업을 못해 알바가 직업이 되어버린 청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공감을 실천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공감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배우고 익히는 것이기에. 그래서 ‘다른 사람의 마음 상태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 즉 공감 능력과 공감을 허락하는 상상력이야말로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는 결정적 요인이라고 한 진화심리학자인 로빈 던바의 말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사실 유튜브와 방송 등에서 지식을 알려주는 스승들이 넘쳐나는데 비해 정작 실천하는 모습을 통해 공감을 가르치는 참 스승이 없는 오늘의 현실이 안타까워 한국판 공감의 롤 모델인 다산과 혜장 스님이 더욱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이 오솔길을 걸으며 두 사람이 남긴 공감이 거대한 지식이 아닌 살아가는 삶의 실천 지혜임을 깨닫고 마음에 담고 간다면 이 오솔길은 제 임무를 다한 것이기에 나는 이 길을 ‘공감의 길’이라 부르고 싶다. 우리가 다니는 출퇴근길이나 산책로, 장 보러 가는 길, 도서관을 오르는 길 모두가 쓸모 있는 나만의 공감의 길이 될 수 있다. 다산과 혜장 스님이 오가던 길에는 야생차와 동백나무숲이 함께 했다면 나만의 공감의 길에는 좋아하는 음악이나 한 권의 책, 가을 하늘의 뭉게구름, 발바닥에 포근하게 닿는 낙엽들 그리고 마주치는 사람들의 해맑은 눈빛들과 함께해도 좋을 듯하다. 그 길을 걸으며 내가 공감하고 싶은 대상을 떠올리다 보면 어느새 공감에 촉촉이 젖어드는 나와 마주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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