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서 “야호!” 소리가 들리고 단풍물이 든 것 같은 울긋불긋한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가을. 우리나라에서 등산 개념이 산책으로 바뀌게 된 데는 북한산 둘레길과 같은 지자체의 다양한 길들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그런데 유모차도 갈 수 있는 북한산에 대한 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높은 산에 오르는 이유는 그만큼의 노력과 위험을 감수하며 땀 흘리고 올라가 자연이 주는 감동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미국의 국립공원에 가면 덱(deck)은 뷰 포인트나 장애우를 위한 짧은 구간용으로 만들어 놓았을 뿐 우리처럼 편하게 가도록 설치된 곳은 그리 많지 않다. 또한 국립공원을 오르는 도로도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여 만들었고, 공원 입구에는 위험 구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어 본인이 자신의 컨디션 등을 감안해서 트레일(trail) 코스를 정할 수 있는 지표를 제공할 뿐 높은 펜스나 철조망 등을 쳐 놓은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펜스와 입산금지 팻말에 익숙한 나인지라 처음엔 미국 국립공원이 무책임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 극한 체험의 절정을 느끼고자 찾아 간 자이언 국립공원(Zion National Park) 안에 있는 엔젤스 랜딩 트레일(Angels Landing Trail)에서의 경험이 내 생각을 바꾸었다. ‘2004년 이후로만 여섯 명이 이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강한 경고문을 읽고 나서 오르고 보니 왼쪽은 300m 수직 절벽, 오른쪽은 100m 넘는 절벽들이 줄지어 나를 보고 있었다. 폭이 1m 정도로 한 사람만 지나갈 수 있는 좁은 바윗길을 약 반 마일(800m) 정도 걸어가야 만날 수 있고, 양쪽이 천 길 낭떠러지인데 펜스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발만 믿고 건너야 하는 곳이 바로 엔젤스 랜딩 정상이다. 그곳에 오른 뒤 내린 결론은 ‘자연은 자연 그대로 감상하자! 그 감상을 위한 위험은 당신의 선택!’이었다. 문득 우리나라 산에 오르다 보면 “산행엔 시원한 막걸리가 최고야!”를 외치며 음주 산행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러한 등산객들의 안일한 생각과 부주의가 사고로 이어질 수 있고 버려진 음식물이나 페트병으로 환경이 오염될 수도 있다. 만약, 앤젤스 랜딩처럼 안락한 환경이 없다면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친절한 국립공원이 오히려 자연에 대한 경계심이나 보호 의식을 느슨하게 하는 건 아닌가 싶다. 이는 인간과 자연은 둘이 아닌 하나이므로 서로 상생해야 한다는 것을 당연시 하면서 쉽게 잊어버리기에 일어나는 일이리라. 자연을 아낌없이 사랑하고 보호해 줄 때, 자연도 우리 인간에게 자신의 가장 멋지고 찬란한 부분을 서슴없이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국립공원을 갈 때마다 “내가 지금부터 겸손한 마음과 설렘으로 당신에게 갈 거예요.”라고 인사를 건넨 후 정상에 오르면 ‘안전하게 와줘서 고마워요.’라며 시원한 바람으로 나를 토닥여준다. 이렇듯 자연과 인간이 서로 아껴주고 조심할 때 그 둘의 가치는 더욱 빛날 수 있으리라. 내 경험이 정말인지 확인하고 싶다면 등산화 끈을 질끈 묶고 친절한 산보다는 조금은 불친절하지만 자연의 자연스러움에 몸과 마음을 푹 담글 수 있는 산으로 첫걸음을 내딛는 건 어떨까 싶다. 청량한 가을 햇살을 연인 삼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