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할 때도 있지만 당황하지 않고

황당 vs. 당황

by Olive

Very often a change of self is needed more than a change of scene. -Arthur Christopher Benson-


미국의 작은 도시에 살고 있는 나는 여러 가지 면에서 한국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보이는 풍경, 사람들의 문화, 삶의 방식 모든 것이 다르고 느리고 여유 있다. 이곳의 대부분은 백인이고, 흑인이 조금 있을 뿐 외국인 자체가 많지 않다. 아시안 인구는 더 적으며 한국인은 더욱더 적은 우리 동네. 아시안만 봐도 반가운 기분이 들어 한번 더 쳐다보고 인사도 하게 되는 우리 동네. 한국 마트가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은 언감생심이요, 한국 식당도 멀게 느껴진다.


지난번 LA에 사시는 분과 연락을 주고받은 적이 있다. 서로 사는 동네를 이야기하다가 본인도 예전에 미국 소도시에 사셨다며 그곳은 시골 중에 시골이었다고 하셨다. 도시명을 알려주시길래 찾아보니, 인구가 17만! 인구 십만이 훨씬 넘는 도시에서 사셨었는데 시골 중에 시골? 하긴 LA의 인구가 약 4백만이니, 17만 명은 상대적으로 엄청 시골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인구 십만이 넘는 도시는 미국에서 중형(mid-sized) 도시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에는 모두 약 19,500개의 도시가 있는데 이 중에서 약 15,000개에 해당하는 도시의 인구는 5천 명 이하이며, 인구 십만 명 이상의 도시는 310개에 불과하다. 미국에 인구 1천만 명 이상 되는 도시는 하나도 없으며, 인구 1백만 명 이상 되는 도시도 단 10개뿐이다(참고로 한국은 11개). 따라서 미국의 많은 도시들은 아주 작은 도시 또는 시골 도시라고 봐도 될 것 같다.


미국에서 살다 보면 한국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때론 황당하기도 하도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황당하다 「형용사」 말이나 행동 따위가 참되지 않고 터무니없다.

황당한 말.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 소문이 너무 황당하여 어이없다.


당황하다 「동사」 놀라거나 다급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다.

그 사람은 엉뚱한 질문으로 사람을 당황하게 하였다.

그는 갑작스럽게 벌어진 사태에 당황하고 겁이 나서 부들부들 떨었다.


작은 도시에서는 그런 일이 더 많이 생기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사실 미국 대도시로는 여행만 가봤을 뿐 그곳에서 살아보지는 않았기에 서로를 비교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 미국의 작은 도시에서만 살아오면서 다소 놀라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고, 황당한 일들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은 곧 약이다'라는 말을 실감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당황하지 않게 되고 차츰 문화를 이해해 가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모르는 사람과도 웃으며 인사를 한다.


미국 사람들은 하이, 하우아유? 질문을 자주 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미국 소도시에서는 더 많이 더 자주 경험하게 된다. 생판 모르는 사람과도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하는 문화, 처음에는 아주 낯설었지만 이제는 익숙해지고 있다. 특히, 공원이나 도서관 같이 몇 시간 이상 머물러서 왔다 갔다 할 경우 만났던 사람을 또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땐 더 자주 인사를 주고 받게 된다.


지난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공원으로 도시락 소풍을 갔다. 공원 화장실에 가면서 처음 본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씽긋 미소를 지으시며 내게 "How are you?" 그럴 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굿! How are you?"로 대답하면 족하다. 공원 산책하며 아까 만난 아저씨를 또 만났다. 역시 어김없이 "Hi, how's it going?" 묻는다. 역시 나의 대답은 Good! 그리고 땡큐! 모르는 사람과 자주 인사하는 것이 가끔 어색할 때도 있지만 당황하지 않고 미소를 나누며 같이 인사한다.


차도는 있으나 인도는 없다.


미국의 대도시에는 대중교통이 제법 잘 갖춰져 있고 무료 셔틀버스가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소도시에는 거의 없거나 전무한 경우도 많다. 땅이 무지하게 넓은 미국에서 로드 트립은 가장 보편적인 여행 방법 중 하나. 아무리 작은 도시에 가도 차도는 잘 닦여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차도 옆에 꼭 있어야 할 인도는 어디에도 없는 경우가 많다. 걸어 다니는 사람도 없고 걸어 다닐 필요도 없기에 인도가 있을 필요성이 없게 되었고 극소수의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위해 비싼 돈을 들여 설치할 이유도 없다고 한다.


2차선 이상의 도로에는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는 인도가 거의 없는 우리 동네. 대부분의 도로에는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인도가 없기에 가끔 위험천만한 장면을 목격하기도 한다. 차도 옆으로 걸어 다니는 사람을 보게 되는 경우다. 그런 사람이 아주 많지는 않지만 가끔 마주칠 때가 있다. 차를 운전할 때 저 멀리서 차도 옆을 아슬아슬하게 걸쳐서 걷고 있는 사람을 보게 되면 깜짝 놀라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럴 땐 당황하지 않고 절대 빵빵거리거나 비상등을 켜지 않고 속도를 살짝 줄이면서 옆 차선으로 비켜서 지나가면 된다.


맛집은 없지만 패스트푸드점은 많다.


미국은 작은 도시라 해도 이런저런 상점들이 잘 갖춰져 있다. 월마트 매장 한두 개는 기본으로 있고, 코스트코나 샘스와 같은 대형 마트도 근거리에 있는 경우가 많다. 스타벅스, 올리브 가든, 레드 랍스터와 같은 체인점을 찾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고, 콜스나 로스, TJ맥스, 타겟과 같은 대형 가게들도 가까운 곳에 여기저기 눈에 띈다. 미국의 소도시라 해도 돈을 쓰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하지만 유독 찾기도 힘들고, 없어서 아쉬운 가게가 있으니 그것은 맛집이다. 미국의 대표 음식은 무엇일까? 아마도 스테이크나 핫도그? 아니면 샌드위치 또는 햄버거? 왜 4가지 음식 밖에 안 떠오르지?! 우리 동네에서 맛있는 레스토랑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와도 같달까. 반면 음식점 중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바로 패스트푸드점이다. 평일 저녁 5~6시, 주말에는 점심, 저녁 시간 모두 패스트푸드점 드라이브 스루에는 길게 꼬리를 문 차량 행렬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다들 끼니를 패스트푸드로 해결하나 싶을 정도로 길게 줄이 늘어 선 곳을 볼 때도 있다.


미국에 살면서 외식을 할 때 때론 너무 기름지거나 달고 짠 음식이 있어 실망을 하기도 했다. 외식을 해도 별 볼 일(?)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점점 더 집밥을 잘 챙겨 먹게 되었다. 맛집도 없고 패스트푸드점만 많은 미국이지만 다행히 식재료 값은 상당히 저렴한 편이다. 삼시세끼 집밥 덕분에 몸 건강도 더 잘 챙기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외식을 안 하게 되어 집밥을 주로 먹기 시작하게 되었지만 다행이다 싶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 나도 예외는 아니다. 불혹에 처음 해 보는 외국 살이, 중년에 처음 경험하는 미국 생활이 어색하고 낯설고 때론 황당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몇 년이 흐른 지금, 나는 변했고 계속 변하고 있다. 황당한 일이 있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즐겁게 살아가련다. 불평을 하기보다는 주변 사람들과 작은 행복들을 찾고 나눌 수 있는 마음을 가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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