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오랜 친구와 서른 중반이 넘어 결혼을 했고 그 이듬해 봄에 똘똘이를 낳았다.
아들 하나면 충분하다고, 아니 때론 벅차다고 생각을 했다. 나의 학교 생활은 바쁘기 그지없었다. 아들을 낳고 3개월의 출산 휴가를 가진 후 2학기에 학교로 복귀를 했다. 그런데 예상외의 일이 생겼다. 교과 전담을 며칠간 하다가 갑자기 6학년 어느 반의 담임을 맡으라는 요청을 받았다. 겉으로는 부탁이었지만 거절할 수 없는 부탁으로 느껴졌다.
그 반은 얽혀 있는 실타래처럼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 반이었다. 원래 신규교사가 담임으로 배정되었었는데 교장선생님께서는 2학기에 담임 교체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나의 능력을 높게 평가해주셨다는 생각에, 또 지도를 잘해보고 싶은 생각에, 거절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에... "네, 알겠습니다." 호기롭게 대답을 했다. 그렇게 출산 휴가 복귀 후 얼마 되지 않아 6학년 담임을 맡았다.
이후 마음고생은 이어졌다. 어떤 반인 줄 알고 있었어요? 아기도 어린데 너무 힘들겠다... 등등 주변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더 나를 힘들게 하기도 했다. 수업을 하고 있을 때면 종종 교장선생님께서 쓱 복도를 지나가며 잘하고 있나 확인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다른 반에는 그런 일이 없었지만 우리 반은 걱정이 되신 것 같았다. 담임으로서 열심히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미 어긋나 버린반의 분위기를 완전히 되돌리기는 쉽지 않았다. 얽힌 실타래를 풀고자 애를 썼지만 금세 졸업을 맞았다.
그렇게 학교 일에 신경을 쓰는 사이 똘똘이의 육아는 온전히 친정엄마께서 맡아 주셨다.
학교를 옮긴 이후에도 뜻밖에 연구학교 연구부장을 맡으면서 4시 반 칼퇴근은 꿈같은 일이 되었다. 바쁜 와중에 대학 강의도 일주일에 두 번씩 맡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부탁을 거절하는 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 밤 7시부터 대학 수업이 있었기에 학교 수업과 일에 더해서 대학 수업을 하느라 저녁이 없는 삶을 살게 되었다. 주말에 시간이 주어져도 쉬고 싶은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주변에는 결혼을 안 했거나, 했어도 자녀가 없거나, 있어도 하나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둘 이상인 경우는 대부분 이십 대에 결혼을 하신 분들이었다. 자녀가 셋 이상인 분들은 자녀를 많이 낳으면 안 된다는 조언을 하기도 했다. 결혼을 일찍 한 친구들은 삼십 대 후반에는 이미 자녀들이 성장해서 시간적으로 여유를 찾는 경우가 많았다. 마흔 전의 나는, 아기 엄마였지만 그 호칭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교사, 박사, 강사 등등. 사회적 타이틀이 나를 대신하곤 했다.
처음에는 미국에 와서도 여전히 내 타이틀을 찾고 싶었다. 그동안의 경력과 이력이 마치 사라져 버린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 계속 할 일을 찾았다. 나는 엄마였지만 내 마음은 한동안 바깥으로 향해 있었다. 그러나 점점 내 마음 속 무언가 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가족시간을 무엇보다도 중요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자녀를 셋넷부터 여섯까지 둔 엄마들, 사회적 타이틀로 호칭하지 않고 이름만 부르는 대화 등등. 이곳에서의 삶은 많은 것들이 다르게 느껴졌다.
요즘 나는 엄마로서 자리를 찾는 삶을 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똘똘이 간식을 준비하고 학교에 데려다 줄 채비를 한다. 오전에는 운동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 영어 대화도 나누고 오후에는 저녁식사 준비를 한다. 오후 3~4시에 똘똘이 픽업을 하고 나면 벌써 하루가 저무는 듯한 느낌이다. 주말에는 하루 종일 세 식구가 함께 하며 가족시간을 갖는다. 주변 공원을 산책하고 하이킹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나와 우리 가족의 생활은 참 단순하지만 충만하다.
똘똘이를 가까이서 보고 느끼고 함께 하는 시간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엄마가 될 수 있게 해 준 똘똘이가 내 곁에 있어 좋다. 사랑해,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