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집밥을 만들어 먹어야 하는 미국 생활에서 '오늘 뭐 먹지?' 하는 문제는 한국에서보다 더 중요한 문제로 다가온다. 한국에서 있을 땐 아침은 바쁘니까 대충 해결, 점심은 학교 급식으로 해결, 저녁은 종종 회식, 외식, 배달, 또는 포장 음식으로 해결하곤 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살면서부터는 주로 집에서 만드는 음식과 도시락으로 밥을 챙겨 먹는다. 이유는 당연히 한국음식이 맛있고 먹고 싶기 때문, 또한 미국 식당 음식은 그다지 맛이 없고 한국음식보다 건강에도 좋지 않으며 비싼 것도 이유가 될 것 같다.
오늘 뭐 먹지? 질문을 해 볼 때, 김과 밥만 있으면 만들어 먹기도 크게 어렵지 않고 맛도 좋으며, 있는 재료에 따라 다양한 변주를 즐길 수 있는 음식으로 단연 김밥을 들고 싶다. 원래부터 김밥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미국에서 지내면서 더욱더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 음식으로 김밥을 꼽는다. 친구네 집에 초대를 받으면 나는 우선순위로 김밥을 만들어 갈 생각을 먼저 한다. 한국인 가정으로 초대를 받을 때 김밥을 대접받으면 그 역시도 너무 맛있고 좋다.
여름에 먹은 김밥
작년 여름, 미국 친구인 필립과 사라네 집에 놀러 간 적이 있다. 친구네 집 바로 옆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묵으면서 같이 휴가를 보내자고 해 주어서 며칠 동안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필립네 집은 한적한 시골에 위치해 있다. 덕분에 머무르는 내내 아주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밥도 같이 해 먹고 아이들과 플레이 데이트도 함께 했다. 필립은 어릴 적 일본에서 5년 이상 살았기 때문에 아시안 음식을 무척 좋아한다. 특히, 김이 들어간 음식인 김밥, 초밥을 제일 좋아한다.
하루는 필립과 아이들에게 김밥을 싸 줄 요량으로 미리 준비해서 냉동실에 넣어놨던 김밥용 김을 꺼냈다. 빵보다 밥을 즐겨 먹는 필립네 집에는 역시나 일본 코끼리 밥솥이 주방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었다. 김밥을 싸 주려고 하다 보니 문제는 밥이었다. 미국의 많은 사람들은 찰기가 전혀 없는 롱 그레인 쌀(long grain rice, 일명 태국 쌀)을 즐겨 먹는 경우가 많다. 다행히도 필립은 한국 쌀 종류인 숏 그레인 쌀(Short grain rice)을 먹고 있었다.
밥솥에 밥을 넉넉히 한 후, 속재료를 준비했다. 사라에게 물어보니 계란, 오이, 햄, 당근이 있었다. 단무지는 없었지만 4가지면 김밥 재료로 충분했다. 혹시나 해서 위생용 비닐장갑을 가져갔는데 요긴하게 잘 썼다. 김밥을 말 때 대나무발은 필요가 없지만 비닐장갑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밥이 되는 사이 모든 재료를 준비해 놓은 후 비닐장갑을 양손에 착 끼고 김밥을 말기 시작했다. 필립은 김밥 마는 모습을 처음 본다고 했다. 왔다 갔다 음식을 하면서 계속 나를 힐끔힐끔 계속 쳐다보는 필립이 왠지 귀엽게 느껴졌다. 내가 만든 김밥과 사라와 필립이 준비한 닭고기와 스파게티로 푸짐하게 상을 차렸다. 짜게 먹는 필립은 간장에 콕콕 찍어 김밥을 먹었고 아이들도 우리들도 오랜만에 김밥을 맛있게 먹었다.
가을에 먹은 김밥
지난가을에는 한 친구네로부터 땡스기빙(추수감사절) 초대를 받았다. 그 친구네 부부는 모두 흑인이다. 흑인 가정으로부터 식사 초대를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 백인들이라 흑인이 많지 않은데 남편이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면서 자메이카에서 온 한 흑인 친구를 알게 되었다. 이번 초대는 각자 음식을 지참해서 방문하는 포트럭 파티(Potluck party)가 아니고 식사를 같이 하고 싶어서 초대하는 것이라며 그냥 와도 좋다고 했지만 나는 그냥 가기는 싫었다. 한국음식을 가져가고 싶어서 문자를 보내니 'Sure, if you want! 원한다면 물론이죠!' 답장이 왔다.
친구네 집은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몇 년 전에 오래된 큰 집을 샀는데 계속 고쳐가면서 쓰고 있다고 했다. 하얀색 페인트로 집 전체가 깨끗하게 칠해져 있어서 마치 새집처럼 느껴졌다. 친구네 집에는 부부와 1살부터 6살까지인 아이 세 명이 우리를 반겼다. 땡스기빙 기념으로 놀러 온 친척 3명도 함께 있었다. 내가 준비한 한국음식은 두 가지, 김밥과 떡볶이였다. 떡볶이는 오뚜기에서 나온 맛있는 국물 떡볶이를 활용했다. 마침 인터넷으로 몇 봉지 사놓은 것이 있었다. 즉석식품이지만 어묵도 넣고 양배추와 파 등 야채도 듬뿍 넣으니 적당히 매콤하면서도 맛있는 떡볶이가 만들어졌다.
친구 부인인 페기는 아이티 공화국에서 온 분이었다. 둘은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 만났다고 했다. 페기에게 두 가지 한국음식을 건네니 처음 한국음식을 접해 본다며 색깔이 너무 예쁘다고 칭찬을 했다. 그러면서 페기는 캐러비안 음식으로 준비를 하려고 했지만 재료 준비에 어려움이 있어 그냥 미국식 땡스기빙 음식으로 모두 준비했다고 말했다. 터키 구이, 크렌베리 소스, 매쉬드 포테이토, 고구마 캐서롤, 샐러드 등 모든 음식이 맛있어 보였다. 음식 준비하는 데 시간이 엄청 걸렸을 것 같다고 하니 어제오늘, 이틀 동안 꼬박 준비를 했단다. 가장 푸짐한 음식을 먹는 땡스기빙 저녁식사는 미국 음식이라도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 김밥과 떡볶이를 처음 먹어 보는 흑인 친구들이 너무 생소해서 안 좋아하면 어떡하나 약간의 걱정을 하기도 했다. 김의 해초 맛과 떡볶이의 미끈한 식감을 안 좋아하는 미국 친구들을 몇 번 본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예상외로 두 가지 한국 음식 모두 인기가 많았다. 김밥은 식사 초반부에 다 사라져 버렸다. 역시 김밥은 오늘의 땡스기빙 식탁에서도 빛을 발했다. 떡볶이는 대학생인 친구네 두 조카가 맛있게 먹었다. 정말 맵지만 달달한 맛이 좋다며 이상하게 계속 먹게 된다고 했다. 내 앞에서 떡볶이를 야무지게 먹는 두 명의 흑인 대학생을 보면서 왠지 마음이 뿌듯했다.
한국인과 먹은 김밥
김밥은 한국인 친구네 집에 놀러 갔을 때 먹는 음식으로도 아주 그만이다. 몇 달 전에 한 한국분께서 간단히 점심을 먹자며 초대를 해 주신 적이 있다. 반찬도 없고 하니 간단히 김밥이나 말아먹자고 하셔서 "김밥이 최고의 반찬이자 밥인데요!"라고 대답을 했다. 댁으로 방문을 드리니 모든 김밥 재료가 잘 차려져 있었다. 김밥 마는 나무 발이 없어서... 하시길래 "저는 발 없이 그냥 마는 게 좋더라고요! 제가 한번 말아볼게요." 말씀을 드렸다. 랩을 활용해서 누드김밥도 만들어 보자고 하셔서 처음으로 도전을 했다. 누드김밥에는 밥이 조금 더 넉넉하게 들어가야 한다고 팁을 주신 덕분에 꽤 근사하게 만들 수 있었다. 집에 가기 전 도시락 통을 3개를 건네주셨다. 그러시더니 가족과 저녁으로 김밥을 먹으라며 통에 담아 가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김밥 도시락 세 통을 가지고 오면서 한국인의 정도 듬뿍 느꼈다.
지난주에는 얼마 전 한국 방문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온 한국 친구가 차 한잔 하자며 집으로 놀러 오라고 카톡을 보냈다. "그럼 저는 쿠키를 만들어 갈게요." 회신을 보냈더니 잠시 후 다시 카톡이 왔다. "언니, 점심 식사 어떻게 하세요? 저희 집에서 간단히 같이 먹으면 어때요?" 며칠이 지나고 요즘 즐겨 만드는 인절미 쿠키와 찹쌀 계란빵을 만들어 친구네로 찾아갔다. 친구가 준비한 메뉴는 즉석 김밥, 김밥 속재료를 각자 김에 싸서 취향껏 간장에 찍어 먹는 김밥이었다. 정말 신선한 아이디어였다. 원하는 대로 싸 먹는 김밥이라니! 재료에는 간을 거의 하지 않고 김 위에 밥과 속재료를 넣은 후 젓가락으로 말아서 고추냉이 간장에 찍어 간을 맞추니 맛도 일품이었다. 나도 집에서 해 봐야지~
나와 가족을 위한 김밥
가끔 무엇을 먹어야 할지 잘 떠오르지 않을 때, 고민이 될 때는 무조건?! 김밥을 만다. 우리 부부는 아침을 먹기보다는 브런치를 즐겨 먹는 편이다. 똘똘이는 아침을 꼭 먹어야 하지만 나와 남편은 보통 각자 집과 학교에서 브런치로 첫 식사를 시작한다. 김밥은 다른 반찬이 필요 없고 하나씩 집어 먹기도 편해서 브런치 메뉴로 딱이다. 단무지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맛있다. 단무지도 계란도 오이와 당근마저도 없었을 때 상추와 볶은 소고기, 어묵 볶음으로 김밥을 만들어 먹은 적이 있다. 마치 쌈을 싸 먹는 것처럼 아삭하고 상큼한 느낌이 있어 좋았다. 남는 김밥은 통에 넣어 보관했다가 계란물을 묻혀 김밥전을 만들어 먹으면 기름지면서 고소한 계란의 맛을 한층 더 느낄 수 있어 그것 또한 일품이다.
한결같이 가장 즐겨 먹는 한국 음식,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나에게 있어 김밥이다. 미국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던 한국 음식, 친구들이 가장 좋아했던 한국 음식도 김밥이었다. 미국에서 김밥이면 끝! 그저 완벽하다. 앞으로도 나의 김밥 사랑은 계속될 듯~ Maybe? Probab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