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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Feb 28. 2022

두 유 like 두유?

한국어와 영어를 다 잘할 수 있길

Children are sponges, soaking up every verbal and nonverbal interaction. -Asa Don Brown-


미국에서 산 지 5년이 되면서 똘똘이는 어느새 한국에서 산 시간보다 미국에서 산 시간이 많아져 버렸다. 한국의 만 나이로 4살 직전에 미국으로 이사를 왔으니 5년이란 시간은 똘똘이 인생에서 실로 엄청난 시간이 되었다. 똘똘이는 4살 때 한국어를 곧잘 하는 이였다. 그래서 더 심했을까? 미국으로 이사를 온 후 똘똘이의 영어 거부반응은 정말 심했다. 영어를 하나도 못 알아들었던 4살의 똘똘이는 온통 영어뿐인 미국 어린이집에 적응하기까지 아주 험난하고 혹독한 시간을 보냈다.


그랬던 똘똘이가 친구들을 점차 사귀면서 조금씩 영어를 받아들이게 되었고 몇 년이 지나자 영어 때문에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미국 어린이집을 거쳐 공립학교에서 유치원과 초등 1, 2학년을 보냈고 이제 3학년 생활을 하고 있으니 모두 합쳐 약 4년의 학교생활을 한 똘똘이. 아이는 스펀지, 모든 것을 흡수한다고 했던가. 학교 선생님 면담 시간에 똘똘이의 영어가 괜찮은지 질문을 하면, "No problem at all."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가끔 꿈인가 생시인가 싶기도 하다. 이제 나의 걱정은 완전히 역전이 되었다. 한국어를 어떻게 하면 지속적으로 잘 배우게 할 것인가가 되었다.


어린 나이, 특히 미취학 전에 미국으로 와서 계속 성장을 할 경우 한국어가 완전히 자리잡지 않았기 때문에 영어만 계속 쓰고 접하게 되면서 한국어를 거의 또는 완전히 잊어버리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아는 한국분의 경우 5살에 미국으로 이사를 오셨는데 가족 모두 한국인이었지만 성인이 된 지금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신다. 또 영어 수준은 정상적으로 발달해 나가지만 한국어 수준은 초등 저학년 수준에만 머물러 있거나 한국어 듣기만 되고 말하기는 전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한국인으로서 한국 엄마이자 아들로서 당연히 우리에게 한국어는 영어보다 훨씬 중요하다. 집에서는 한국어만 쓰고 있고 한국어 수업을 매일 해 주지는 못해도 일주일에 두세 번씩은 해 주고 있기에 다행히 똘똘이의 한국어 실력은 여느 한국 어린이와 비슷한 수준이다(라고 믿고 있다). 다만 형제가 없고 동네에 한국 아이들도 전혀 없는 탓에 똘똘이의 한국어 대화 상대는 온전히 엄마 아빠뿐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가끔 똘똘이의 한국어와 영어는 내게 큰 웃음을 선사한다.    


션찮


언젠가 팬데믹이 한창이었을 때 한국에 있는 친구와 통화를 한 적이 있다.  

"미국 생활 어때? 어떻게 지내고 있어~"

"그럭저럭 지내지 뭐~ 션찮어."


통화가 끝나고 똘똘이는 질문을 했다.

"엄마, 션찮어가 무슨 뜻이에요?"

"음... 좀 맘에 안 든다는 뜻이지."

*션찮다: 마음에 흡족하지 아니하다/몸이나 몸의 일부가 좀 건강하지 못하다'의 뜻으로 '시원찮다'의 준말  


똘똘이는 이 말이 재미있었는지 작은 소리로 '션찮'을 몇 번 말해보며 키득거렸다. 그리고 이후 어느 날 아침, 늦잠을 자서 허둥지둥 일어난 날 똘똘이는 두 글자를 크게 외치며 짜증을 부렸다.

션찮!!


무슨 말을 하나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똘똘이가 하는 말, "엄마, 늦었어요! 정말 션찮네, 션찮어!"고개를 흔들며 연신 말을 하는 똘똘이의 모습이 어찌나 웃기던지 배꼽을 잡았다.   


어지간히


나도 모르게 내가 자주 쓰는 말 중에 '어지간히'라는 말이 있었나 보다. 나도 내가 무슨 말을 자주 쓰는지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지만 똘똘이를 통해 알게 될 때가 있다. 비가 너무 많이 올 때 "어지간히 비도 많이 오네.", 말을 안 듣는 똘똘이한테 "어지간히 게임 좀 해라.", 아침 준비가 늦을 때 "어지간히 늦네." 등등  

*어지간히: 수준이 보통에 가깝거나 그보다 약간 더 하게, 정도나 형편이 기준에 크게 벗어나지 아니한 상태로


언젠가 똘똘이가 화장실에서 큰 일?!을 보고 있는데 중얼중얼 무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어지간히 안 나오네. 안 나와." 볼 일을  마치고 나온 똘똘이가 내게 말을 건넸다.

"엄마, 채소 좀 먹어야겠어요."

"아~ 그래? 힘들었어?"

"어지간히 안 나오더라고요."

"푸하하~ 어지간히 안 나왔구나!"


'치~이즈'와 '치즈~'


한국어의 단어들 중에는 영어 등의 외국어에서 온 것들이 꽤 많다. 외래어는 7%, 둘 이상의 원어로 구성된 혼종어는 17%에 이르는데, 원어 중에서 영어의 비율단연코 높다. 같은 단어, 비슷한 소리지만 영어로 말할 때와 한국어로 말할 때는 그 발음에 큰 차이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교에서는 영어만 쓰고, 집에서는 한국어만 쓰는 똘똘이는 기가 막히게 그 차이를 집어내곤 한다.


간식으로 치즈를 먹고 있는데 뜬금없이 질문을 한다.

"엄마, 치즈는 '치~이즈'가 맞을까요? 아니면 '치즈~'가 맞을까요?"

"둘 다 똑같은 거 아냐?"

"'치~이즈'는 영어고, '치즈~'는 한국어예요."

"정말 그렇네! 같은 단어인데 발음이 다르네!"


우리 동네에 있는 거리 이름은 Wood Avenue. 난 왜 이리도 더블 O 발음이 어려운지 모르겠다. 우드~ 우드~ 몇 번을 연습해도 내 발음은 아무래도 약간 어색한 듯 느껴졌다.

"우드, 우드, wood 발음이 왜 이렇게 어렵지?"

라고 말을 하는 내게 똘똘이가 한 말은

"엄마, 영어로는 '우으~드'고 한국어로는 '우드으~' 같아요."

"아~ 그런 차이가 있네!"


두 유 like 두유?


우유만 먹다가 오랜만에 인터넷으로 두유 몇 박스를 주문했다. 100% 한국산 콩으로 만든 두유! 조금 비싸긴 했지만 가족의 건강음료로 구매를 했다. 두유 겉면에는 한국어로 콩담백'두유'라는 말이 크게 쓰여 있었다. 똘똘이는 내게 두유 한 팩을 주면서


"엄마, 두 유 like 두유?"

'Do  you'와 '두유' 발음이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집에서 갑자기 영어를 쓰며 내게 질문을 건넸다. 발음은 거의 비슷하지만 뜻은 서로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 너무 재미있었는지 질문해 놓고는 풉~! 웃는 똘똘이, 나도 덩달아 크크~ 웃음이 났다.


"오~ 두유~ 좋지! 엄마의 대답은 당연히 예쓰 아이 두!"


미국 소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 가족에게 한국어를 쓸 기회는 생각보다 많이 주어지지 않는다. 이미 중년의 나이가 되었고 학교 공부를 더 이상 하지 않는 내게는 영어 실력이 더 필요하겠지만, 매일 학교에 다니며 영어를 접하고 있는 뇌가 말랑말랑한 어린이 똘똘이에게는 영어보다 한국어가 더 필요할 것이다. 외국에서 모국어와 현지어 모두 다 잘하게 되는 것은 쉽지 않은 길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똘똘이가 한국어와 영어 잘할 수 있길 바라는 내 마음은 늘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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