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live Oct 01. 2022

한국말이 이렇게나 어려웠나?

오늘도 감사한 하루

Gratitude turns what we have into enough.


미국으로 이사를 온 이후 한국어를 가르치게 되면서 한국말이 이렇게나 어려웠나 생각을 할 때가 많아졌다. 무심코 또는 당연한 거 아냐? 하면서 쓰던 한국어였지만 사용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그 차원이 전혀 달랐다. 그동안 한국어는 누구보다도(?) 꽤(!) 자신이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영어를 배우고 사용하면서 '영어가 이렇게 어려웠나?' 생각을 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한국어도 만만치 않군.' 하면서 이마를 탁 칠 때도 있고, 때론 '정말 장난 아니네.' 하며 뒷목을 잡고 싶어질 때도 있다.


특히, 한국어의 복잡한 높임법과 다양한 종결어미는 영어 사용자들에게 매우 생소한 개념이기에 잘 가르치기가 쉽지 않다. 같은 말도 높임 수준에 따라 밥, 식사, 진지로 나뉘고, 이빨, 이, 치아로 구분이 되기에 어려워할 수밖에 없다. 한국어의 종결어미는 왜 그리도 다양한지. 처음에 '~예요.'와 '~이에요.'로 문장을 가르칠 땐 잘 따라오지만, '~지요.', '~네요.', '~군요.'. ~고요.', '~나요.' 등등 종결어미가 바뀌면서 주는 느낌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을 설명할 땐 점점 헷갈려하기 시작한다.


그동안 편하게 잘 써왔던 한국어 단어들도 한국어 수업을 앞두고서 정확한 뜻이 무엇이었더라 생각을 해 보면 갑자기 아리송해질 때가 많다.


'벌써'와 '이미'


이 둘은 부사로서 영어로는 모두 'already'가 된다. '벌써'는 '이미 오래전에'라는 뜻을 나타내고. '이미'는 다 끝나거나 지난 일을 이를 때 쓴다. 서로의 의미는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벌써'는 '예상보다 빠르게'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나는 그 일을 이미 알고 있었다./나는 그 일을 벌써 알고 있었다.’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미'가 들어간 문장을 '벌써'로 바꾸어도 의미가 자연스럽다. 그러나 ‘벌써 집에 가려고?, 벌써 10월이 되었구나!'와 같은 '벌써'가 들어간 문장을 '이미'로 대체하면 문맥이 영 자연스럽지 않다.


'이제'와 '지금'


이 두 단어도 영어로는 'now'라는 한 단어로 해석 된다. ‘이제’는 ‘바로 이때에’를 가리키고 ‘지금’은 ‘말하는 바로 이때에’라는 뜻을 지닌다. ‘이제’와 ‘지금’이 모두 ‘바로 이때’를 가리키나, 둘에는 큰 차이가 있다. '지금'과는 달리 '이제'에는 지나간 때와 단절된 느낌이 들어있다 점이다. '이제 며칠 후면 졸업이다. 이제 그만 울어요. 숙제도 다했고 이제 뭐 하지?' 등과 같이 '이제'에는 지금의 상황이 지난 간 때와 단절되어 있다는 의미가 있다. 반면 '지금'은 그저 '바로 이때'의 의미만 지니고 있다. '집에 지금 도착했다. 지금 공부를 하고 있다.'와 같이 쓸 수 있다.  


'보내다'와 '지내다'


한국어 수업 때 꼭 한 번씩은 사용하는 말이 있다. 수업을 시작하면서 '잘 지내셨어요?' 하면서 안부를 묻고, 수업을 마치면서 '좋은 하루 보내세요.'를 말하고 헤어진다. 우리는 보통 '주말/휴가 잘 보내세요.'라고 말을 하지 '주말/휴가 잘 지내세요'라고는 잘하지 않는다. '요즘 잘 지내요?'라고 묻지, '요즘 잘 보내요?'라고 묻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보내는 것과 지내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 둘의 의미는 비슷하다. 다만, '보내다'가 조금 더 구체적인 기간이나 시간에 어울리는 말로 이해것이 일반적이다. '지내다'는 일정한 시간을 보낸다는 의미로 좀 더 막연하고 긴 시간을 의미할 때가 많으'잘'이라는 부사와 함께 쓰일 때가 많다.


'최근'과 '요즘'


'최근'과 '요즘' 또한 헷갈리는 단어 중 하나이다. '요즘'은 '요즈음’의 준말로 둘 다 표준어이다. '최근'은 '얼마 되지 않은 지나간 날부터 현재 또는 바로 직전까지의 기간', '거리 따위가 가장 가까움'을 의미하는 말이고 '요즘'은 '바로 얼마 전부터 이제까지의 무렵'을 의미하는 말이다. '최근'의 첫 번째 뜻과 '요즘'의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최근'은 특정 기간의 설정이 가능한 반면, '요즘'은 특정 기간 설정이 어색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최근 3년 간'은 자연스러운 표현이나, '요즘 3년 간'과 같은 표현은 어색하다. 또한, '최근'은 '최근 거리'와 같이 거리와 기간을 나타낼 때 모두 쓸 수 있으나, '요즘'은 기간을 나타낼 때만 쓴다.


'공교롭다'와 '마침맞다'


요즘 문득 떠오른 말이 있었다. 인생이 참 공교롭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그런데 왠지 이 말이 아주 긍정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정확한 뜻이 뭐지? 사전을 찾아보니 '공교롭다'는 '생각지 않았거나 뜻하지 않았던 사실이나 사건과 우연히 마주치게 된 것이 기이하다고 할 만하다.'는 뜻이었다. 공교롭다는 말에는 '기이하다'라는 의미가 들어 있었다. '기이하다'는 '기묘하고 이상하다.'는 말이기에 약간의 우려 들어있다고 할 수 있다. 공교롭다는 말 대신 긍정적인 말은 없을까? 그때 생각난 말은 '마침맞다’였다. ‘어떤 경우나 기회에 꼭 알맞다’는 뜻으로, 보통 ‘마침맞게’ 또는 ‘마침맞은’의 형태로 쓰인다. 예를 들어 ‘이 일에 마침맞은 사람이 있다.’라든지 ‘집에 과일이 다 떨어졌는데 마침맞게 잘 사 왔다.’와 같이 쓸 수 있다.


미국에 와서부터는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경험해 보지 못했던 여러 가지 일들이 내게 벌어지고 있다. 하는 일, 나이, 인종이 다양한 여러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고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알리면서 보람을 찾기 시작했다.


이미 난 미국에 와 있고, 벌써 이렇게나 시간이 흘렀다.

이제 내 생활은 많이 달라졌지만 지금의 내 모습도 참 좋다.

나 자신과 남편, 아들과 사이좋게 잘 지내며 소중하게 하루를 보내자.

최근에 새롭게 사귄 친구들이 있어 요즘 내 생활이 더 따뜻해지고 풍요로워졌다.

때론 공교롭지만 마침, 때마침, 마침맞게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에 대해서 감사하며...

매거진의 이전글 교수님은 학생이고 난 선생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