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글을 쓰지 못한 지 어느덧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일주일에 최소 한 두 번은 글을 써서 올려야지 생각하고 있지만 이번 달에는 이를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꾸준함은 내게 가장 어려운 도전 중 하나이다. 그동안 글을 자주 못 올린 것에 대해서 반성하고 또 반성하면서 10월 한 달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떠올려 본다. 누구를 만나고 무슨 일들을 하며 시간을 보냈지?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려 보니 한 달 동안 소소하게 많은 일들이 있었다. 매일이 비슷하고 똑같은 것 같았지만 하루하루는 다 달랐고 또 각기 소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특별한 일이 있었다. 바로 주차장에서 만난 인연이다. 새로운 인연은 언제 어디에서 빚어질지 모르는 법. 10월 초의 어느 날, 동네 마트에서 장을 보고 주차장에서 장 본 물건들을 트렁크에 싣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 한 여성분께서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왠지 빠른 발걸음 같았다. 우리 동네에는 한국 사람은커녕 아시아 사람도 많지 않기 때문에 내게 다가오는 분이 아시아 사람이라는 걸 쉽게 직감할 수 있었다. 우연히 힐끗 쳐다보고는 전혀 모르는 얼굴이기에 '설마 내게 오는 중은 아니겠지...'라는 생각을 잠시 하다 이내 고개를 돌려 드렁크에 짐을 계속 실었다.
저기... 혹시 한국 사람이세요? 네, 맞아요!
멀리서 나를 보고는 딱 한국 사람처럼 보여서 너무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뛰어 왔단다.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우리 둘은 너무 반가웠다. 처음 만난 사이, 생판 모르는 남남인데도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계속 대화가 이어졌다. 이 동네로 2년 전에 이사를 오셨고 팬데믹 때문에 주로 집에서만 지냈다고 하셨다. 동네에서 한국 사람을 처음 만난 거라고 하셨다.
오랜만에 상봉한 친척 사이라도 되는 듯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나이와 휴대폰 번호를 묻는 것도 빼먹을 수 없었다. 그분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기에 호칭은 언니로 정해졌다. 나는 초등학생 아들 하나, 그분은 고등학생 딸 하나. 서로의 가족과 근황에 대해 물으며 30분 정도 주차장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저녁식사에 초대하고 싶다는 말에 나는 당연히 좋다는 답변을 드리고 헤어졌다.
집에 오자마자 문자를 드렸다. 모르는 분과의 우연한 만남, 함께 한 30분 간의 대화. 집에 와서도 자꾸 생각이 났다. 내가 누굴 만났지? 잊어버리기 전에 얼른 문자 한 통 드리고 싶었다. 그리고는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띠롱! 가족 모두를 저녁식사에 초대하고 싶다고 문자를 보내 주신 언니. 식사 대접이니 그냥 오라고 하셨지만 나는 엊그제 사 둔 호박이 생각났고 호박 찰떡을 만들어서 가기로 했다. 만남은 10월 중순의 금요일 저녁으로 정해졌다.
드디어 만남의 날이 되었고 우리집에서 2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언니네 집 앞에 도착을 했다. 주차를 하고 있는데 언니와 남편 분이 집 앞으로 모두 나와주시며 인사를 건네셨다. 찾아와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하셨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먼저 드리려고 했는데 우리보다 빠르셨다. 집안으로 들어가서 식탁을 보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도토리 묵, 메밀전, 동그랑땡, 잡채, 구운 밤, 김치도 겉절이와 무 김치 두 가지나! 잔칫상이 안 부러울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그러나 메인 메뉴는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돼지국밥! 나와 남편 모두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그리고 뒤따른 스페셜 메뉴는 수제 막걸리였다. 알고 보니 언니네 가족은 우리 동네로 이사 온 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미국에서 생활한 지는 한참 되셨으며 가정식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분들이셨다. 평소 술을 안 먹는 우리 부부지만 오늘은 안 먹을 수 없었다. 스프라이트를 조금 섞었다고 하셨는데 역시 막걸리가 음료수처럼 상큼하니 술술 넘어갔다.
식사 중에 언니께서는 한 가지 제안을 하셨다. 내가 알고 있는 한국인 가족분들도 같이 다음 주에 또 집으로 저녁식사 초대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와 친하게 지내고 있는 두 가족께 연락을 드렸고 우리 가족까지 포함하여 모두 세 가족이 언니네 집으로 다시 찾아갔다. 지난 저녁식사 이후로 딱 일주일 만이었다. 언니께서는 식사 대접이니 다들 그냥 오라고 하셨지만 손이 심심하지 않도록 각자 디저트 또는 꽃다발을 준비해서 방문했다.
지난번에 찰떡이 너무 맛있다고 하신 것이 기억이 나서 이번에 나는 다른 버전의 찰떡을 준비했다. 흑임자를 듬뿍 넣은 소보루 찰떡을 만들어서 가지고 갔다. 네 가족, 아이 포함 모두 10명을 위해 언니네가 준비한 음식은 월남쌈이었다. 새우와 수육, 각종 채소가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다. 수제 막걸리 한 잔도 빠지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두 번째 만남, 다른 두 가족들은 첫 만남이었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후 5시에 시작한 만남은 밤 10시가 돼서야 끝이 났다.
초대받았던 다른 가족분께서 이번에는 우리집으로 초대하고 싶다고 제안을 하셨다. 그렇게 우리들은 연속 3주째 금요일 저녁을 함께 했다. 마치 새로운 식구가 생긴 기분이 들었다. 언니께서는 돼지국밥을 먹어 보지 못했던 두 가족들께도 돼지국밥을 대접해 드리고 싶다며 11월 초에 세 가족 모두를 다시 초대하셨다. 돼지국밥을 또 먹을 수 있다니! 다음 주 금요일 저녁을 내심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주차장에서 만난 인연 덕분에 올해의 가을은 더 따뜻하게 지나가고 있다.10월 한 달 동안 있었던 일들 중에서 가장 소중한 만남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