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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Sep 21. 2022

교수님은 학생이고 난 선생님

나의 학생이 된 미국 교수님

Don’t let your age discourage you from pursuing an education.


요즘 나는 일주일에 두 번, 한 시간씩 대학 강의실에서 특별한 학생을 만난다. 올해 3월부터 우리의 한국어 공부 만남을 가지기 시작했다. 봄 학기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약 두 달간 만났고, 가을 학기에는 횟수를 두 번으로 늘려서 석 달간 진행을 하기로 했다. 미국에서 살면서 많은 한국어 학습자들을 꾸준히 만나 왔 교수님을 가르쳐 보는 건 처음이다. 이 분이 특별한 이유는 나보다 나이가 많으심에도 늘 예의 바르고 겸손하시며 공부에 대한 엄청난 열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교수 겸 인터내셔널 업무를 맡아하시는 교수님은 약 10년 전쯤 한국에서 산 경험이 있다. 1년 정도 서울의 큰 학원에서 영어 강사 생활을 했는데 그 기간 동안 한국이 너무 좋아졌단다. 미국으로 돌아오셔서 교수가 된 이후에도 개인적으로 또는 학생들을 인솔하여 몇 번의 한국 방문을 했다고 하셨다. DMZ에는 무려 네 번을 방문했고 제주도 여행도 세 번이나 했다고 하시며 제주 흑돼지를 너무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서 잊지 못하고 있다고.


작년 여름까지 나는 이 분을 알지 못했다. 만날 기회도, 만날 이유도 전혀 없었다. 인근 대학에서 알고 지내는 사람은 학교에서 일하는 한국분들 몇 명이 전부였다. 하지만 우리 둘을 이어 준 단 하나의 사건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브런치가 이어 준 기적 '글로벌 프로젝트'였다. 첫 만남은 작년 초가을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미국 온라인 교류 프로그램에 관심 있는 대학생들을 구하고 싶어 인터내셔널 업무과에 몇 가지 질문이 담은 이메일을 드렸고 이 교수님에게로 연결이 되었다.


우리는 한 번의 커피숍 만남을 가졌을 뿐, 글로벌 프로젝트 내내 교수님을 다시 만날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글로벌 프로젝트를 모두 마치고 나서 올해 초 교수님은 내게 한국어 선생님이 되어 주실 수 있는지 정중하게 부탁의 이메일을 보내셨고 이후 우리들의 만남은 다시 이어졌다. 한국어를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한편에 계속 있었는데 그동안 선생님을 못 찾아서 용기 내지 못했다고 하셨다. 그렇게 둘의 공부 모임은 시작되었다. 3월 화창했던 어느 봄날, 한국어 첫 수업을 마치고 나서 교수님은 내게 짧지만 열정이 돋보이는 이메일을 보내 주셨다.



수업 후에 나는 종종 함께 공부한 내용과 관련되는 유튜브 동영상을 보내드리곤 했고 이메일을 보내드릴 때마다 교수님은 매번 답장을 통해 한국어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 주셨다.



봄에 약 두 달간의 공부 모임을 마치고 긴 여름방학을 맞았다. 그리고 개학을 할 무렵 우리의 한국어 수업은 재개되었다. 교수님의 열정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만남 횟수도 일주일에 한 번에서 두 번으로 늘렸다. 교수님은 한국어 전래동화책을 샀다고 내게 자랑을 하기도 하고, 본인이 즐겨 읽고 있는 책을 내게 소개해 주기도 하신다. 한국어 공부 모임이지만 만날 때마다 서로의 근황을 묻고 가족의 안부를 챙기는 것도 빼먹을 수 없다.



지난봄에 두 달간 공부하면서 한글의 원리, 문장 구조 등의 내용은 뗄 수 있었다. 아주 기초적인 내용은 공부를 모두 마쳤으니 이번 가을에는 조금 더 흥미와 재미를 더하는 내용으로 본격적인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2NE1과 싸이를 좋아한다고 하시길래 얼마 전에는 '내가 제일 잘 나가''FIRE', '댓댓' 노래의 가사 일부분을 가르쳐 드렸다. 가위바위보 등의 간단한 게임 통해 서로에게 한국어 질문을 주고받기도 한다. 지난 추석 때는 약밥을 나누어 드리고 윷놀이를 함께 하며 추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했다.  


수업 이외에도 하루에 한 번 정도 한국어로 문자를 주고받으며 연습을 해 보는 것도 제안했다. 호칭은 박사님, 교수님, 또는 선생님을 섞어 쓴다. 교수님은 대학에서 보직을 맡으면서 교수 역할이 많이 줄어들었다며 서로에게 박사님 호칭이 제일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한국에서 살아보셔서 그런지 호칭 문화를 아주 잘 알고 계신다. 아직은 간단한 수준이지만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국 교수님과 한국어 문자를 주고받는 재미가 쏠쏠다.  분과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 생각과 마음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이 어떨 땐 너무 신기하게 느껴진다.        



우연한 기회로 소중한 만남이 시작되었고 귀한 인연을 만들어 갈 수 있음에 여러 가지로 감사하고 보람된 마음이 드는 요즘이다. 미국에서 살면서 내게 영어를 가르쳐 주고 함께 서로의 일상을 나누며 우정을 쌓아가고 있는 몇 분의 귀한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도 한국어를 가르쳐 드리며 서로의 삶을 나누고 공유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났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순간만큼은 교수님은 학생이고 난 선생님이지만 나는 교수님으로부터 열정적이고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배우고 있다.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역할이 되어 주고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한국 사람으로서, 한국 선생님으로서 큰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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