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I am thankful for my past which leads me to this moment where my dream journey begins anew.
그동안 항상 꿈꾸는 삶을 살아왔다. 학창 시절에는 선생님이 되는 꿈을 꾸었다. 가르치는 걸 좋아하는 나는 꼭 선생님이 되고 싶었고 그 꿈은 나를 선생님이 되도록 했다. 선생님이 되면 마냥 행복할 줄 알았지만 학교 현장은 나의 기대와 다를 때가 많았다. 보여주기 식의 전시 행정에 회의감이 들었고, 모든 것이 승진 점수화되는 교육 현장은 수업보다는 다른 일들을 더 중요하게 만들었다. 이런 학교의 모습들은 나를 교육행정 공부로 이끌었다. 교직과 병행하며 대학원 공부를 했고 그 이후로는 박사 학위에 대한 꿈이 생겼다.
박사 공부를 하면 세상이 조금은 바뀔 거라는 꿈을 꾸었다.내가 조금은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박사 졸업 후에도 달라진 건, 다르게 할 수 있는 건 많이 없었다. 수업 시간에도 행정 업무 때문에 전화벨이 울리고 공문 처리를 해야 할 땐 자괴감이 들었다. 수업 준비 시간보다는 수요일 친목 배구 시간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교사의 꽃은 담임교사이고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수업이라고 배웠지만, 학교에서는 교사의 꽃은 교장이며 수업보다는 행정 업무가 중요하다고 했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미국행을 결정 내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알릴 때였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부부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 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 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한국에서 승진도 하고 돈도 더 벌고 그래야 할 나이에 웬 미국이냐며 만류를 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물질적인 측면으로 봐서는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었다. 그러나 결국 우리 가족은 외국살이를 결정했고 어느덧 미국에서 꽤 시간이 흘렀다. 사십 대에 겪은 5년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처럼 느껴진다.
미국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여기서 나의 꿈은 무엇이지? 그런데 내 머릿속에자꾸 드는 생각은 이제 더 이상 꿈을 꾸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꿈을 꾸고 꿈을 이루고, 더 높은 곳을 향해 또 꿈을 꾸고 꿈을 이루는 삶. 물론 그런 삶도 가치롭고 좋은 삶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중년이 된 나는 계속 꿈꾸는 삶이 아닌 꿈꾸던 삶을 택했다. 바쁘고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가며 꿈꾸는 삶보다는 그동안 꿈꾸어 왔던, 언젠가는 실현해 보고 싶었던 삶을 살고 싶었다.
배우고 가르치는 삶
학교에서 나는 보직교사를 오랫동안 맡았었다. 교사로서 배우고 가르치는 삶이 너무도 소중했고 교실에서 수업에 집중하며 학생들을 마주할 땐 행복했지만 학교에 가면 행정업무 부담이 나를 짓누를 때가 많았다. 미국에 온 이후로 나는 온전히 배우고 가르치는 삶을 살고 있다. 이곳에서 나는 정식 교사도 아니고 정규 교사는 더욱 아니다. 그런데 한국 선생님으로서 끊임없이 배우고 또 가르칠 기회를 찾으면서 놀라운 일들이 생기고 있다. 미국은 봉사자와 기부자에게 무한한 기회가 주어지는 곳. 우연인지 필연인지 학교에서 가르칠 기회가 자주 생겼고 나를 선생님으로 불러주는학생들을 계속 만나며 생활하고 있다.
엄마와 아내로서의 삶
교사로서는 늘 꿈이 있었다. 더 좋은 교사, 더 멋진 교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너무 바쁜 나머지 내 마음속에는 좋은 엄마, 좋은 아내로서의 자리매김이 항상 부족했다. 주중에는 초등학교에서 일을 했고 퇴근 후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 대학 강의를 했으며 주말이나 방학에도 연수, 자문, 출장 등으로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교사로서 기쁨과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삶이었지만 엄마와 아내로서는 부족한 삶이었다. 지금은 어느 때 보다도 엄마와 아내로서 충실하고 충만하게 살아가고 있다. 아침마다 남편 도시락과 똘똘이 간식을 준비하고, 빵과 떡도 손수 만들어 준다. 엄마 음식, 당신 요리가 최고라고 해 주는 가족이 내게는 가장 큰 힘이다.
다양한 친구들과 소통하는 삶
한국에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은 다 내 또래였고 교육 계통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 보고 싶은 소망이 있었지만 영어로 소통하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았고 기회도 많지 않았다. 미국으로 이사를 와서부터는 정말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고 있다. 미국은 다민족 국가다 보니 미국 친구들 이외에도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여러 친구들과 대화하고 친해지면서 영어 부담도 많이 줄었다. 나이, 직업 상관없이 이름만 부를 수 있고 존댓말, 반말 크게 고려하지 않아도 되니 어떨 땐 영어가 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다양한 배경을 지닌 친구들과 어울리며 삶의 시야가 넓어지고 있다.
내 몸으로 즐기는 운동을 매일 하는 삶
나는 운동하고는 전혀 친하지 않은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 체육 과목은 재미가 하나도 없었고 달리기를 하면 늘 하위권이었다. 운동을 못하니 안 했고, 안 하니 더 못했다. 그런 악순환으로 운동과는 점점 거리를 두게 되었고 담을 쌓는 정도에까지 이르렀다. 지금의 내 생활을 보아서는 절대 상상할 수 없는 과거의 모습이었다. 요즘 나는 운동이 일상화가 된 삶을 살고 있다. 동네 체육관을 다니게 되면서 나의 또 다른 관심 분야를 발견하게 되었다. 춤을 좋아한다는 것! 줌바와 힙합 그룹 운동을 거의 매일 하고 있고 일주일에 2~3번은 가족, 친구들과 함께 피클볼을 친다. 운동도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이곳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더 이상 나는 꿈꾸는 삶을 살지 않는다. 그동안 꿈으로만 꾸었던 삶을 살고 있다. 지금은 미국에서 살고 있지만 세계 어디를 가든, 어디에서 살게 되든 앞으로도 계속 꿈꾸던 삶을 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