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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Aug 08. 2022

내 이름을 불러 주세요.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You can call me by my name.


한국과는 전혀 다른 미국의 문화 중 하나는 나이를 잘 따지지 않고 호칭 대신 이름을 부르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영어는 한국어와는 달리 존댓말, 반말이 확고하지 않다. 그저 공손한 표현과 무례한 표현 정도로 나뉠 뿐이다. 영어로 인사를 할 땐 나이에 상관없이 "How are you?"를 쓸 수 있고 아이나 어른 모두에게 "What is your name?"이라고 묻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상대방의 나이가 몇이든 개의치 않고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해도 괜찮기에 나는 이곳에서 나이를 크게 고려할 필요가 없다.


한국에서 살 땐 나이가 왜 그리도 나를 쫓아다녔는지 모르겠다. 누구와 처음 만날 때면 나이가 참 궁금했다. 나이에 따라 선배인지 후배인지, 언니인지 동생인지 호칭을 정해야 하기에 한국 문화에서는 '나이'가 몇인지에 대한 것은 내게 무척 중요한 정보였다. 한 살 늦게 대학에 들어가는 게 너무도 싫어서 재수는 꿈에도 꾸지 않았고 빠른 년 생인 것이 단점처럼 느껴질 땐 생년보다는 띠로 내 나이를 대신하곤 했던 나의 젊은 시절. 지금 생각해 보면 피식 웃음이 나지만 그땐 그런 나일 수밖에 없었다. 

결혼하고 나서는 호칭이 더욱더 복잡해졌다. 그런데 호칭으로 인해 나는 기분이 묘하게 나쁠 때가 많았다. 아내의 남동생은 처남이지만, 남편의 남동생은 혼인 여부에 따라 도련님(미혼) 혹은 서방님(기혼)으로 호칭해야 한다고 하니 남녀차별로 느껴지는 건 나뿐일까? 내 여동생을 남편이 부를 땐 '처제'로 낮춰 부르지만, 내가 남편의 여동생을 부를 땐 '아가씨'라는 호칭으로 높여 불러야 하는 현실. 여자 쪽 부모는 사위를 '○서방, 자네'로 높여 부르지만, 남자 쪽에서 며느리를 높여 부르는 호칭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새아가, 에미, 너'라는 호칭만 존재할 뿐이다.


미국에서도 결혼과 동시에 관계에 따라 호칭이 조금은 세분화되는 건 맞다. 그러나 한국처럼 복잡하고 위계가 철저한 호칭 체계를 지니고 있지 않다. 또한, 부부간 거의 동등한 호칭 체계를 지니고 있다. 삼촌은 백부, 숙부 상관없이 모두 Uncle, 고모와 이모는 모두 Aunt라고 하며, 혼인으로 인해서 생기는 인척은 in-law로 구분을 하긴 하지만 그냥 이름을 부르는 경우가 많다. 이 정도면 호칭으로 인해 스트레스받을 상황은 많이 없을 것 같다.


처음에 미국에 왔을 땐 누가 나를 이름 그대로 부르는 것이 왠지 모르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특히, 한참 어린 학생이 그저 나의 이름만을 부르며 "Hi, 00!"이라고 할 땐 어색하고 불편할 때도 있었다. 한국에서 유학 온 한국 대학생과 한국어로 대화를 하다가 외국 친구가 끼어들게 되어서 영어로 말을 이어 나갈 땐 분위기가 확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기도 했다. 호칭이 평등해지니 대화도 평등해지는 기분은 이유 없이 뭔가 통쾌하기도 했다.


영어는 아직도 어렵고 부자연스럽지만 나이를 잊을 수 있고 나이를 따지지 않는 영어권 문화는 가끔 내게 알 수 없는 자유로움을 선사해 준다. 나이를 개의치 않는 문화 속에서 나는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분과 친할 수 있게 되었다. 매주 만나며 짧게는 한 시간, 길게는 두세 시간 단 둘이 대화를 나누며 우정을 쌓아가는 친구들은 모두 나보다 나이가 많다. 한국어 공부를 같이 하고 있는 교수님도 나보다 나이가 많지만 영어로 대화할 땐 왠지 모르게 동갑 친구처럼 느껴진다.


나이에 상관없이 이름만을 부르며 대화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다른 친구들이 있어 좋다. 이름으로 서로에게 다가갈 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느끼게 해 주고 진실된 마음을 더해준다. 나이를 따지지 않고 타이틀을 고려치 않고 그저 이름만 부를 수 있는 문화는 중년의 내 나이를 잊게 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꽃, 김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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