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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Aug 05. 2022

박사 학력(學歷)을 믿지 마세요.

학력(學力)을 믿으세요.

Problems in personal life? Start Ph.D.! No personal life. No problems.


학창 시절 놀기보다 공부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고 전교 일이 등 하는 성적도 아닌 나였지만 교사로서 교육학 공부에 흥미가 생겼고 학위에 욕심도 생겨 박사까지 공부를 하게 되었다. 대학원 생활을 9년이나 했기 때문에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 동기들도 박사들이 많게 되었다. 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인 남편도 공학 박사, 바로 밑 내 동생도 몇 년 전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으로 와서는 내 주변에 박사들이 더 많아졌다. 대학 캠퍼스에서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기 때문일까, 한국 분들도 박사들이 많고 미국 와서 알게 된 한국 언니도 박사, 언니 남편도 박사, 외국 친구들마저 상당수는 박사들이다. 나와 한국어 공부를 매주 같이 하고 있는 미국 교수님도 박사, 그분의 부인도 박사. 주변을 돌아보니 박사들이 참 많다. 어찌하다 보니 계속 박사들이 많은 분위기에서 살고 있다.  


즐겨 보는 한국 프로그램, 유튜브에도 의학 박사, 심리학 박사가 꼭 출연을 하는 건 기분 탓은 아니겠지. 그런데 왜 이렇게 박사들이 많지? 찾아보니 이는 기분 탓이 아니라 정말 사실이었다. 한국에서 1952년 첫 박사가 배출된 이래 작년까지 박사학위 졸업자가 누적 인원 3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십 만도 아니고 무려 30만! 2021년 대학원 박사학위 졸업자는 16,420명으로 2000년 이후 역대 최고란다. 이렇게 우리나라에 박사가 많다고?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박사 학위를 취득할까? 박사과정을 오래 하면서 들었던 박사 취득의 이유는 아주 다양했다. 내 이름으로 된 논문을 쓰고 싶어서, 승진이나 진로에 도움이 되니까, 학문에 매력을 느껴서 등등. 많은 이유 중에 의외였던 것은 죽어서 묘비에 박사라는 두 글자를 남기고 싶어서란 어떤 분의 이유였다. 박사만이 묘비에 000 씨 대신 000 박사라고 실린다나? 아무튼 다양한 이유로 박사에 도전하고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인생에 많은 도전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박사 학위는 큰 도전이고 멋진 도전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그러나 사실 박사 학위가 주는 의미는 그리 어마어마 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내 손으로 내 힘으로 어떤 주제에 대해 연구하고 내 이름으로 책을 한 권 쓴 후 그 분야의 전문가 다섯 명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의미가 있을 뿐이다. 오롯이 한 분야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연구하며 책을 써 보았고 인정도 받았으니 이제 드디어 연구자로서 연구를 시작할 준비가 된 것이다. 박사라는 학력은 연구의 출발점을 의미할 뿐이지 연구의 종결이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박사를 취득한 지 어느덧 십 년이 넘게 지났다. 그동안 한국에서 박사과정을 하면서, 박사라는 타이틀 덕분에 만날 수 있었던 훌륭한 교수님, 연구자님들 덕분에 교사로서 비교적 많은 연구를 수행하고 함께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쓴 논문이나 글을 보게 되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언제 이런 글을 썼지? 다시 쓰라면 쓸 수 있을까! 인간은 망각의 동물임이 확실한 것 같다.


박사라는 학력(學歷)은 하나의 이력이나 경력에 불과하다. 박사라 하더라도 학위 취득 이후 연구를 전혀 하지 않는다면 그 학력은 전혀 빛을 발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박사가 아니어도 한 분야에 시간과 정성을 쏟을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이라면 박사 이상의 전문가나 장인이 될 수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나이를 점점 먹어가면서 내가 나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배운 이력과 스펙을 의미하는 학력(Academic background)은 고이 접어 두고 언제든 배우고 도전하는 자세인 학력(Scholastic ability)을 가진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나 또한 빠르게 나이를 먹어 간다. 과거에 굳게 믿었던 생각이나 논리가 어느 날 갑자기 뒤집히기도 하고, 미국 오기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코로나 시대가 되어 이제 세상은 딴판이 된 것 같다. 어떨 땐 뜬금없이 '왜 이러고 미국에 있지?' 할 때가 있고 영어는 여전히 버벅거리며 한국어는 정말 자신 있다 했는데 그걸 가르치는 건 왜 이리도 어려운지! 그래도 내가 가지고 있는 배움의 힘굳게 믿어보며 오늘도 으쌰! 힘을 내곤 한다.


나는 학력(學歷)을 믿지 않는다. 나의 학력(學力)만을 믿을 뿐이다.




[참고 자료]

https://www.uni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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