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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Dec 05. 2022

엄마 같은 사람 또 없습니다.

가장 보고픈 사람, 제일 따뜻한 이름

My mom is the best person in my life, she is my hero, no matter what I do or where I am I will always be grateful to her.


내년 초가 되면 미국에서 산 지도 어느덧 6년이 되어간다. 6개월도 아니고 6년이라니! 외국에서 10년, 20~30년 사신 분이 나를 본다면 고작 6년? 할 수도 있겠지만, 암만 생각해도 6년은 절대 짧은 시간이 아니다.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는데, 3에 곱하기 2를 한 세월이니 풍월을 외우고도 남을 시간. 중학교 1학년이 고3 졸업을 할 시간. 대학교 1학년이 졸업을 하고 군대까지 마칠 시간. 그 긴 시간이 6년 아니던가.


미국에 와서 지금까지 이런저런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났다. 5년 이상 꾸준히 만나고 있는 오랜 친구생겼고, 동생이나 언니, 오빠 같은 사람, 이모 또는 삼촌 같은 사람, 마치 친할머니 할아버지처럼 정을 주시는 분들 등등 고맙고 마음 따뜻한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딱 한 사람, 우리 엄마 같은 사람은 만나보지 못했고 만날 수도 없었다. 모든 엄마는 특별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우리 엄마는 진짜로 특별하기 때문이다.


엄마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


엄마가 내게 있어 정말 특별한 이유는 내가 엄마를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외모뿐만 아니라, 목소리, 성격도 닮았다. 엄마는 키가 크신 편이고 살이 찌지 않는 체질, 덕분에 나도 키가 크고 한 번도 진지하게 다이어트 해 본 적이 없다. 어느덧 연세가 칠순이 넘으셨지만 동네에서 오랫동안 여러 가지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계신다. 코로나 기간 동안 봉사활동을 많이 하셨다는 이유로 작년에는 시의원 표창도 받으셨다. 이렇게 멋진 엄마를 닮은 나, 너무 감사한 일이다.


우리 엄마께서는 살림과 요리를 정갈하게 잘하신다. 특히, 엄마의 집밥은 사랑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따끈한 국과 전, 김치와 나물, 고기반찬도 빠질 수 없다. 맛도 좋지만 영양소 측면에서도 늘 만점이다. 무엇보다도 엄마의 김치는 세상 최고, 입맛만 장금이에 가까운 남편도 항상 엄지 척을 날려준다. 겉절이, 물김치, 오이소박이, 동치미 등, 모든 김치가 맛있다. 나는 미국에서 맛김치만 주로 담가 먹고 있는데 엄마의 손맛을 조금이라도 흉내 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제 나도 마흔이 넘었으니 진작 엄마께 밥상을 차려 드릴 나이가 되었음에도 미국에서 사는 딸 아주 가끔 한국에 오는데 늘 손수 차려주고 싶다고 하신다. 주장이 강하지 않으신 분인데 이럴 땐 의지가 아주 크시다. 그 마음이 너무 감사하고 또 한편으로는 죄송해서 설거지라도 열심히 해 드리디저트를 준비하기도 하지만 사랑으로 차리는 밥상에 절대 비할 수 없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엄마는 많이 바쁘셨다. 아빠의 사업을 함께 도와 드리느라 바쁘셨고 한동안 가정 형편이 어려웠을 땐 돈을 버시느라 집에 자주 늦게 오셨다. 이렇게 바쁜 엄마였지만 아침에 늘 일찍 일어나셔서 언제나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국과 반찬을 모두 준비해 놓고 가셨다. 아침에 일어나면 된장국, 김칫국, 미역국, 소고깃국 등 중에서 한 가지가 큰 냄비에 끓여져 있었고 밥통에도 한가득 따뜻한 밥이 준비되어 있었다. 엄마가 일 하러 가면 사 남매 중 맏딸인 나는 하교 후 동생들과 함께 놀면서 밥 먹으면서 언제 오시나 기다리곤 했다.


십 대였던 시절, 밥 먹은 그릇 설거지도 해 놓고 빨래도 해 놓고 그랬으면 좋았으련만 나는 늘 동생들 챙기고 돌보는 것만으로도 내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퇴근 후에도 엄마는 집안일을 하느라 쉬지를 못하셨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는 내 밑으로 동생들까지 해서 모두 6개의 학교 도시락을 아침마다 싸셨던 우리 엄마. 그때 그 시절에는 급식이 왜 없었을까. 도시락에 그날 먹을 밥과 국 준비에 엄마께서는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셔야 했다.


엄마~ 엄마~ 엉덩이가 뜨거워


단언컨대 엄마의 헌신적인 사랑 덕분에 나는 잘 컸고 지금까지 잘 살 수 있었다. 엄마를 보면서 봉사활동도 많이 하는 사람이 되고자 마음을 먹을 수 있었다. 6년 가까이 별 탈 없이 미국에서 살고 있으니 모든 것에 있어 그럭저럭 적응을 잘했다고 볼 수 있다. 여러 친구사귀었고, 가족과 좋은 추억도 많이 만들고 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보고 싶은 엄마를 실제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문득 실감 나지 않을 때가 있다. 아마도 그 부분만큼은 앞으로도 계속 적응되지 않을 것 같다.


가끔 마음이 많이 무겁고 힘든 일이 생기면 엄마 생각을 한다. 마음속으로나마 엄마~ 엄마~ 몇 번이고 불러보면 나도 모르게 힘이 난다. 이제는 실제로 만나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 되었지만 내게는 휴대폰이 있고 또 브런가 있어서 다행이다. 매일 전화드려야지 하면서도 막상 그러지 못할 때가 많다. 보고 싶은 엄마와 구 반대편으로 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하면 이렇게 국에서 사는 것이 썩 맘에 들지 않는다. 아마도 아주 오래오래 미국에서 살지는 못할 것 같다. 살더라도 한국에 자주 방문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 브런치 글의 최애 독자인 우리 엄마,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가장 보고픈 사람, 제일 따뜻한 이름, 엄마! 오래오래 건강하셔야 해요! 너무나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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