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s good because I decided to make it that way.
인생은 길고도 짧은 여행과도 같다. 어린 시절, 시간은 항상 멈춰 있는 것 같았고 마냥 어린이로 살 줄 알았다. 중고등학생일 땐 또래들과 어울리는 게 너무 즐거웠지만 늘 나를 조여 오는 석차 경쟁 속에서 가끔은 모두가 내 경쟁자처럼 느껴지는 현실이 너무 싫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어른이 된 후에도 내 인생에 대한 궁금증은 쉬이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의 인생이 계속 궁금했고 지금도 다 풀리지 않았다.
한국에서 딱 중간인 나이, 2022년의 중위 연령은 마흔다섯이다. 올해 초, 이제 나도 마흔다섯이야! 아니, 벌써 마흔다섯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어느덧 일 년이 후딱 지나가 버렸다. 올해의 마지막 달을 맞이했다. 시간은 곧 인생과도 같은 법. 길 것만 같은 인생인 줄 알았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부터는 점점 짧게 느껴지기 시작하더니 점점 그 속도에 가속도가 붙는 느낌이다. 마치 두루마리 휴지가 풀리는 속도처럼.
시간은 언제나 한결같고, 늘 같은 속도 이건만 참 신기할 따름이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은 하나도 틀린 게 없다. 여러 가지 마음에 비추어 본 일곱 가지의 단어로 내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열심(熱心) 어떤 일에 온 정성을 다하여 골똘하게 힘씀
뭐든지 열심히 하는 게 좋다는 말을 찰떡같이 믿었던 나의 어린 시절이었다. 항상 열심히 살 수는 없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 정해둔 목표가 있을 때는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그 고개를 무사히 넘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대입, 임용고사, 박사 디펜스를 치를 때 그랬다. 열심히 준비했기에 그 고비의 문턱을 슬기롭게 넘을 수 있었다. 그런데 뒤돌아보니 나와의 경쟁도 있었지만 상대적 경쟁이 더 크게 다가왔던 적도 많았다. 모두가 열심히 달리는 경쟁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열심을 내야 했다.
욕심(慾心) 무엇을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
열심히 공부해도 성적이 안 오를 땐 공부 잘하는 친구가 너무 부러웠다. 교사가 된 이후로는 엄마 아빠가 교장인 친구 교사들이 양으로 음으로 여러 가지 혜택을 받는 것이 부럽기도 했다. 서른 살이 되고 나서 생애 처음으로 아파트 청약을 넣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큰 나무가 바로 앞에 있는 지하주차장 입구 바로 윗 집으로 당첨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포기하기로 했다. 같은 학년 선생님이 자기는 20층에 당첨이 되었다며 내 앞에서 자랑을 할 땐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 층수가 어찌나 탐이 나던지. 되돌아보니 욕심은 좋을 게 하나도 없구나.
뚝심(뚝心) 굳세게 버티어 내는 힘/좀 미련하게 불쑥 내는 힘
참고 견디는 것은 좋은 것일까? 나는 뚝심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나친 뚝심 때문에 차 안에서 큰 일(?)을 치를 뻔한 적이 있다. 똘똘이를 낳을 때였다. 진통이 저녁부터 심해졌기에 내일 아침에나 낳겠구나 생각하고 꾹꾹 참았는데 자정이 다가오자 진통이 더욱 심해졌다. 그래도 참자! 참아야 해! 하다가 병원으로 고고! 그런데 갑자기 차 안에서 아기가 나오려는 것 같았다. 병원에 도착 후 20분 만에 똘똘이를 만났다. 의사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병원에 오자마자 이렇게 빨리 첫아기를 낳은 산모는 처음 봤다고.
결심(決心) 할 일에 대하여 어떻게 하기로 마음을 굳게 정함. 또는 그런 마음
인생에 있어서 큰 결심, 중요한 결정을 할 때가 있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내가 친한 친구들이 다들 서울 또는 수도권 대학으로 진학할 때 지방대를 선택한 결정. 수 십 번의 미팅, 소개팅, 선에도 불구하고 나의 반쪽을 만나지 못하고 있을 때 나의 오랜 친구와 결혼을 한 결정. 한국의 안정적인 직장, 승진 기회를 뒤로 하고 미국으로 가족 이사를 하기로 한 결정 등등. 결국 내 마음속 결심이 결정적인 나의 인생을 만들고 있다. 앞으로 또 어떤 결심으로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될지. 언제 한국으로 돌아갈지, 미국에서 얼마나 더 살 지. 이 또한 결심해야 할 순간이 오겠지?
초심(初心) 처음에 먹은 마음
마흔에 시작한 생애 첫 해외 살이. 뭣도 모르고 미국으로 이사를 왔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모든 게 재부팅된 삶처럼 느껴졌던 2017년의 엄청나게 추웠던 봄날. 똘똘이도 울고 나도 울었던 그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불혹의 나이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초심으로 돌아가야 했다. 부모님과 떨어서 지방의 어느 작은 하숙집에서 친구랑 같이 방을 썼던 대학 새내기 시절의 초심, 꿈의 직업이었던 교사가 되고 나서 5학년 첫 담임을 했던 그 시절의 초심을 떠올리며 보냈던 나이 마흔의 초심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진심(眞心) 거짓이 없는 참된 마음
영어는 너무도 어렵고 미국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과 달라도 너무 다르게만 보였다. 한동안 영어로 말을 하면 허공에 대고 말을 하는 느낌이었고, 한국말을 해야지만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미국 사람들은 천차만별 다양한 외모만큼이나 다양한 인생 경험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 본인이 낳은 아이가 6명이나 되는 삼십 대 후반의 한 미국 친구는 첫째가 대학생, 막내는 유치원생이다. 작년에 조기 퇴직을 한 마흔여덟 살 친구는 외동아들의 나이가 스물여덟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친구들을 만나고 보니 각양각색 미국 사람들도 다 똑같은 사람이었고 진심은 언제나 통했다.
휴심(休心) 모든 걱정을 떨쳐 버리고 마음을 편히 가짐
앞으로의 내 삶은 편한 마음으로만 채워지기를 소망한다. 걱정은 때론 아주 쓸모가 없다. 특히 후회는 그야말로 하나도 쓸 데가 없다. 가끔 가졌던 후회들, 서울의 대학으로 진학을 했더라면, 더 큰 도시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했더라면, 미국에 오지 않았더라면 등등. 미국에 온 이후에는 갑자기 차사고가 나면 어떡하지, 영어를 못해서 망신당하면 어떡하지, 똘똘이가 적응을 못하면 어떡하지 등의 걱정을 할 때도 있었다. 걱정은 걱정을 더하고 불안으로 이어져 불행으로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모든 걱정을 내려놓기로 했다. 왜냐하면 앞으로의 내 인생은 반짝반짝 빛날 일만 남았으니까.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각자의 인생은 빛나는 인생이 될 수도, 그늘이 드리워진인생이 될 수도 있다. 여러 가지 마음들 중에서 반짝이는 마음들만 나의 삶 속에 담고 싶다. 별 같은 마음들을 가진 사람들과 가까이하며 나의 인생을 조금 더 풍성하고 단단하게 만들고 싶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뭘 해도 청춘 시절만큼 재미있지도 의미 있지도 않은 것 같지만 아마도 그건 백프로 사실이 아니리라. 모쪼록 앞으로의 내 인생도 심심하지 않게 좀 더 재미있게 그러면서도 의미 있게 이어지기를 바라본다.
그동안의 내 인생은 괜찮았다고, 앞으로의 내 인생도 괜찮을 거라고, 오늘 밤 내가 나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