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앨라배마에서 산 지도 몇 년이 지났다. 지금까지의 미국 생활 중 절반은 몬태나에서, 절반은 앨라배마에서 살았다. 몬태나와 앨라배마는 미국이라는 같은 나라에 있지만 달라도 정말 다르다. 날씨, 삶의 방식, 심지어 영어도 다르다. 계절 중에서 가장 다른 계절은 꼽으라면 겨울일 것이다. 몬태나의 겨울은 온통 눈 세상일 때가 많고 매일매일이 추운 날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앨라배마의 겨울은 그저 온화하고 마치 늦가을이 계속 이어지는 느낌으로 그동안 눈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이변이 생겼다. 일주일 전에 온 큰 눈으로 도시 전체가 일주일째 마비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앨라배마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눈이 오는 것도 정말 희귀한 광경인데, 제법 많이 온 눈이 살짝 녹다가 다시 얼어서 모두 빙판으로 변해 버렸다. 지난 일요일 밤부터 하루 이틀 정도 눈이 왔고 그 이후로는 거의 오지 않았는데 길에 쌓인 눈은 일주일째 그대로다. 겉으로는 눈이 쌓인 듯 보이나 밟아보면 딴딴한 얼음이다. 그대로 굳어서 얼음이 되었다.
눈으로 쌓인 길이 모두 얼음이 되면서 일단 냉장고부터 확인해야 했다. 우리 집 앞은 약간의 내리막길 고개가 있기에 운전을 해서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해졌다. 반드시 차를 타고 5분은 운전을 해야 마트에 갈 수 있는데 가는 길에 인도는 전혀 없다. 식료품 배달 문화도 없거니와 운전해서 우리 집까지 누가 올 수도 없는 상황에서 우선 삼시세끼 밥을 당분간 매일 해 먹어야 하는 것이 걱정됐다.
다행히 열흘 정도 먹을 수 있는 쌀과 라면 열 댓봉지, 한 달 전에 담가 놓은 김치가 반 통 정도 있었다. 계란도 열 알 정도, 우유도 반통이 있어 다행이었다. 밥 해 먹을 걱정을 하고 있었던 일요일 한 밤중에 나와 남편의 휴대폰이 갑자기 동시에 울리기 시작했다. 내일과 모레 학교를 모두 쉰다는 교육감의 공지였다. 그리고 곧바로 학교에서도 교장 선생님이 이메일을 보냈다. 일단 월, 화 이틀은 쉬고 화요일 늦은 오후에 그다음 날인 수요일 등교 여부에 대해 알려준다고 했다.
동네 친구분들의 안부가 걱정되어 몇 분께 연락을 드렸다. 마트 근처에 사는 한 분은 눈이 많이 온 이후 동네 마트에 다녀왔다며 사진을 한 장 보내왔다. 눈이 더 얼음으로 변하기 전에 빨리 장을 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미 마트 곳곳이 비어서 당황했다고 했다. 앨라배마에서 오래 사신 한 미국 친구 분도 눈 때문에 이렇게 된 경우는 없었다며 안부 문자를 보내주셨다. 일 년에 한 번 살짝 눈이 올까 말까 한 앨라배마에 이렇게 많은 눈이 오고 길이 모두 얼음으로 변해버린 건 처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큰 눈이 온 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지난 일요일 새벽과 월요일 오전까지 눈이 많이 왔고 그 뒤로 모든 눈은 길 위에서 얼어붙었다. 월, 화 일단 이틀 동안 학교를 쉬고 그다음 날 어떻게 할지 알려주겠다고 문자가 왔을 때 내가 호언장담을 했다. 길이 이렇게 다 얼음이 되었는데 학교를 갈 수 있을까? 아마 일주일 내내 쉴 것 같은데! 그리고 내 말은 사실이 되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주일 동안 우리 동네의 모든 초중고 학교와 대학교는 수업을 취소하고 학교를 쉬었다.
몬태나에서 사는 동안 겨울 내내 그렇게 많은 눈을 봤지만 앨라배마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펑펑 눈이 와도 마치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차들이 다니곤 했다. 느린 속도 일지라도 도로가 마비되는 일은 없었다. 동네가 거의 다 평지이고 제설 작업이 바로바로 잘 되기에 조심해서 운전을 한다면 동네 마트 정도 가는 것은 문제없었다. 하지만 앨라배마에서는 눈이 곧 얼음이 되어 버렸고 제설차도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우리 동네 여기저기에는 언덕길이 많아서 운전을 아예 포기해야 했다.
집에서 꼼짝없이 지낸 지도 일주일 정도가 되었다. 다행히 내일 일요일은 약간 영상으로 기온이 올라간다는 일기예보가 있어 기대를 하고 있다. 이번 주 내내 세 식구가 하루 종일 집 밥만 챙겨 먹다 보니 냉장고가 텅텅 비어 간다. 내일은 운전으로 5분 거리에 있는 월마트에 가보는 것을 도전해 보려 한다. 하지만 마트에 얼마나 식재료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마치 늦가을 마냥 온화한 겨울을 보낼 수 있었던 앨라배마였는데, 이번 겨울은 혹독하기 그지없다.
집에서만 지낸 일주일을 되돌아보니 세 가족이 옹기종기 알콩달콩 냉장고 파먹으며 지낸 시간도 나름 재미있었다. 이 또한 추억이 되리, 이 또한 지나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