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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Mar 16. 2021

런닝맨을 본 아들은 분주해졌다.

온 가족이 런닝맨을 보고 나서 똘똘이가 제안한 게임

The most important time is family time.


한국에서 있을 땐 부부가 서로 너무 바빠서 가족 시간을 자주 갖는 것이 쉽지 않았다. 평일에는 저녁 6~7시쯤에 퇴근을 했지만 야근과 회식이 종종 있었고 집에 와서는 서로 피곤해서 저녁 먹고 씻고 자기에 바빴다. 주말에는 경조사, 출장 등이 함께할 때가 많았고, 아무런 스케줄이 없는 날에도 아들과 함께 충분히 대화하고 놀아주기보다는 쉬고 싶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미국에서의 생활 중 가장 좋은 점은 가족시간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미국 사회는 가족 중심적이다 보니 야근이 없고 회식도 없는 분위기라서 가족시간을 최우선으로 두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내 나라가 아니기에 어렵고 걱정되는 점도 더불어 참 많다. 이곳은 워낙 외국인도 적고 한국사람은 더 적은 동네라 이민자, 소수집단으로서 알게 모르게 느끼는 소외감이 늘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풍부한 가족시간이 주는 만족과 위안은 삶의 큰 힘이 된다.


아들 교육에서 가장 걱정되는 점은 아무래도 모국어인 한국어 습득. 집에서 항상 엄마 아빠와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하기에 똘똘이의 제1언어는 계속 한국어이다. 하지만 주변에서 보면 부모가 한국인일지라도 자녀가 한국어를 못하는 경우도 있고 한국어 실력이 영어에 비해 너무 낮은 경우도 있다. 모든 것이 영어로 되어 있기에 한국어의 소중함을 느끼기 어렵고 한국 사람도 적은 동네일 경우 그만큼 자녀의 한국어 교육은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로도 해석된다.


앞으로도 똘똘이가 한국어를 계속 잘 익히고 따라가기 위해서 내가 신경 쓰는 것은 일기 쓰기, 받아쓰기 그리고 한국 프로그램 보기 등이다. 함께 보는 프로그램으로는 호기심 빵빵 등 어린이 프로그램 이외에 개그콘서트, 정글의 법칙 등등. 최근에 같이 보기 시작한 프로그램으로 런닝맨이 있다. 그동안 런닝맨이 정말 재미있고 외국에서도 인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프로그램을 제대로 본 적은 없었다.


지난주 남편의 제안으로 온 가족이 함께 처음으로 런닝맨을 시청했다. '지금(金) 만나러 갑니다'라는 제목으로 마을에 숨겨진 금을 찾는 내용이었다. 재미있게 보고 나서는 갑자기 똘똘이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는 절대 자기가 하는 것을 보면 안 된다고 선포를 한 뒤 한동안 조용히 책상 위에서 뭔가를 열심히 쓰더니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숨기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런닝똘
Running ddol

"엄마 아빠, 잘 들으세요. 제가 힌트를 숨겨 놨어요. 힌트를 잘 보면 보물을 찾을 수 있어요." 똘똘이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힌트가 쓰여 있는 쪽지와 보물은 집안 구석 구석 곧곧에 숨겨져 있었다.


"찾았다!" 남편이 갑자기 소리쳤다. 힌트는 갈색 근처. "나도 찾았다!" 힌트는 등잔 밑이 어둡다. 어떻게 이런 속담을 알았냐고 물으니 예전에 아빠가 알려주셨단다.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가까운 데서 못 찾는다는 뜻!" 당연하다는 듯 이야기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 확실하게 배워서 활용한 첫 속담일 게다.



힌트 쪽지는 여기저기 올려져 있어서 찾기가 쉬웠지만 보물들은 당최 보이지를 않았다. 집안에 갈색은 너무 많았고 초록색도 너무 많았다. 그러던 중 "찾았다!" 남편이 소리쳤다. 그건 바로 똘똘이가 아끼는 종이비행기 둥실이. 갈색인 책꽂이 사이에 종이비행기를 숨겨 놓았다.


책상 가운데 눈에 띄게 올려져 있었던 연필깎이 밑에만 살펴보던 내게 똘똘이가 한 말. "엄마, 등진 밑이 어둡다고 했잖아요." 그 말인즉 연필깎이 속에 뭔가 들어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 속에서 다시 나온 힌트 쪽지의 내용은 '차가운 데'. "그렇지! 차가운 데는 냉장고일 거야." 역시나 똘똘이가 좋아하는 간식거리 스트링 치즈와 프링글스 감자칩이 냉장고 문쪽 병들 사이에 숨겨져 있었다.


마지막 보물은 창고방 문 근처 어두운 곳에 있었던 망고 씨앗 2개. 아보카도 씨앗과 같은 큰 씨앗을 좋아하는 똘똘이가 최근 꽂힌 씨앗은 바로 망고씨앗. 부드러운 털이 있어서 더 좋다며 정성스레 말려서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었던 망고 씨앗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똘똘이가 런닝맨을 보고 나서 엄마 아빠에게 주고 싶은 자신의 보물은 종이비행기, 간식거리, 망고 씨앗이었다. 동심은 행복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나와 남편, 똘똘이를 열심히 뛰게 만들어 준 런닝맨. 런닝맨이 준 아이디어로 온 가족이 다시 프로그램을 찍은 날 우리는 런닝맨이 왜 10년째 인기 있을 수밖에 없는지 온몸으로 느꼈다.

 


[참고 자료]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06211131000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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