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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Dec 31. 2021

똘똘이는 집에 와서 울었다.

곰돌이 푸가 아니고요!

I love you simply because you're you. -One of the Pooh Quotes-


크리스마스를 몇 주 앞두고서 동네에서 열린 어린이 크리스마스 행사장에 다녀왔다. 야외 공간에서 실시되었는데 천막을 쳐서 부스별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꾸며졌고 산타 할아버지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간도 주어졌다. 간단한 스낵과 핫코코아도 제공이 되어서 가족과 함께 하기에 더없이 좋은 시간이 되었다. 똘똘이와 같은 학교, 반 친구들도 여기저기 많이 보였다.


체험활동을 하나 마치고 산타 할아버지와 사진도 찍고 나니 똘똘이의 시선이 슬슬 반 친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삼삼오오 친구들이 우르르 뛰어다니면서 태그 놀이를 하고 다녔다. 똘똘이도 어느 순간 친구들 무리에 껴서 함께 뛰어다니며 놀이를 했다. 체험활동보다는. 가족과 함께 있기보다는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노는 게 더 재미있다고 했다.


신나게 두 시간가량 친구들과 뛰어놀고 나니 어둑어둑해지려 했다. 땀이 흠뻑 날 정도로 뛰어 논 똘똘이와 함께 오후 5시 무렵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왠지 똘똘이의 얼굴에 점점 심통이 올라왔고 뭔가 안 좋아 보였다. 이내 배가 고프다, 먹을 것을 달라면서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신나게 논 후에 기분 안 좋을 일이 없었는데 오늘은 평소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10분이면 집에 가니까 좀 참아라 했지만 못 참는다며 짜증을 부렸다.


집에 오자마자 밥을 차려주었지만 밥을 먹으면서도 이 불만, 저 불만을 늘어놓았다. 밥이 맛이 없네,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 하나도 없네 등등. 아무래도 이상했다. 밥 먹을 때는 기분이 풀리기 마련이지만 오늘은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왠지 마음속에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는 것만 같았다.


"똘똘아, 무슨 기분 안 좋은 일 있었어? 친구들이랑 잘 놀았잖아."

"그 친구들이랑 이제 안 놀 거예요."

"안 논다고? 왜?"

"오늘 기분이 안 좋다고요! 으앙~~~"


거의 밥을 다 먹어갈 무렵 똘똘이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밥 한 숟가락을 남긴 채 엉엉 우는 똘똘이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너무 무거워졌다. 엄마 아빠와 이야기를 해 보자며 소파로 데리고 와서 앉았다.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똘똘이, 뭔가 크게 속상한 일이 있었던 것만 같았다. 아까 친구들과 태그 놀이를 할 때 신나게 뛰어놀았고 얼굴 표정도 밝았기에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는데...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


똘똘이에게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면서 왜 속이 상했는지를 한참 물었고 드디어 이유를 알아냈다. 한 친구가 똘똘이의 이름은 "0푸"라고 불렀다는 것이었다. 똘똘이의 이름에는 '우'가 들어가는데 아마도 살짝 변경해서 부른 것 같았다.


"푸? 곰돌이 푸 말이야?"

"아뇨!! 곰돌이 푸가 아니고요! 푸는 똥이라고요!"

"엄만 전혀 몰랐네, 도대체 누가 그랬어?"

"브랜든이요..."

"아까 들었을 때 이야기를 바로 하지... 그럼 혼을 냈을 텐데... 이름을 그렇게 맘대로 바꿔 부르면 안 되지! 아이고 속상했겠다."

위로와 공감의 말을 건네주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똘똘이는 가장 친한 친구가 자신의 이름을 장난 삼아 '0푸'라고 부른 것이 못내 속상한 것 같았다.


"똘똘아, 브랜든이 니 이름을 그렇게 불렀을 때 너도 장난치면서 걔 이름 부르는 건 어때?"

"뭐라고요~?"

"브랜...으로 시작하니까... 브래드? 빵?"

"똥이 빵보다 훨씬 나쁘지!"

아차차... 맞대응 식의 조언은 좋은 게 아닌데, 말해 놓고 후회... 그러다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똘똘아, 혹시 너한테만 푸라고 하는거야?"

"음... 나 말고 한 명 더 있어..."

"누군데?"

"쿠퍼"

"쿠퍼?"

"브랜든이 쿠퍼한테는 푸퍼라고 불러요."

생각해 보니 똘똘이 반에는 '우'가 들어가는 아이가 한 명 더 있었다. 그 이름은 쿠퍼. 그런데 갑자기 큭큭~ 웃음이 났다. "쿠퍼는 푸퍼? 이름이 조금 웃기게 되는데... 한국말로 하면 똥퍼 같잖아." 내 이야기를 듣더니 울다가 갑자기 키득키득~ 같이 웃는 똘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똘똘이의 마음은 서서히 가라앉았다. 선생님께 상의드릴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 후 잠을 재웠다. 한 시간 가까이 운 똘똘이, 선생님께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자기 전에 이메일로 상담을 드리기로 했다. 그리고 이튿날 답장을 받았다. 얼마나 속상했을지 너무 공감이 된다며 이름을 제대로 잘 부르도록 언어 사용 교육을 시키겠다고 답장을 주신 담임 선생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고 그 이후론 똘똘이의 이름을 바꿔 부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주일쯤 지났을 때 한 미국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가 똘똘이 친구가 똘똘이를 '0푸'로 불러서 많이 울고 속상해했다는 이야기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친구의 답변은 약간은 예상외였다. 푸는 영어로 아주 안 좋은 말이라기 보단 'Baby talk'에 좀 더 가까운 말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들의 생각으로는 푸는 똥, 똥 하면 떠오르는 느낌은 냄새나고 못난 것이었다. 하지만 영어에서 '푸'는 아이들이 장난처럼 많이 쓰는 말 중 하나이고 '풉'과는 달리 조금 귀여운 느낌을 주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본인 친구의 아이는 이름이 '말리'였는데 종종 '말리푸'로 불러졌다고 했다. 말리가 너무 귀엽게 생겨서 별명처럼 불린 이름이 말리푸였단다. 미국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푸는 똥, 그러니까 안 좋은 말, 똘똘이 이름을 그렇게 부른 친구가 장난이 심했다고 생각했던 내 마음도 누그러졌다. 말이 주는 어감도 느낌도 한국어와 영어는 꼭 일치할 순 없었다.


'똘똘이에게 전해줘야겠다.'

(집에 와서)

"똘똘아, 푸는 똥! 이라기보다는 베이비 토크에 가깝대. 아주 나쁜 말은 아니라고 엄마 친구가 그러더라. 한 여자아이는 이름이 말리였는데, 주변에서 다들 말리푸로 불렀다던데? 풉은 똥처럼 들리지만 푸는 조금 귀엽게도 들릴 수 있을 거 같아."

"엄마, 그래도 친구가 그냥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게 좋죠!"

"아~ 당연하지! 그럼, 당연하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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