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dream of being a good person, be a human being is valuable and gives value to life.
-Albert Einstein-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배우는 사람이란 뜻도 된다. 배워야 가르칠 수 있고, 잘 가르치려면 잘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교대에서 4년을 배우고 임용고사를 치르고 나면 초등학교 교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배움은 절대 끝나지 않는다. 교사가 된 이후에도 계속된다. 교사가 된 이후에는 여러 가지 연수, 대학원, 자기 계발 등 더 많은 배움의 기회를 만날 수 있다.
한국에서 교직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많은 연수를 받았다. 그 많은 연수를 다 기억할 순 없지만 지금까지도 기억이 나는 한 순간이 있다. 학교에서 학교폭력 예방, 자살예방 등의 업무를 맡으면서 담당자 연수를 받기 위해 교육원의 큰 강당에 많은 선생님들이 모인 적이 있었다.
강의를 맡은 강사는 자살예방 상담을 전문적으로 하는 분이었다. 연수를 받기 전에도 OECD 국가 중 1위를 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높은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루에 몇 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감은 없었다. 강사는 이야기를 하다 말고 갑자기 시계를 가리켰다.
제가 강의한 지 어느덧 40분이 지났네요.
우리나라 사람 한 명은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40분마다 자살이 일어나거든요.
이 말을 듣고 무척 놀랐다. 40분마다 우리나라에서 자살이 일어난다니. 하루 단위로 환산을 해서 계산을 해 보면 하루에 목숨을 끊는 사람이 36명에 이른다는 것이었다. 현실감 있는 그 엄청난 숫자에 충격을 받았다. 최근 자료를 찾아보니 2020년에는 하루에 38명으로 더 늘었다. 이 숫자가 주는 의미는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선택할 정도로 우리나라가 행복하지 않다는 뜻이 아닐지 생각해 본다.
해마다 많은 신조어가 탄생을 한다. 불과 몇 년 전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는 뜻)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는 것을 보고 우울한 한국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만 같아 매우 씁쓸했다. 망했다는 뜻은 제 구실을 못하고 끝장이 났다는 뜻과도 같다. 인생은 한 번뿐이고 지나가면 결코 다시 되돌릴 수 없는데 제 구실도 못 한채 나의 생이 끝장나 버렸다면 그 얼마나 황당하고 슬픈 일인가.
망하다
개인, 가정, 단체 따위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끝장이 나다.
나라가 망하다/아버지의 노름으로 우리 집은 쫄딱 망했다.
(주로 ‘망할’ 꼴로 쓰여) 못마땅한 사람이나 대상에 대하여 저주의 뜻으로 이르는 말.
망할 자식/망할 놈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있다. 망한 인생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다. 모두에게 주어진 인생은 단 한 번뿐이고, 그 인생을 사는 사람도 나라는 단 한 사람뿐이다. 모든 인생은 각양각색으로 다 다르고 고유하기에 망하고 안 망하고를 대입시키는 것 자체가 맞지 않는다. 모두 다른 인생을 어찌 망했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만이 살 수 있는 내 인생, 그 자체가 정답인데 어떻게 평가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사십 년 동안 한국에서만 살다가 불혹의 나이에 다른 나라, 다른 문화에서 사 년을 살았다. 그 시간은 나에게 그동안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관, 문화, 생각들이 얼마나 상대적인 것들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절대적인 가치와 규범은 이 세상에 없기에 항상 신경 쓰고 귀 기울여야 할 사람은 오직 나와 함께하는 나라는 사람일 뿐이라는 것도 더 잘 알게 되었다.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주어지는 것.
모두 죽는다는 사실
인생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 모든 사람에게 확실하게 평등하게 반드시 주어지는 것, 그것은 바로 죽음이다. 반드시 우리는 죽는다. 언젠가는 꼭 일어나는 일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삶은 소중하고 참으로 귀한 것이다. 한 번뿐인 삶, 그리고 언젠가는 다가올 죽음. 이 명제가 우리의 삶을 더욱더 가치롭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큰 결정을 내릴 때 죽음을 생각한다. 꼭 한번 있을 미래의 내가 죽는 순간을 생각해 보면 어떤 커다란 선택지 앞에서 선명한 결단을 내리는 게 쉬워지곤 한다. 휴직을 할 때 그랬다. 교장이 되어서 학교문화를 바꿔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교장을 정점으로 하는 서열화된 교직문화, 나이를 많이 따지는 한국사회를 죽기 전에 한 번쯤은 벗어나 다른 문화에서도 살아보고 싶었다. 그 생각 덕분에 금방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할 때 즐거운지 나를 늘 살피며 한 번뿐인 내 인생을 소중하게, 그렇지만 너무 무겁지는 않게 즐겁게 살아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모두에게 인생은 단 한 번뿐이고 내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만 해도 인생은 그리 길지 않다. 그러기에 나는 오늘도 배우고 가르치며 하루를 보낸다.
모든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라는 말이 된다.
살자! 나를 돌보며 지금을 살자.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