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다가도 갑자기 화를 벌컥 내요
상범이는 첫 발령을 받아 5학년 담임으로 만난 아이였다.
단발 비슷한 머리 모양에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졌지만, 외모가 준수한 편이고 눈이 제법 크면서 밤톨같이 까만 녀석이었다. 근데 이 녀석이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툭하면 2층 창문에서 뛰어내린다고 협박을 일삼았다.
수업시간에 모둠 활동을 하다가도, 아침 활동 수학문제지가 잘 안 풀리면,
그 외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성질을 부리며
교실 뒤편 창문으로 달려가는 일이 반복되었다.
"아! 나 이제 뛰어내릴 거야. 나 잡지 마! 어후! 성질 나!"
자주 창문 앞에서 뛰어내리겠다는 상범이와
이를 붙잡는 우리 반 아이들의 실랑이가 매번 그 자리에서 벌어졌다.
수시로 상범이랑 상담하면서 달래도 보고, 화도 내고, 방과 후에 남겨서 이야기도 하고, 때론 같이 조용히 기도하고 소원을 말해 보고 손을 꼭 잡아주기도 했다.
아이들 말로는 집에서도 엄마가 차려준 밥상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밥상을 뒤집어엎는다고 했다.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이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귀여운 아이가 커가면서 다른 행동을 한다. 이해하지 못할 말이나 정제되지 않은 감정을 감당이 안 되는 방법으로 표현할 때가 있다. 엄마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당황스럽다. 화를 낼지, 냉정히 지켜볼지, 데리고 앉아 차근차근 이야기를 할지, 아빠가 오면 대신 말하라고 할지 선택 장애가 온다. 육아에 지쳐 너무 힘든데, 너까지 그러냐고 순간적인 감정에 쏠려 화를 내기도 한다. 고함과 강압에 갑자기 풀이 죽은 아이를 보면 '엄마로서 잘한 걸까, 너무 뭐라고 했나?' 고민하게 된다.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 진다. '혹시 우리 아이가 어디가 잘못되고 있는 게 아닐까, 저러다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 매번 혼나고 아이들과도 어울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걱정에 잠을 못 이룬다.
자녀교육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의 기질, 엄마의 기질, 자라난 환경과 배경 등등이 천자 만별이기에 아이의 상황을 둘러싼 배경은 가정마다 모두 다르다. 다만 객관적인 시점에서 바라보고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행동할지 미리 가늠해 보는 것을 어떨까? 우리 아이에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누구에게 말하지도 못하고 혼자 속앓이 하느라 마음이 답답했다면, '다른 엄마도 이런 고민을 했구나. 다른 아이들도 이런 비슷한 행동을 했었구나.' 확인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교사가 부모를 나무라기 위함도, 집에서 잘 양육하라는 조언도 아니다. 학교에서 만나는 다양한 아이들 중 대표 사례로(때로는 좀 극단적일 수도 있다. 내가 만난 아이들은 특이 케이스가 많다.) 그 아이와 우리 아이가 무엇이 다른지 혹은 비슷한지 살펴보고, 아이를 잘 양육하여 훌륭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도록 도움받기를 희망한다. 즉, 아이 키우는 엄마로 서로 고민하면서 현장 경험을 나누어 보자는 생각이다.
상범이로 인해 나의 첫 교사생활은 너무 힘들었다. '뛰어내리겠다' 시위는 늘 일어났고, 정말 아이가 뛰어내리기라도 할까 두려워 우왕좌왕했었다. 세상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소규모 학급의 아이들과 도란도란 즐겁게 배우고 익히게 할 꿈에 부풀어 있던 나에게 날벼락같은 일이었다. 어떻게든 아이가 떨어지지 않게만 하려고 노력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면 '내일은 또 어떻게 하지?' 걱정이 앞섰다. 그러다 보니 점점 아이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상범이의 기분이 나쁘지 않은지, 수업을 하다 갑자기 뛰어내리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지 전전긍긍했다.
1학기쯤 지나, 가만 보니 상범이는 자신이 떨어지겠다고 할 때마다 친구들이 그러지 말라 붙들고, 선생님이 새파랗게 질려서 좋은 말로 타이르면서 챙기는 것을 즐기는 듯했다. 어느 날 나는 마지막 선언을 했다.
네가 그렇게 하고 싶으면 해.
하지만 우리 모두 가만히 있을 거야.
우리는 너를 1학기 동안이나 계속 달래고 말렸어.
그런데도 너는 늘 조그마한 꼬투리라도 생기면
뛰어내리겠다고 협박했어.
지금이라도 창문에서 멀어지고,
조용히 그만 두면 우리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널 대하고 선생님도 네 이야기를 들어줄 거야.
그래도 네가 뛰어내린다고 하면
그동안 충분히 말렸으니 가만히 있을 거야.
네가 기분이 나쁘다고 우리를 협박하면 안 돼.
(사실 너무 두려웠지만 전날 비가 와서 촉촉한 땅은 혹시나 아이가 떨어져도 푹신할 거라는, 그렇게 믿고 싶은 마음이 컸다.)
순간, 상범이는 머뭇거렸다. 한 발을 창문에 올리고는 이래도 날 안 말릴 거냐는 눈으로 돌아봤다. 우리는 모두 숨죽이며 가만히 있었다. 마침내 상범이는 머뭇거리며 발을 슬그머니 내렸고, 가만히 서 있었다. "잘했어, 상범아. 너는 뛰어내리겠다는 협박보다 더 큰 용기를 내어서 스스로 마음을 참았어. 고마워. 이제 자리로 돌아갈까?" 상범이는 순순히 행동했다. 아이의 행동이 너무 극단적이거나 폭력을 행사한다면 어른의 반응도 단호해야 한다. 평소에 엄격히 아이를 양육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남에게 해를 주는 상황에서 엄격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에 따른 행동을 부정적으로 표출하지 않도록 다른 방식의 감정 표출을 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나중에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상범이의 아버지도 걸핏하면 집안에서 큰소리를 내고 밥상을 뒤집어엎고, 협박을 했다고 한다.
그날부터 나는 상범이와 방과 후에 앉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에는 있었던 일이나 감정을 말하라고 하면, '아우', '뭐', '어휴' 이런 감탄사가 상범이가 하는 말의 주된 단어였다. 큰 눈을 도록도록 굴리며 하고 싶은 말을 시원스레 못 하는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치기도 했다. 상범이는 차츰차츰 나아졌고, 창문이라는 글자를 더 이상 꺼내지 않았다. 대신 화가 나거나 억울한 일이 생길 때마다 나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왜 자신이 화가 났는지를 자기 기분이 풀릴 때까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경험한 과격한 행동을 자주 하는 아이들에게 보이는 공통된 특성은 다음의 세 가지였다.
첫째, 나쁜 행동을 크게 해야만 주변에서 자신에게 관심을 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눈에 띄는 과격한 행동이나 말로 자신에게 모두의 관심을 잡아두고 싶어 한다. 누구에게나 인정 욕구는 있는 것이라서, 다른 사람이 자신의 행동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거나 조용히 반응하면 더 이상 그 행동을 하지 않는다. 이럴 때는 나쁜 행동이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면 지적질보다 한 눈을 감고 적당히 넘어가 준다. 대신 좋은 행동을 했을 때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칭찬하면서 서서히 좋은 행동을 많이 해야 관심을 받는 것으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를 때 아이들은 과격한 행동을 하게 된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법, 혹은 나쁜 감정이 들었을 때 이를 털어내는 방법을 알려주고 연습하게 해야 한다. 무조건 "그런 행동은 나쁘니까 하지 마, 안돼"는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게 억압을 가져오고 그게 누적이 되었다가 한꺼번에 봇물처럼 터져 나오면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아이와 찬찬히 자신의 기분에 관해 말하게 하면서 "아, 너는 그랬구나." 공감해주고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의 아이는 스스로의 답을 말해준다. 자신의 감정이 어른에 의해 공감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아이의 나쁜 감정은 많이 누그러진다.
대화법으로 안 될 정도로 분노의 감정이 높은 아이라면 먼저, 화가 어느 정도인지 구체적인 숫자 범위를 알려주고, (나는 1에서 5까지 중에 고르라고 한다. 이때 분노 숫자 1과 5가 어느 정도인지 예시를 들어준다.) 그중에 어느 숫자에 해당하는지 말해보라고 하는 것도 좋다. 글을 쓸 정도로 큰 아이라면 분노 노트에 어떤 상황에서 화가 주로 나는지, 그럴 때 어떻게 반응을 했는지, 앞으로 화가 날 때 어떻게 할지 쓰게 하는 방법도 있다. 아이는 글을 쓰면서 차츰 자신의 분노가 일어나는 지점을 알아차리고 스스로 조절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아이들은 가끔 자신이 화가 나는 것인지, 짜증이 나는지, 당황스러워서 소리를 지르는 것인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이런 아이는 말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거나 분노 노트를 쓰면 자신의 감정 상태를 알아차리게 된다.
셋째, 분노 조절이 잘 안 되는 아이들은 공통적으로 언어능력이 또래보다 약한 편이다. 평소에 생각이나 감정을 말로 표현을 잘해보지 않았거나,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아서 잘 모르기 때문이다. 때문에 말 대신 행동이나 소리 지르는 것으로 표현한다. 유치원 시절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에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물어보고, 아이는 대답을 하는 이런 사소한 대화가 매우 매우 중요하다. 이런 이야기는 주로 저녁식사 시간에 밥상머리에서 온 가족이 함께 하면 더욱 좋다.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한 번쯤은 온 가족이 모여 식사하면서 하루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가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하루아침에 늘기는 어려울 수 있다. 화가 날 때 아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화를 누그러뜨리는 방법을 어른이 알려주어야 한다. 아이가 화가 날 때 그 행동을 스스로 조절하려는 노력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사실 아이도 매우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매번 느꼈다. 2학년 아이와 이런 약속을 했다.
네가 화가 나면 먼저 이렇게 하자.
숨을 크게 쉬어 봐,
속으로 하나, 둘, 셋 천천히 세는 거야.
그래도 안 되면 선생님에게 와서 선생님 손등을 툭툭 쳐.
그럼, 선생님은 네가 화가 났구나 생각하고
밖에 나가서 잠깐 복도를 걷고 오라고 할게.
늘 아이에게 참기만을 지도할 수는 없다. 화도 제대로 내야 건강한데, 그 방법을 어른이 잘 알려주어야 한다. 위의 예처럼, 먼저 아이가 스스로 화를 누그러뜨릴 시간을 주는 것이다. 아이의 감정을 먼저 읽어주면 좋겠지만 학교는 공동체 생활을 하는 특성상 그게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먼저 누그러뜨리도록 지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선생님에게 그 감정을 공감받으려고 온다. 사실 화가 날 때 와서 손을 치지만, 아이는 화가 누그러지면 기뻐하며 이야기한다. "선생님! 나 아까 화가 났는데 숨을 쉬고 괜찮아졌어요." 끝에는 화가 완전히 가라앉는 활동으로 아이가 고른 것을 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 아이는 복도를 나가서 걷고 싶어 했다.
가정에서도 아이의 감정 상태가 화난 것이라면 그 감정을 같이 귀 기울여 들어주고, 다음엔 아이 마음이 고요해질 수 있게 시간을 두고 기다려 주어야 한다. 절대 "이제 그만하면 됐지, 아직도 화가 났어?"라고 묻지 말아야 한다. 아이의 화가 누그러지는 시간은 나와 다를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기분이 좋은 일이나 활동을 하게 이끌어 아이의 기분을 긍정적인 경험으로 바꾸게 도와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