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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혜숙 Apr 19. 2022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우리 아이

무슨 말을 해도  '몰라요', '귀찮아요' 해요.

선생님! 쟤는 말을 안 하는데 어떻게 같이 해요? 그냥 빼고 해도 되지요?


형준이 때문에 우리 조는 이미 망했어요. 


내 수업은 영어라는 과목의 특성상 활동이 많다. 수업을 설계할 때 학생의 참여와 배움이 일어나는 시점을 고려해 적절한 활동을 넣는데, 주로 단원의 마지막에 하는 역할놀이를 처음 시도할 때 아이들에게 이런 반응이 나온다. 말은 안 하는 아이는 한 학년을 가르치면 한 두 명 정도이고, 이 비율은 저학년이든 고학년이든 대개 비슷하다. 


(출처: Freepik)


빼는 게 아니라, 오늘 형준이는 샘하고 이야기하는 거야.
너희들은 연습할래? 형준이는 선생님하고 활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노는 것도 아니고, 선생님이 요구하는 것을 완료하면
너희들처럼 도장도 받을 수 있어.
다음 시간부터는 너희들과 함께 역할놀이를 할 거야.
지금부터 선생님이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역할놀이 연습해서 발표 준비하자. 


아이와 이야기를 시작한다. 대개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누면 말하는 것을 한 번도 못 봤다고 하는 아이가 꼬박꼬박 잘도 대답한다. 바로 역할놀이를 왜 안 하는 거냐고, 말을 안 할 거냐고 아이를 다그치지 않는다. 아이들이 연습하는 시간은 정해져 있고, 곧 모둠이 돌아가며 발표를 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은 무척 조급 하나, 내색하지 않고 차근차근 물어본다. 학교는 오는 게 즐거운지, 주말에는 뭐 했는지, 집에 몇 시에 돌아가며, 집에 가서는 뭘 하는지 등이다. 처음에 아이는 잔뜩 긴장해 있다가 이런 사사로운 이야기를 꺼내면 편안히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왜 모둠 활동에 참여를 안 하는지 물어보면 솔직히 말해준다. 모둠이나 학급 전체를 대상으로 발표할 때는 입도 벙긋하지 않는데, 이럴 때는 목소리도 제법 크다. 


형준이의 사정은 엄마와 관련되어 있었다. 엄마가 다른 곳에서 암투병을 하시는 중이라 가끔 집에 오는데, 어제도 오랜만에 엄마가 오셔서 엄마 옆에 눕고 싶었다고 한다. 막상 엄마 팔을 베고 누우니, 두 남동생도 서로 엄마 옆에 눕겠다고 난리를 피워서 결국 제일 맏형인 형준이가 밀려났다. 


너는 형이니까, 동생들에게 양보를 해야지!
엄마 힘들게 하지 말고 빨리 비켜줘. 


형준이는 엄마가 무척 보고 싶었고, 그리웠는데 말도 못 했다고 한다.  늘 '동생들에게 양보해라'.' 형이니까 스스로 알아서 해라.'는 소리에 서운했고, 학교에 왔는데도 4교시인 지금까지 머릿속에서 계속 생각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제가 이런 상황인데, 뭐 공부를 할 수 있어야지요. 


그래!
나라도 공부하기 어렵겠다.



아이 얼굴이 환해졌다. 종알종알, 주절주절 온갖 이야기를 한다. 언제든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으면, 사무실로 오라고 약속했다. 곧 형준이는 사무실에 와서는 모둠에서 자꾸 자기에게 뭐라고 한다는 여자아이 이야기를 하고 갔다. 형준이는 늘 영어 단어 받아쓰기 100점을 맞는 아이라 학업 능력이 떨어지지는 않지만, 예민하고 감성적이라 집에서의 일들에 영향을 받아 자존감이 낮아졌고, 상대적으로 기가 센 여자아이가 조목조목 따져가며 말하는 것이 끔찍하게 싫어 입을 닫았던 경우이다. 다음 역할놀이 때는 해설을 맡아 멋들어지게 읽어서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아이들이 자존감이 낮아지고 자기 표현력이 없어지는 원인은 학습동기가 결여되거나, 학업능력이 또래보다 낮기 때문이다. 


아이의 학습 동기가 낮거나 결여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개인적, 가정적, 학교의 세 가지 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개인적인 면

첫 번째, 기억력(단기기억)이 또래 아이들보다 약하다.

두 번째, 주의집중력 결핍이 보인다. 과잉행동장애 주의력 결핍도 있지만, 조용한 경우도 있다.

세 번째, 비효율적인 학습방법이나 전략 사용으로 성취감을 느끼지 못한다.

네 번째, 자존감이 낮다.

다섯 번째, 신체가 건강하지 않다. 

여섯 번째, 학습 장애가 있다. 


가정적인 면

첫 번째, 부모님이 아이에 학업에 관심이 없다.

두 번째, 가정환경이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 아이를 중점으로 돌보기 힘들다.

세 번째, 가정불화의 문제가 있다. 


학교

첫 번째, 선수학습을 제대로 짚지 않고 넘어간다.

두 번째, 교사의 기대가 낮고 인내심도 부족하다.

세 번째, 또래 집단이 영향을 준다. 


4학년 도연이는 2학년부터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떤 문제가 있을까 조사했는데, 1학년 때 또래보다 한글 해득이 매우 늦어진 게 발단이 되었다. 글을 읽고 쓰지 못한다는 것이 아이에게 영향을 주어 자존감이 낮아지게 되었다. 자신감이 없어진 탓에 말을 안 하게 만들었고, 아이들은 그게 상처가 되는 줄도 모르고 '재는 말을 안 하는 아이'라고 대놓고 말한다. 그렇게 도연이는 말하지 않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출처: Freepik)


도연이의 경우와 같이 학습 부진이 원인이 되어 자존감이 낮아지고, 자신감이 상실되어 버린 상태인 아이에게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에서 다섯째까지는 심리 신체적인 특징이고, 여섯째와 일곱째는 인지적인 특징이다. 


첫째, 쉽게 좌절하여 새로운 과제를 잘 시도하지 않으려고 한다.

둘째, 쉽게 산만해지고 과제 수행에 어려움이 있다. 

셋째, 자리 학습이나 모둠 활동을 할 때 같이하기를 어려워해서 집단활동에서 소외된다.

넷째, 아이들이 쉽게 하는 과제를 완성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다섯째, 준비물 가져오는 것을 잘 잊는다. 

여섯째, 충분한 배경지식이 없다.

일곱째, 선수 학습이 잘 되어있지 않다. 


다음은 학습에서 성공하거나 실패한 학생들의 자아개념  그래프이다. 


(출처: 서울교대 강옥려. 2014)


학생이 학습에서 성공하면 할수록 학생의 자아개념은 상승하고, 학습에서 실패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자아개념이 점점 낮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되도록 빨리 아이가 실패에서 빠져나오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출처: Freepik)


성공 경험 확대하기

어떤 이유에서든 말을 잘하지 않고 모둠활동에 참여하지 않은 아이는 자존감이 매우 낮아져 있는 상태이다. 이대로 놔두면 아이는 점점 학업에서 뒤처지고, 모둠/집단활동에서 소외될 것이다. 우선 아이가 할 수 있는 기대치로 목표를 잡아 성공 경험을 많이 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아이가 잘하는 것을 찾아주고 그것을 더 잘하게, 더 열심히 하게 해 줘서 성공 경험을 늘일 발판을 마련되게 어른이 도와야 한다. 


가정에서 부모님은 아이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여, 내 아이의 현재 상태를 받아들이고 이를 개선하고자 함께 노력하여야 한다. 아이의 적극적 지지자가 되어, 자녀가 어려워하는 점을 수용하고 공감해주며, 이를 찬찬히 극복해나가도록 격려를 아끼지 않는 것이 아이에겐 매우 큰 힘이 된다. 다만 무조건적인 칭찬은 독이다. '아유, 우리 도연이 똑똑하지!' 이렇게 말하면 아이도 안다. 스스로 똑똑하지 않다는 것을. 이런 근거 없는 칭찬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아이가 이전보다 조금이라도 달라진 것이 보이면 그것 하나를 찾아 구체적으로 칭찬해야 한다. 


엄마가 보니까 도연이가 집에 오면
매일 동생에게 소리를 한 번씩 질렀는데,
오늘은 되게 상냥하게 말하더라.
고마워! 



학교에서는 아이가 어떤 방법으로 학습에 참여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나갈 수 있는지 대안을 찾아 도와주어야 한다. 선수학습에서 결손 부분이 있다면 기초학습이나 보충지도를 할 방법을 열어주고, 아이의 학습 스타일에 맞게 학습 전략을 찾아 아이가 할 수 있도록 가이드해야 한다. 



오늘은 친구들에게 물어봐서 대답을 듣고
적어오는 활동을 할 건데, 할래?


도연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목소리로 하겠다고 한다. 


이제부터 선생님은 도연이랑 한 몸이야. 
같이 다니면서 물어볼 거니까, 우리 함께 말하자.
대답한 친구들 이름은 네가 써. 알았지?


아이의 눈꼬리가 접히는 것을 보니 마스크 안으로 빙그레 웃음을 짓고 있나 보다. 다음 활동인 단원 노래 부르기에서 모둠별 노래 부르기 대항을 했다. "이번엔 내가 자신 있게 불러볼래요 하는 사람 일어나 볼까?" 기대도 안 했는데, 짜잔! 도연이가 일어나서 친구들과 같이 노래를 불렀다. 세상 행복하다. ^^


(출처: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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