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by 영원

있지, 꼭 이 말을 하려던 건 아닌데 그날 기억나? 비가 엄청 내리던 날. 그니까 네가 네 엄마한테 칼을 던지고 나한테 전화했던 날. 엄마가 자꾸 떠날 거 같다고. 이상하고 무서운 아저씨가 집에 자주 드나들기 시작했다고. 그런 아저씨들이 드나들 때면 엄마는 몇 달을 떠나곤 했다고. 그 말을 하면서 너는 울었었잖아. 아니지. 웃고 있었나? 너는 기괴한 소리를 내면서 화를 냈었지. 네 얼굴은 없는데 나는 자꾸 앞을 바라봤어. 너는 귀에서 존재하는데 나는 자꾸만 눈을 떴어. 너는 너의 불안을 앞세워 자주 나를 시험하곤 했지. 사랑은 원래 이렇게 확인하는 거라며 유난이다 싶은 날엔 꼭 내가 유난인 사람처럼. 미친 사람처럼 속아줬고 네가 완전히 돌아버린 것 같은 날도 세상이 이상한 거라며 너를 다독이곤 했지. 그게 문제였을까? 삶이 거지 같은 거라고 널 설득해서 네가 살기 싫어진 걸까? 너는 죽음에 대해 말했었지. 영화를 쓰면서도 더 이상 기쁘지가 않다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며 사는 건 억지로 삶을 연명하는 거나 다름없는 일이라며. 너는 결국 그 일을 사랑하지 못했고, 세상이 이상하다는 거짓말도 알아버렸고, 그 약은 네 불안을 잡아주질 못했으며 나도. 나도 다를 바 없었고. 너는 유독 흐린 날에 약했지. 한껏 들떠있다가도 해가 없는 날엔 꼭 긍정이 잠든 것 같다며. 언젠가 비가 쏟아지던 날. 네 작은 방에서 하루 종일 비 구경만 하던 날. 비는 꼭 사람을 저만치 아래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고 너는 말했었지. 그날은 비가 꼭 눈처럼 내렸어. 모든 게 다 태워지기 전에 고요만 남은 거 같았어. 기타 소리와 빗소리가 엉켜서 꼭 달이 춤추는 것만 같았어. 앞을 볼 수 있다는 게,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게 어쩐지 너무 신비롭게 다가와서 마음이 붕 뜨는 느낌이었어. 비가 그친 새벽을 사랑해 그 길로 너와 끝도 없이 걸었지. 함께 걷던 날들이 있었어. 그래. 끝이 없는 길을 계속해서 걸어가던 날도 있었지. 영화를 쓰던 너의 뒷모습이 기억에 남아. 영원을 증오하던 너. 결국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돌아갔구나. 미련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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