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렇다고
자다 화장실이 급해, 깬 새벽
갑자기 든 생각이 있다.
나는 친구가 필요해서 친구를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떠나갈 때도 슬펐던 것은, 그들의 좋은 점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나에게서 벗어났다. 즉 내가 ‘소유’하던 무엇인가가 떠나간다는 사실에 슬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그랬다. 누군가가 떠나간다. 뭔가가 간다. 뭔가를 가져간다.라는 사실에 미쳐버릴 뿐, 그래서 공부도 내가 ‘소유’한다는 개념에서 책도 읽고 이랬던 것일 뿐, 딱히 뭔가 좋아서 그런 것은 없는 듯하다. 소유 중독인 것이다.
어릴 때, 좋아하던 것을 사 오면, 그게 먹을 것이든 돈이든, 아니면 물건이든 내가 쓰지도 않으면서 남이 쓰기도 싫어했다. 그것이 더 이상 효용성을 잃어도 나는 그저 소유하고 있다. 그 이유로 20년 전에 모으던 것도 지금도 버리지 못하고 남겨져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따로 ‘주려고’ 모으는 것도 있다는 사실이다. 왜 이럴까?
사람이든 뭐든 그냥 모으는 것, 내가 갖고 있는 것이 좋지.
쓰는 법을 잘 모르겠다.
아니. 또 다른 것을 모으기 위해 쓴다.
그때 그때 꽂혀있는 영화 라든지 책 이라든지 화장품 향수 옷 그때 꽂혀있는 것들.
초등학교 때 제주도에서 사 온 오미자를 좋아했는데, 아까워서 5년간 다 먹지 못하고 결국 상해서 버렸고, 친구와 공구한 팀탐. 나는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다 하니까 굳이 사서 결국 다 버리고, 그다음에는 코스트코 유행했을 때, 얘들이 치즈케이크 맛있다고 해서 사 와서 한입 먹고 다 버리고, 그냥 보관용. 늘 혼나곤 하는 부분. 왜 쓰지도 않으면서 사냐고. 그리고 자취하고 나서는 커뮤니티에서 무슨 치즈스틱이 유행이었던 적 있는데, 한 번 먹고 그다음에 단종되었다. 그냥 먹으면 되는데, 안 먹고 결국 몇 년 후에 버렸다. 먹지도 않고 남이 먹으려 하면 그냥 쌓아두길 원했다. 단종된다고 하면 쌓아놓는다. 근데 아까워서 못 쓴다. 그냥 쟁여놓는 것이다. 특별한 날 써야지 하는데, 나에게 특별한 날은 잘 오지 않는다. 남들이 산다고 해서 뉴질랜드 가서 포포 크림이랑 초콜릿 좋아하지도 않는데 겁나 사서 왔다. 몇 년이 지나도 한 개도 안 먹어서 결국 다 남 줬다. 남은 건 버리고, 포포 크림만 지금도 쓴다. 렌즈도 그렇다.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는데 불안해서 쟁여놓고 정작 지금은 투명 렌즈만 껴서 그냥 남겨져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왜 나는 사람이든 물건이든 소유만 하려고 할까.
사람도 그렇다. 친구가 떠나간다고 할 때, 그 사람이 싫어도 그 사람이 떠나가는 것 더 이상 내 소유의 무엇인가가 아닌 것이 싫어서 잡았다.
나의 그 전 행적들이 피하게 만드는 것을 알면서도.
뭐가 문제일까.
아니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런 사람임을 깨달아서 쓰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