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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가을 May 18. 2024

사랑의 이유


사랑의 이유를 열거하는 사람들은 사랑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랑은 어느 날 큐피드가 쏜 화살을 맞아 그냥 이뤄지는 거지

누구를 사랑하는 데는 이유가 없다 생각했다.


나는 남편을 그렇게 사랑했다.

아무것도 이룬 것도, 가진 것도 없는 그가 그냥 마냥 좋았다. 왜 좋아하는지 생각할 틈도 없이 사랑이 내게 휘몰아치고 타올랐다.


사람들의 수군거림도, 어이없는 표정도, 엄마의 미친년 소리도, 우리들의 연애로 종교에 더욱 몰두하게 되신 어머니도 내 사랑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그가 무슬림이었어도 마약중독자였어도 빚이 한 억쯤 됐어도 아마 나는 그를 사랑했으리라.


그러고 우리는 절대 할 수 없었을 것 같은 결혼을 꿈처럼 이뤄냈다.


그리고 시작한 결혼생활

상대방 가정 문화적응의 과정과  

까다로운 기질의 아이의 육아와

숨겨져 있던 각자의 취약함이 예고 없이 곳곳에서 튀어나와 서로를 상처를 내는 그 고단함이 우리의 결혼생활 안에 있었다.


나는 감정의 채도가 높은 사람이다.

슬픈 것도 기쁜 것도 애통한 것도 분도도 좌절도 감동도 쉽게 다가오고 오래 지속된다.


무채색에 가까운 그는 그런 나를 그냥 바라볼 뿐이다. 그의 건 어떻게 해결해야 할 문제인지 알 수 없다는 눈빛을 늘 읽는다.


나는 외로웠다.  나의 이 감정을 이해하고 알아주는 사람이 지구반대편 세상에 한 명쯤 있지 않을까..

내 진정한 사랑은 아직 만나지 못한 미지의 그 사람이 아닐까..




요즘 그를 안 지 20년이 넘어서야 불현듯 내가 왜 그를 사랑하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불안이 많은 사람이다. 내가 살아온 인생은 불안을 통제하려 애쓴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나에게 무채색의 그는 백 퍼센트에 가까운 예측가능한 사람이다.  어떤 의뭉스러운 생각이 거나 나를 위한다는 이유로 을 돌려서 하거나 뒤에서 살며시 칼을 꽂는 사람도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노매드랜드에는 이런 대사가 있다.

I maybe spent too much of my life just remembering.  난 어쩌면 너무 많은 인생을

단지 기억하느라 보내버린 것 같아요.   


무슨 일이 생기면 구석진 곳에서 웅크리고 앉아 과거의 나한테

그 일이 왜 생기게 했는지 캐물으며 시간을 보내야 내 불안을 통제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나에 비해

그는 그냥 그날의 TASK가 생기면  그걸 해결해 가며 하루를 보낼 뿐이다.

그에게는 과거가 없다.

굳이 과거를 돌아보지 않아도 별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창 우리 둘이 불타는 열애 중이었을 때 나는

그가 전 여자친구와 사귈 때 가평으로 1박 2일을 여행 갔다 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되는 그 일이 제발 일어난 일이 아니었길

마치 남자친구의 양다리를 알게 된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그에게 물었다.  그게 어떻게 된 거냐고  좋았었냐고.

그런 내게 평소와 똑같은 투로 그는 말했다  '좋았으니 여행을 갔지'


내가 원했던 답은 아니었지만

나에게 그 대답은 완벽한 답이었다.


그 대답을 듣는 순간 마음 한편이 아려왔지만

동시에 편안해지는 이상한 순간을 느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은 나랑 헤어져도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이야기하겠구나. 좋았었다고..


그 말에 그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그가 바람을 피우지 않을 거라는 것보다 바람을 피워도 나한테 말을 할 거라는 믿음이 절대적으로 크다.


사실 후자가 나에게 더 큰 의미다.


사랑한다는 말에 맘이 편안해지고 따뜻해지는 이유는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그런 말을 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런 그는 내 편도체를 무장해제 시켜 내 안의 불안이 힘을 쓰지 않아도 되게 뭉개뜨린다.


그게 나에게 말할 수 없는 안정감고 동시에 달콤함이다


나에게는 그게 내게 완벽한 사랑의 이유였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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