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일으키는 내면의 자아와 손 맞잡기
잘 바쁘기
잘 바쁘기
바쁘게 사는 걸
잘 사는 걸로
착각할 때가 있지 뭐야.
쉼이 어색하니,
일단 무작정 뛰는
것처럼 말이야.
숨 고르기,
그리고 잘 바쁘기.
우근철 시인
우근철 시인의 "숨 고르기, 그리고 잘 바쁘기."라는 마지막 구절을 마음속으로 수십 번 되새겨봤다. 그리고 지난날의 나의 삶도 꺼내어봤다.
바쁘게 사는 걸 잘 사는 것으로 착각할 때가 있다.
누구나 그런 경험은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물론 나 역시 그러했다. 결혼 전 몸 담았던 회사에서 열렬한 사명감을 가지며 일했고, 20살 때는 내가 원하던 신문방송학과에 입학은 했지만 끝내 적응하지 못하고, 새롭게 사회복지과에 재입학하면서도 누구보다 열심히였다.
한 번의 실패 아닌 실패를 경험하면서 단단해져 왔지만, 마음은 늘 눈앞에 목표를 두고 갈급함에 쫓겨왔다고 해야 할까.
"잘 바쁘기"가 아닌 "열심히 바쁘기"만 추구하고 그게 정답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면 잘 바쁘기의 '잘'은 어떤 의미일까?
부사
1
옳고 바르게.
마음을 잘 써야 복을 받는다.
2
좋고 훌륭하게.
아들을 잘 두다.
3
익숙하고 능란하게.
환자를 잘 치료하다.
어원을 보니 옳고 바르게, 좋고 훌륭하게, 익숙하고 능란하게 라는 뜻을 담고 있다.
잘 바쁘려면 바르고 훌륭하게, 익숙하게 바쁜 것을 추구해야 함을 의미한다. 바쁜 것을 서툴지 않게, 익숙하게 잘 다루어야 할 것이다.
과거의 나는 삶의 유연함과 여유가 너무 없었던 건 아니었나 반성해 본다.
"쉼이 어색하니 일단 무작정 뛰는 것처럼 말이야."
이 구절이 특히 내게 너무 와닿는다.
어쩌면 내가 느끼고 있는 무기력감이 쉼이 어색해서 그런 게 아니었을지.
잠깐 쉬어가도 되는데, 가만히 있어도 되는데 이 모든 나의 쉼을 내가 무기력으로 치부하지 않았나 싶기도 한 것이다.
널브러져 있는 내 모습을 스스로 채찍질하고 '더 이상 이러면 안 돼!'라고 말이다.
그러니 효율적 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은, 그리고 쉬면서까지 다음 목표를 그리고 있는 과거의 나에게 치를 떨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재의 나는 조금은 달라졌다. 사람은 갑자기 180도 달라지면 안 된다고 하지 않는가.
아직 과거의 나를 완전히 벗어나진 못 했지만, 숨을 고르며 글을 쓰면서 묵혀있는 감정을 쏟아내고,
한번씩은 글쓰기 미션과 학습 과제도 조금은 미루게 되었다. 그러면 안 되는 줄로만 알았는데...
마감일을 목전까지 두고 하고 있는 내 모습도 발견하게 된다.
게으른 완벽주의. 예전엔 없었지만 현재 나에게 어울리는 단어인 듯하다.
앞으로의 나도 조금씩 잘 바빠져보려고 한다. 너무 게으른 나 자신은 차마 용납이 안 되니 매일 글을 쓰고, 가끔 책을 보고, 공부도 짬짬이 하며. 가족들, 친한 지인들도 만나며 수다도 떨고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것이다.
자, 다시 숨 한번 고르고 잘 바빠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