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일으키는 내면의 자아와 손 맞잡기

관계에서 오는 불안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by 노을책갈피

한 해를 돌아보며


나에게 선물로 다가온


올해의 귀인은 누구였던가.


나를 남김없이 불사른


올해의 시간은 언제였던가.


박노해 시인, <걷는 독서> 중에서



나의 주변을 둘러보면 보통 10년 이상 오래도록 사귀어 온 지인들이 많은 편이다.

많다고 표현하기는 좀 부끄럽지만, 가족을 제외하고 내 사람이라고 여기는 지인들이 5명 이상만 된다면 성공한 인생이지 않을까?

그런 반면에 30살 이후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나에게 밀린 과제처럼 느껴졌다.

꾸준히 오래간 인연은 고작 한 두 명이 전부다. 내가 새로이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것에 서툴렀을 수도 있다.


최근에도 나는 나름 각별하다고 생각했던 10년 차 지인은 이유도 없이, 어떠한 설명도 없이 나에게 등을 돌렸다. 내가 다시 용기를 낼 수도 있었지만, 자존심이 센 나는 그 관계에 연연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 지인에게 무척 실망을 했다가 나중에는 이해하려고 해 봤다.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을까?' '같은 아이들 키우는 입장이라 학원을 직접 픽업한다고 들었는데 정신없을 거야.'라고 흐지부지 혼자만의 결말을 만들고 있었다.


이렇듯,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것도, 관계에 연연해하지 않는 것도, 마음을 비워내는 것도...

참 쉽지 않은 인간관계다.

내가 새로 이사 온 동네에 정착한 지도 이제 만 8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이사 온 초반에는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해 왔다.


육아맘 단톡방에서 마음이 맞는 6명이 독서모임을 하기로 했던 것이다.

해당 인원들이 돌아가며 읽을 책을 선정하고,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으로도 모임을 가졌다.

읽을 책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독서 편식을 가지고 있는 몇몇도 있었고, 오프라인 모임을 3차례 정도 가지면서 은연중에 자기와 맞지 않는 성향을 보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인원이 6명이다 보니 의견의 합을 맞추는 것도 쉽지가 않았고, 6명이 다 모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결국 2달 정도 유지되던 독서모임은 사실상 해체된 셈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이렇듯, 새로운 관계를 형성함에 있어서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닌, 서로의 이해관계 속에서 각자의 입장을 맞추기란 쉽지가 않았다. 독서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이 오래갈 수 있는 사이라고 확신은 못 했지만,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해체될지는 몰랐던 것이다. 그러면서 느낀 바가 있다.

초반에 '내가 독서 모임을 일부 주도적으로 이끌려고 하는 부분이 미흡했었나?'라는 생각이다.

어느 누구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괜스레 내가 경험해 온 부분을 강하게 얘기했던 것도 살짝은 후회가 되었다. 내가 했던 행동과 말에 대해 반성의 시간을 가지기도 하며, 훌훌 털어내려고 하고 있다.


최근에 알게 된 지인이 있다. 새 아파트 입주라 모두 아는 지인이 많이 없는 상태이다.

첫째 친구 엄마라 얼굴은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다 할 연결고리가 없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포**빵을 당*마켓으로 우연히 그 지인과 거래하게 되면서 서로의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자연스레 커피 한잔을 하며 아이들 이야기, 전에 살았던 동네 이야기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3번 정도의 만남을 가졌을까. 이 지인과 얼마 전에도 만날 뻔한(?) 기막힌 우연이 또 있었던 것이다.

인근 작은 도서관에서 책커버를 만드는 수업에 인원 수가 부족해서 육아맘 단톡방에 그 지인이 직접 홍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책커버 만드실 분 추가 모집합니다. 관심 있으신 분 신청해 주세요"라고 말이다.

나는 곧바로 신청했고, 해당 날짜만 기다려왔지만, 정말 중요한 약속이 생겨서 그 프로그램에 부득이하게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 제가 그때 갔으면 만날 뻔했겠네요. 결국 우리가 만날 인연이긴 했었나 봐요."라고 나는 넌지시 말을 건넸다.


박노해 시인의 <걷는 독서>에서 유독 이 시가 눈에 띄었다.

"한 해를 돌아보며 나에게 선물로 다가온 올해의 귀인은 누구였던가. "

짧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가진 시다. 관계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해보게 된다..

한 해를 돌아본다고 얘기하기는 좀 이른 감이 있지만, 나에게 선물로 다가온 올해의 귀인이 앞서 언급한 그 지인이길 바라본다.

관계는 한 사람의 배려만으로 결코 오래 유지될 수 없다.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며 이해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서 느끼는 바는 '난 상대에게 늘 배려와 양보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관계의 서툼으로 인해 상대방에게 불편함을 주진 않았나?' '혹시 내가 무심코 던진 말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진 않았을까?'라고 나를 채찍질하게 된다.

내가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상대의 눈치를 보게 되고, 맞춰주게 되고, 내 의사를 잘 표현 못 하는 이유는 뭘까?

왜 관계에 있어서 항상 내가 잘못한 것부터 생각나고 나를 다그치게 될까?

내가 맞춰주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혹시 나를 떠나진 않을까?라는 불안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엄마가 되고 난 30대 이후론 관계를 맺고 끊음에 있어서 아무런 소통 없이 자연스레 스쳤다가 사라진 인연들도 꽤 많았다.

그러한 뼈아픈 기억들이 거대한 덩어리처럼 커져서 나를 작아지게 만든 것일까?

사람을 잘 믿지 못하는 편은 아니지만, 사람 간의 관계에 있어 이렇다 할 확신과 자신감이 없는 것이다.

분명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나로 단정 지을 수 없는 사람과 사람 사이.

모두가 인정하지 않는가? 어딜 가도 정말 어렵고 힘든 것이 인간관계인 것을.


앞으로의 나도 지금처럼 관계에 서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우연가 겹쳐 인연이 닿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그 관계에 집중하며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그 관계가 비록 오래가진 못한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마음을 표현하고, 그때그때 진심을 보인다면, 상대가 결국은 알아차려 줄 것이라 믿는다.

그래야 나중에 그 관계가 틀어지고 깨진다고 해도 내 안에 일말의 후회가 남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내일 그 소중한 지인을 만난다. 감사함을 담아, 내 마음을 담아. 내일 하루,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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