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일으키는 내면의 자아와 손 맞잡기

발표 불안과 첫 맞닥뜨림

by 노을책갈피

처음부터


처음부터 완벽하게


잘하려고 하지 마세요


성공은 당신의 그 약함이


시간 지나며


조금씩 견고해지는 것이지


처음부터 정상에서


행복한 사람은 없으니까요


최정재 시인



나는 유독 사람들 앞에 나서기 어려운 성격이다.

내향형이기도 하지만,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당당하지 못한 나를 이상하게 보진 않을까?' 의식과 무의식의 초점이 항상 '내'가 아니라 '남'이었다.

그래서 학창 시절 선생님의 간단한 질문에도 '제발 나만 피해 가라.'를 수없이 외쳤다.

모둠 발표수업이 있을 때면 항상 서포트해주는 역할을 다 해내고도, 정작 중요한 발표는 다른 친구를 시켰다.

계속 주인공이 되는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이 무서웠다.

스스로 당당하지 못해 나서기가 싫었다. 자신감의 결여였을까.

조용조용한 성격, 자신감 결여, 주인공의 보조 역할. 항상 그 모든 역할을 내가 자처했다.


그러던 내가, 사회복지과에 입학 후 공부했을 당시 발표불안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던 에피소드가 있다.

전공이 전공이다 보니 만학도들이 많았고, 팀을 이루어 발표하는 상황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4명씩 팀을 이루는 <놀이지도>라는 과목의 팀별 수업 시연이었다.

한 팀이 보육교사가 되어 어떤 주제를 정해 아이들을 지도하는 과제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련의 대사가 있어야 가능한 과제였다.

팀원들 중에는 나이 있으신 고령의 50대 어머니와 자폐아들을 둔 20대 청년. 아들을 위해 함께 입학했던 따뜻한 모자 관계였고, 또 다른 팀원은 한 살 아래 동생이었는데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밤샘 아르바이트를 하고 늘 지각을 했던 여학생이었다.

"자, 저도 이 주제 실습은 정말 막막한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내가 이 말을 건네자, 50대 어머니께서 "나는 나서는 건 정말 못하겠어요. 자료는 함께 찾아볼게요. oo 씨가 좀 총대 메고 해 줘요." 옆의 동생도 "맞아, 언니. 함께 자료 준비하고, 언니가 발표해 보는 게 어떨까?"


아... 막막했다. '내가 발표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오다니... 늘 뒤에서 서포트만 해왔는데, 이번엔 내가 결국엔 나서야겠구나.'

준비 기간은 대략 2주였다. 우리는 공통 주제를 정했다. 아이들을 위해 클레이로 피자 만들기를 하는 수업으로 정했다.

클레이 준비물을 챙기고, 선생님 역할에 따른 대사를 수기로 적어보았다.

대사를 수정하고 또 수정하고.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지도하는 따뜻한 선생님의 어감과 말투를 생각해 봤다.

물론 같은 팀원들 앞에서도 내가 선생님이 되어 수업 시연을 수없이 연습했다.

'아, 담당 교수님과 우리 과 학생들이 보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는 어떻게 하지? 아,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어버리고 싶다 정말.'


발표 날이 다가오니 점점 불안했다. 그럴수록 연습만이 살길이었다.

아이들과 첫인사와 날씨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함께 간단한 율동으로 시작한다.

클레이 만들기 하는 과정을 잘 설명해 주고 아이 한 명 한 명 만들기 하는 과정에 대해 피드백해주는 역할도 선생님의 역할이었다. 예기치 못한 변수도 있을 텐데, 이 모든 상황을 예상하며 피드백하는 방향으로 연습했다.


과제 발표 당일이었다. 앞 조에서 발표 시연을 잘하는 모습을 보니 더 긴장됐다.

성인들끼리의 선생님과 아이들 역할을 하는 수업 시연이다 보니 웃음이 새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나는 정작 웃을 수도 없었다. 대사가 쓰인 종이를 움켜쥐며 속으로 되뇌고 또 되뇌었다.

드디어 우리 팀 차례가 왔다. 올 것이 온 것이다.

전날 밤잠도 설쳤는데, 까짓 껏 해보자라는 심정으로 사람들 앞에 나섰다.

아, 눈앞이 흐려졌다. 없는 사람들인 것처럼 행동하자.

눈 질끈 감고 첫 대사를 했다. 안 그래도 무뚝뚝한 내가 살가운 말투로 선생님 역할을 하는 것 자체가 곤욕이기도 하였다. 처음 10분은 떨려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그 시간이 지나더니 점차 긴장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내가 일명 '애드리브'도 구사하고 있었다.

40분 정도의 수업 시연이 무사히 끝났다.


담당교수의 피드백이 이어졌다. 다행히 박수를 쳐주셨고 칭찬으로 응답해 주셨다.

열심히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고 팀원이 하나가 된 것 같았다며 정말 수고했다는 따뜻한 피드백이었다.

나 스스로 큰 용기를 낸 것이고, 2주 동안 고생한 보람이 충분히 있었다.

무려 15년 전의 일이지만, 그 당시 발표를 준비했던 상황들과 내가 나서서 수업 시연을 했던 시간들이 생각이 난다.

어떤 용기를 가지고 했을까? 아니 그래야만 했으니 했을 테지만, 나에게는 발표에 대한 자신감을 처음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졸업 후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공공기관 민간위탁기관에서 직업상담사 일을 했다.

장기실업자들을 대상으로 재취업을 위한 준비를 하는 집단 상담으로 강의가 필수였다.

'아, 또 올 것이 왔구나.'

피하고 싶지만 피해 지지 않는 걸 보면 계속 맞닥뜨려야 하는 것일까. 나는 또 마주해야 했다.

'지독한 발표 불안과 또 대면이라니..'

준비하자.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라도 준비가 안 되면 자신감 있게 강의할 수 없었다.

심지어 교육생들은 나보다 훨씬 연배가 있으신 장기구직자분들이었다.

한껏 굳은 표정들, 질문에 대답도 없는 반응이 처음엔 너무나 힘들었다.

그렇지만 회차가 점점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강의에 임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처음, 그 시작이 힘들다고 하지 않던가.

처음의 위기를 잘 헤쳐나간 뒤에도 발표 불안과 계속 맞닥뜨렸지만, 그럴수록 더 힘을 냈다.

먹고살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 성장을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30대 후반인 나는 여전히 발표 불안을 가지고 있다.

남들 앞에 나서는 게 여전히 어색하고 힘들고, 부자연스럽고 딱딱하게 굳어있는 나 자신과 마주하는 것도 여전히 힘들다.

앞으로도 발표 불안을 쉬이 깨뜨릴 수는 없겠지만, 언젠가 발표를 할 상황이 온다면 늘 그래왔던 것처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나만의 방법으로 꼼꼼한 발표 준비, 성실함을 무기로 달려갈 것이다. 세상 앞에서 어느 하나 위축되지 않는 자신감 있고 당당한 태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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