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라는 사전적인 뜻은 "어찌하다"의 준말이며, '무슨' '웬'의 뜻을 나타낸다고 한다.
참 나는 어찌하다가 공모전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일까.
도서 목록을 봐도 "어쩌다" 시리즈가 심심찮게 보인다.
<어쩌다 도박>, <어쩌다 북튜버>, <어쩌다 부부> 등등.
유명한 시사/교양 프로그램으로 <어쩌다 어른>도 있지 않은가.
우연한 기회로 글을 쓰게 되었고, 글을 쓰다 보니 잘 쓰고 싶다는 막연한 욕심이 생겼고, 그 욕심은 어느새 일상이 되어있고....
어떤 영역이든 꾸준함은 통하는 것이 법칙인 것처럼 어쩌다 브런치 "작가"라는 수식어도 생겼다.
3년째 매일 글을 써오며 겹겹이 쌓여온 시간들. 그 시간이 나를 배신하지 않았던 것인지, 내가 그 시간을 허투루 사용하지 않았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글쓰기가 나에게 단단히 훈련이 되오니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서 머무르지 않고, 한 단계 도약하고 싶은 욕심을 냈다.
어떤 분야든 타고난 사람들이 있는 반면, 타고남보다는 오랜 시간 노력의 결실이 빛을 발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후자의 경우라고 감히 단언한다. 게다가 나처럼 글을 쓰는 사람들은 너무도 많고, 재능이 특출한 작가들은 판을 치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세계에서 그저 취미로만 글을 쓰는 것도 행복한 일이었지만, 매일 써온 글과 마주하며 '나'라는 존재가 감히 '독자'들과 소통하고 싶은 소망이 생겼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내 글이 공감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의 글을 조금이라도 알릴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들과 마주하며 선택했던 것이 바로 공모전이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여러 문예지의 문학 공모전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독서의 계절 '가을'을 겨냥한 독후감 공모전으로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그러면서 주변에 인연을 맺은 문학평론가, 시인, 수필가 선생님들께 내 글에 대한 패드백, 첨삭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날카로운 평가에 마음은 쓰리지만 겸허히 수용한다.
에세이 제작 수업을 통해 수필의 기본 이론들을 다시 배우며 내실을 다져나가고 있다.
마침 오늘 내가 등단한 평론가(심사위원) 선생님으로부터 심사평을 받아볼 수 있었다.
"미래 지향적 성찰의 수필"이라는 넘치는 평을 내려주셨지만, 글에 뚜렷한 정체성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나만의 글의 정체성을 찾아가기 위한 여정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어쩌다 공모전이 아닌 <그러니까 작가>가 되기 위한 과정을 탄탄히 밟으며, 스스로에게 떳떳한 행보로 나아가고 싶다.
앞으로 10년, 20년이 걸리더라도 지금처럼 꾸준함을 무기로 한 글쓰기를 토대로.
경험과 성찰을 매개로 한 수필의 탄생을 위해, 오늘도 나는 그렇게 글을 써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