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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을 쓰는 작가 Feb 14. 2023

그러니까 사랑

첫사랑 말고 첫 연애

나의 17살, 5년 동안 홀로 끙끙 앓으며 짝사랑만 했던 나의 첫사랑.

운 좋게 그의 고백으로 만남은 시작됐지만 서로의 성격이나 성향은 너무나도 달랐고, 그는 여자친구였던 나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  

결국 첫사랑과는 3개월 만에 끝이 났고, 사랑의 지독한 쓴 맛을 보고 이성에 대한 마음은 완전히 닫혀있었다.

사춘기 시절이던 고등학교 때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나는 절대 결혼 따위는 하지 않을 거야”라고 공공연히 주변에 말하고 다녔다. 친한 친구들도 남자 친구가 점점 생기기 시작할 무렵이었고, 나는 그런 모습을 부러워하면서도 관심 없는 척하면서 오로지 공부에만 몰두하려고 고군분투했던 예민한 사춘기 소녀였다.


그러던 사춘기 소녀가 20살을 맞이했다. 20살이 되면 무미건조하던 내 인생에도 뭔가 큰 변화가 올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나는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지독한 현실과 맞닥뜨렸다.

아나운서나 리포터가 꿈이던 나는 꿈에 그리던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하였다.

꿈은 거창했으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재능과 끼로 똘똘 뭉친 친구들이 즐비했고, 그런 나는 그들 속에서 마치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불편하고 힘들었다.

그렇게 1학기를 마치고 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문득 머지않은 미래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정말 선망했던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나한테 맞는 걸까?’

‘나는 남들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인데...’

그랬다. 나는 자신이 없었다. 나는 수많은 고민 끝에 과감히 자퇴서를 학교 측에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그 해 9월, 2학기 시작을 알리는 가을이 왔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다들 각자의 전공에 맞게 열심히 공부하고 잘 적응하는 모습이었다.

마음이 공허하고 힘들었다. 나는 이 중요한 시기를 어떻게 보내야만 나의 20살을 남들과 비슷하게라도 보낼 수 있을지 고민이 됐다.

우선 토익학원을 등록했다.

취업을 위해서 토익 점수는 필수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렇게 토익 학원을 3개월째 듣던 추운 겨울 어느 날, 같은 클래스에서 수업을 듣던 의문의 누군가로부터 담당 선생님을 통해 나에게 쪽지를 건네왔다.

그 쪽지에는 의문의 전화번호와 '연락 주세요'라는 짧은 문구가 쓰여있었다.

‘내가 수업을 들으면서 얼핏 옆쪽으로 봤던 그 사람인가?’

‘누굴까?’ 정말 궁금했다. 너무 외로운 마음에 밀당이고 뭐고 없었다.

쪽지를 건네받았던 그날 저녁 바로 문자를 보냈다.

며칠 동안 연락을 하면서 서로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그 사람은 내가 살짝 관심이 갔었던 4살 많은 오빠였던 것이다.


일주일 후, 약속대로 우리 둘은 만나게 되었고, 나는 제대로 된 데이트라는 것을 난생처음 해보게 되었다.

너무 떨리고 설레고 만감이 교차하던 날.

우리는 그냥 서로에게 자석에 끌리듯 끌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만나자마자 오빠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왜 저한테 쪽지 남기신 거예요?”

그러자 오빠는 “매일 평소처럼 영어 수업을 듣고 있는데 며칠 전에 토익 선생님이 건넨 농담 섞인 이야기에 교실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던 그 찰나에 내가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봤는데 네가 환하게 웃고 있더라.

근데 네 주위가 환하게 빛이 나더라고” 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의 진심 어린 눈빛과 목소리는 추운 겨울이라 얼어있던 나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녹여주었다.  

그렇게 2번을 더 만난 후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우리는 남들과 똑같은 보통의 연애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 무슨 일인가? 기념일을 확인해 보면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만난 지 100일이 되는 날은 나의 생일이었고, 우리가 만난 지 1년이 되는 날은 오빠의 생일이었던 것이다. 참고로 오빠의 생일은 음력 생일 10월 13일이고, 우리가 만난 그다음 해가 하필 윤달이 껴서 12월로 넘어가는 시점이 되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우리는 서로 너무 놀라면서도 신기해했다.

그런 운명 같은 이야기 속에서 나는 우리가 보통 인연은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던 것 같다.

그렇게 보통의 연인들처럼 영화관 데이트, 야구장 데이트, 맛집 탐방하기, 스티커 사진 찍기, 친구 커플들과 같이 여행하기 등 20년간 살면서 못해봤던 데이트는 모두 해봤다.


그렇게 7년의 연애를 마침표로 그 오빠는 지금 현재 나의 남편이 되었고, 우리는 두 아들의 부모가 되어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서로가 굳이 말을 안 해도 편한 사이임은 물론이고, 연애 7년, 결혼 10년 차인 지금도 한결같이 “아직도 나는 너랑 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아”라고 한결같이 얘기해 주는 남편에게 감사하다.

사랑 표현에 서툰 나를 이해해 주고, 한결같이 자상한 남편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행복한 여자임을 느낀다.

나는 오늘 아침에도 속으로 얘기한다. ‘사랑해 여보’라고 혼잣말로.

아니 오늘만큼은 퇴근하고 오면 말로 직접 표현해 줘야겠다.

“사랑해 여보”라고. 그리고 “내 옆에 있어줘서 너무 고마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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