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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을 쓰는 작가 Feb 14. 2023

그러니까 사랑

나는 왜 이토록 스포츠에 열광하는 걸까?

나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맞벌이로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개구쟁이 남동생은 항상 밖에서 노느라 하교 후에 바로 오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내성적이던 나는 학교 마치고 집으로 바로 돌아오면 딱히 할 일이 없어서 누가 시키지도 않은 설거지도 스스로 했고, 간단한 청소와 정리정돈을 해왔다.

그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레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여느 친구들과 다를 것 없이 만화영화를 보곤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퇴근하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시간이 되면 항상 텔레비전 리모컨은 아버지 차지였다.

아버지는 야구, 테니스, 배드민턴 등의 각종 스포츠 시청을 좋아하셨다.

아버지는 운동신경이 좋으셔서 테니스로 항상 사내대회 대표로 나가서 수상을 하셨고, 사내 야구 경기도 투수로 선전하면서 '고리의 박찬호'라고 불리신다고 자랑스레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23살이란 어린 나이에 한 가정의 아버지가 되었다.

무뚝뚝하셔서 사랑 표현에 서툴렀고, 우리 남매에게는 누구보다도 엄하셨기 때문에 정말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였다.  

그러던 아버지가 스포츠를 시청하실 때만큼은 누구보다 해맑게 웃으셨고, 국제 경기를 할 때면 우리나라가 점수 낼 때마다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으셨고, 승리의 세리머니도 보여주곤 하셨다.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나도 함께 웃고 있었다.

평소에 가족 간의 대화가 없었던 분위기여서 그럴 때만큼은 아버지와 함께 대화를 하고 싶었던 마음이었을까. 스포츠에 대한 관심과 궁금증이 일었고, 아버지와 같이 각종 스포츠를 시청하면서 텔레비전에 나오는 각각의 스포츠에 대한 규칙을 물어보면서 함께 즐기고 있었다.

"아빠, 축구는 어떨 때 페널티킥이 되는 거예요?"

"야구 경기에서 저 상황에서 3점 홈런은 어떻게 된 거예요?"

"테니스의 서브 평균 속도는 어떻게 돼요?"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다정하게 대답해 주셨다.

" 페널티킥은 축구 경기에서 수비 선수가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고의적인 반칙을 범했을 경우에 부여하는 킥을 말해."

"야구에서 주자가 1, 2루든 2, 3루든 주자가 2명인 상황에서는 홈런을 치는 선수까지 인을 하기 때문에 총 3점 홈런이 되는 거야."

"테니스는 평균 150~200km가 나오는데 톱랭크인 훌륭한 선수들은 200km 이상 나온단다."

그런 물음 속에서 나의 스포츠 지식은 점점 쌓여갔고, 올림픽 경기나 아시안게임, 월드컵, 격투기까지 각종 스포츠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생기면서 스포츠 경기를 전문적으로 해설하는 해설자분들의 목소리도 주의 깊게 듣게 되었고, 나는 그만큼 스포츠를 열렬히 사랑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는 점심을 먹고 거의 매일을 여자 친구들과 고무줄을 하였는데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일명 에이스였다. "나 너랑 편먹고 싶어. 나 뽑아줘, "

체육시간에는 피구 경기를 주로 하였는데 아버지를 닮아 운동신경이 있었던 나는 공격과 수비를 곧잘 했다.

파워풀한 공격력을 장착한 데다가 요리조리 공을 잘 피해 다녔던 것이다.  

그 덕분에 마지막까지 항상 남아있게 되어 팀승리의 주역이 되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여자인 나는 어려서부터 왜 이렇게 유독 스포츠에 열광할까, 스포츠를 이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나에게 있어 스포츠는 아버지와의 대화 수단이었고, 친구 같은 아버지를 동경했던 의미였고, 친구들에게 피구와 고무줄을 잘하는 나와 같은 편이 되고 싶어 했기 때문에 자신감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결혼한 현재도 아버지는 나에게 어려운 존재라 여전히 존댓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스포츠라는 공통 관심사를 통해서 오늘도 대화의 포문을 연다.

"아빠 오늘 새벽에 류현진 던지는 거 봤어요?"

얼마 전에 여자 테니스 국제 경기를 보면서도 "어떻게 저 가녀린 몸에서 저런 서브를 넣을까요?"

사소한 대화지만 침묵을 깨는 동시에 아버지께 친근하게 다가가는 수단으로써 스포츠는 나에게 큰 의미를 가진다.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부모님의 마음을 어느 정도 알아가고 있는 과정이다.

한 직장에 40년 차인 성실한 아버지를 볼 때면 짠하기도 하고 힘든 내색도 안 하시고 묵묵히 늘 같은 자리에서 우리를 키워오셨을 거란 생각에 아버지께는 물론 어머니께도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23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된 아버지의 인생. 동시에 나의 23살을 생각해보기도 하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철부지였던 23살의 나는 나랑 성격이 똑같은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항상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어떻게 아빠의 저런 모습까지 나는 똑같이 닮았을까?', '아빠 닮은 내 모습이 싫어'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닮은 내 모습이 좋다.

아버지를 닮은 외모는 물론, 성격은 소심하긴 하지만 그 속에서도 상대를 배려하는 모습까지도.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스포츠는 아버지의 존재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기에 나의 스포츠 사랑은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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