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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el May 07. 2024

잠.

잠의 충고


잠이 마구마구 달려온다.

'천천히'를 반복해서 말했지만 잠은 그 말을 못 들은 척 계속 강도를 높여가며 다가온다.

가뜩이나 멘탈 허약한 나. 나를 향해 달려오는 잠을 거부하지 않겠다는 듯 포근한 이불속으로 숨어든다.

매번 느끼지만 이불이 주는 감촉은 참 좋다.

몸에 와닿는 여름 이불의 까끌한 시원함,

겨울이면 극세사의 황홀한 부드러움이 몸에 딱 붙어 잠으로 가는 길을 넓혀주고 잠을 재촉한다.

그렇게 이불과 한 몸이 되어버리면 어느새 내가 알지 못하는 잠 속의 또 다른 세상과 만나게 된다.

어느 폭포수 아래를 거닐거나 멋진 이성에게 이끌려 따라다니기도 하고

고인이 되신 아버지가 나타나 따뜻함을 주시기도 하지만 불호령을 치시기도 한다.

또 어느 때는 왜인지도 모른 채 밤새 달리다가 눈떠보면

분명 내 육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누워있기만 했는데도 삭신이 아프다.


잠은 늘 나에게 마카롱의 달콤함을 주지만 그 반대인 경우도 부지기수다.

책상과 친해보려 하거나 마음먹고 뭔가 하려고 하면 잠이란 놈이 내 눈두덩이에서 뜀박질이라도 하는지

아니면 눈꺼풀에 매달려 그네뛰기라도 하는지 눈꺼풀은 사정없이 아래로 쳐져 내린다.

눈을 비비고, 세수를 하고, 그것도 안되면 사약?을 한 사발 들이켜본다.

남들은 밤에 진한 커피 향에 스치기만 해도 잠과의 이별로 밤새 자는 듯 마는 듯한다는데.

나는 그마저도 허용되지 않는다잠순이엉덩이만 붙이면 온몸이 자울자울잠을 이기는 방법은 없을까?.


한낮 뜨거웠던 해가 물러가고 달님이 옅은 빛을 보낼 때 나는 일을 하기 시작한다.

낮동안 고단했을 그들에게 이제는 좀 쉬라고 기웃거리며 그들을 어루만져본다.

나의 작은 속삭임에도 쉽게 무너지는 사람들도 많다.

하루가 준 고단함을 주체하지 못해 먼저 나를 붙잡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허약한 멘털이 어둠이 찾아오자 반가운 듯 무너지는 경우도 빈번하다.

하지만 열심한 나의 유혹에도 뻣뻣한 고객?도 있다.

유혹하면 할수록 멀리 달아나려 애쓰는 사람들.

찬물로 세수를 하고 몸에 좋지 않은 커피란 놈을 연거푸 들이키며 나를 거부하는 그들.

그럴때는 나도 지친다그냥 둬버린다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가 나를 잡아당기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며 본인들 마음대로 하는지도 모른다.

나를 강하게 거부하는 그 행위로 인해 나중에는 내가 아예 그들에게 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아무리 나를 찾아와도 나 역시 철창문 잠가버리고 그들을 거부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불면의 밤으로 더 큰 괴로움을 겪게 될 테지.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의 작은 유혹에 무너지는 당신은 오히려 건강한 삶을 사는데 좀은 유리할 수는 있겠지만

유혹을 이겨내는 힘을 조금은 키워주면 좋겠다고.

반면 나의 유혹을 강하게 거부하는 당신에게는 호통치고 싶은 마음이 좀 생긴다.

어떤 일을 하기 위해 혹은 해내기 위해, 나를 물리치겠다는 심산으로  늦은 밤 카페인을 몸속에

넣게 되면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일은 해낼 수 있을지 모르나

그것이 과도하게 되면 나와 만나기 점점 어려워지게 될 것이라고.

사람들의 뇌가 잠과 만나 낮을 정리 해야 하는데 시기를 놓치게 되고

몸의 장기들도 잠 속에서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는데 그것을 하지 못하게 되면

그 몸이 가져야 할 면역도 떨어지고 정작 열정을 다해야 할 한낮에

먼저 나를 찾아와서 중요한 시간에도 온몸을 지울 거리게 될지 모른다고 말해주려 한다.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대화하듯 나와도 대화해 주면 좋겠다.

정말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면 나도 그들의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근처에 덜 얼씬거릴 텐데.

나에게 대화해주지 않고 애먼 카페인들만 축내고 있으니 좀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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