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가고 싶다. 머물고 싶다...근데 또 언제 가지??
뉴질랜드 1일 차 (2024. 12. 21일)
이국땅에서 가족을 만난다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작은 조카(K)의 용기 덕분에 우리는 오클랜드 공항이라는 장소에서 재회했다.
일주일과 이 주일간 머물 계획인 나와 P는 미리 로밍 신청을 해왔지만 언니는 한 달간 머물 계획이었다.
공항에서 K의 도움으로 유심칩을 구입했다.
K는 우리를 마중하기 위해 그 아침에 적어도 06:30전에는 일어나야 했을 것이다.
K가 사는 곳에서 공항까지 약 3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K는 북섬 타우랑가에 살고 있다.
한국인이 많지는 않다고 하는데 작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우리는 공항 주차장, K의 차량으로 이동했다. 일산 도요타였다. 운전석은 우리와 반대였다.
그곳에서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외제차가 태반이었고 비교적 일본차가 많다는 것이 K의 설명이었고
실제 일본차가 많이 보였다.
차량으로 이동하는 중 보이는 야트막한 산들과 그 바로 위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구름은 우리가 바라던 살고 싶은 이상향이었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 했던가? 그런 것을 꿈꿔보지만 직접보지 않으면 꿈은 꿈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광경에 연신 놀라며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넓게 펼쳐진 자연속에 띄엄띄엄 보이는 건물 중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넓은 부지를 사용해 1층 기와처럼 지어진 맥도널드로 들어갔다.
집까지 가려면 한참을 달려가야 해서 맥도널드에서 브런치를 할 요량이었다.
비교적 입맛이 까다로운 노모시지만 맥도널드 선택에 있어서 입맛을 염려할 필요가 없었다.
요즘 할머니들이 패스트푸드 입맛에 얼마나 익숙해져 있는지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엄마도 맥에 근무하는 P덕분에 햄버거랑은 아주 친밀하니까.
K는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기에 중간중간 휴식 겸 우리에게 뉴질랜드라는 곳을 보여주었다.
마침 마오리족 마을 앞을 지나는데 경찰들과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광경이 보였다.
아마도 부족 중 누군가가 죽은 모양이라고 했다. 뉴질랜드는 마오리족의 전통의식 행사를 존중해준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나의 영상을 보여줬다. 영상 속 그날이 마오리족 어떤 행사가 있는 날인데 K가 마침 업무로 차량이동 중일 때 마오리족의 행사와 마주치게 되었다고 한다. 그 행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고 했다.
그때 촬영한 영상이라며 보여주는데 상의 탈의한 채 문신으로 외모를 꾸민, 하카춤을 추는 원주민의 전통의식 행사 모습이었다. 뉴질랜드는 그렇게 지체되는 시간은 직장에서도 용인해 준다고 한다니.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뉴질랜드의 정체성을 생각해 보면 이해되기도 했다.
어느 나라나 전통이 있지만 뉴질랜드도 마오리족의 하카가 유명하단다. 눈을 크게 뜨고 혀를 내밀거나 구호를 외치면서 발을 구르고 손으로 가슴이나 허벅지를 강하게 때리는 것이 특징인 하카춤.
하카춤의 기원까지는 접어두고, 전쟁에 나가기 전 승리를 기원하기 위해 추던 전통춤이자 의식이라고 한다.
요즘엔 스포츠에서도 상대방을 기선제압하기 위해 많이 한다나 어쩐다나.
작년엔가 뉴질랜드 의회에서 마오리어 탄압에 저항하는 21살의 마오리 출신 의원이 법안을 찢으며 하카춤을 추었던 것은 유명하다.
우리는 뉴질랜드를 드라이브하고 시장을 보고 이른 저녁식사 시간에 맞춰 집에 도착했다.
오래전 언니가 알려준 K의 집주소를 구글링 했을 때 보았던 사진 속 장면과 똑같은 마을 장면을 만났다.
주소검색 후 실물보기하면 똑같게 나오기 마련인데도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마을은 모두 1층 주택들이었다. 시가지로 나가면 2-3층의 건물을 만날 수 있었지만 K의 집 주변은 주택가였다. K의 집도 그랬다.
뉴질랜드에서 K의 신분은 정착되었다지만 K는 경제 사정까지 안정화된 교민은 아니었다.
앞을 보고 달려가야 하는 시작하는 신혼부부였다. 그곳의 법에 따라 집주인에게 주세를 지불하는 세입자였다.
(그 집...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니 입구 오른쪽에 건식 화장실이 있었고 맞은편에는 신발장과 세탁기가 위치해 있었다. 화장실과 벽을 둔 오른쪽에는 좁다란 복도에 첫 칸은 욕실이었고 그 옆에는 우리가 기거한 차후 나를 할머니라 부르는 녀석의 방이 될 공간이 있었다. 그 방의 문과 ‘ㄱ’자 형태로 K부부의 방, 우리네 안방이 있었다. 출입문 열고 들어와 만난 건식 화장실앞에서 직진?하면 거실이었다. 거실 왼쪽은 안쪽으로 직사각형 공간의 주방이 보였다. 신발장과 세탁기 벽 너머에 위치한 것이다. 우리네 집 구조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조금 생소한 것은 건식 화장실과 거실뿐 아니라 바닥에 고정 카페이 깔려 있었다. 다니기에는 편하지만 일상의 이물질이 묻거나 오염되었을 때가 무지 걱정되었지만 그건 그쪽의 생활 문화라 하니 조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사나 기타의 문제 발생 시 카펫을 전담 청소해 주는 직업도 있다고 한다. 우리네 입주 청소처럼..
그리고 주방과 연결된 거실 한쪽의 큰 원탁 식탁에서 바라다 보이는 창문너머 마당 잔디와 마을 풍경이 주는 여유로움은 나의 로망과 일치하는 지점이다.)
집에 도착했을 때 거실에 한 상 차려진 모습. 질부의 고생이 느껴졌다.
갓난아기와 함께 특히나 시댁 가족들을 맞이할 준비로 바빴을 그 부담되는 마음.
사전에 다 소통이 되었음에도 막상 도착하니 여러 감정이 교차되었다.
(혹자는 ‘시’자가 그렇게 뭉쳐서 가는 것이 맞냐고 타박할 수는 있겠으나 그건 가족상황에 따라 다른 문제이니 패쑤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뉴질랜드에서 유명하다는 초록 홍합을 직접 먹게 되었다.
실제 조갯살도 크고 초록빛 도는 홍합을 와인과 함께 먹었던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문제는 식사하고 노모가 소파로 옮겨 앉는 중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노모가 앉았던 자리에 붉은 꽃잎을 만든 흔적이 보였다.
‘엄마, 음식물 흘리신 거예요?
'으~응, 초장이 떨어지데...',
'이렇게 흘려놓고 말씀도 안 하시고 일어나시면 어떡하시냐?' 라고 내가 크게 구박?하니
K와 질부가 더 민망해하며 그런 일 종종 있으니 괜찮다며 K가 나에게 귀여운 눈총을 보낸다.
K와 질부는 '할머니, 닦으면 돼요. 걱정하지 마세요!' 라고 할머니를 안심시키며 물티슈로 정리했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피곤하신 할머니와 증손주는 꿈나라로 먼저 여행을 시작했다.
'시' 자 지만 우리는 친구 같은 분위기로 뉴질랜드 오는 길에 있었던 에피소드와 뉴질랜드 이야기를 나누며
와인 한 병을 더 비운 후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그곳은 기본 물가도 그렇지만 전기요금도 만만치 않은 나라라 최대한 햇빛을 활용하고
우리나라 패턴과 달리 저녁시간도 조금 이르지만 취침시간 또한 달랐다.
물론 계절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그때는 아침도 우리보다 훨씬 더 빨리 시작한다는 사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