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방문기 Ⅷ

왜 다르게 느껴질까?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은데...

by rael

뉴질랜드 5일 차 (2024. 12. 25일)

많은 시간이 지난 후 그날의 기억을 길어 올리려고 하니 쉽지가 않다.

저만큼 달아나버렸거나 휘발되어 버린 기억들. 사진첩에만 남아있는 추억들이 그리워진다.


처음으로 타국에서 성탄절을 맞았다.

천주교 신자인 나는 가까운 성당을 찾아 미사를 드려야 함이 마땅하나 그러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엄마를 비롯하여 함께한 가족들 모두 불교 신자인지라 종교와 상관없이 크리스마스 자체를 즐기는 분위기다.


작은조카(K)네에 방문한 친정엄마와 언니, 큰 조카(P)와 나는 크리스마스 아침 뉴질랜드 산타클로스로부터

재미난 선물을 받게 되었다. 사이즈가 다른 똑같은 잠옷.

모두가 귀여운 잠옷을 입고 한바탕 웃었다. 감동 먹기에 충분한 K와 질부의 정성.

우리 모두가 똑같은 잠옷을 입고 K부부가 준비한 크리스마스 포토존 앞에서 사진도 찍고 준비한 맛난 음식을 먹으며 각자가 경험한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나누었다.


waikareao walkway

K의 집에서 조금만 걸어 나오면 남태평양을 마주하게 된다. 남태평양에 한 점 같은 섬나라인 뉴질랜드의 가장자리 마다가 바다와 맞닿지 않은 곳이 없겠지만 타우랑가 역시 바다와 함께하는 동네였다.

아침시간 가족들과 해피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후 언니와 나는 뉴질랜드에서의 일상을 즐기기 위해 집 근처 ‘Waikareao Walkway’를 산책...트레킹 했다.

바닷물이 아침에 밀려들었다가 빠져나가는 꽤나 넓은 하구를 중심으로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었다.

타우랑가에서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산책로라고 했다.

산책하며 만나게 되는 바다와 숲, 푸른 하늘과 들판, 습지 등 다양한 풍경은 가히 소문날만했다.


루돌프 머리띠를 하고 집을 나서니 만나게 되는 현지인들과 메리크리스마스!!,라고 인사를 나누며 웃음을 건넨다. 그들도 우리와 비슷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모양이다.

산책 나온 커플들과 조깅하는 사람들도 제법 보였다.

50대 중. 후반을 달려가는 언니와 나는 바닷물이 빠진 갯벌을 맨발로 걸으며 아이처럼 신나 했었던 기억이 난다. 집에서도 하지 않았던 물멍을 그 먼 나라에서 해본다.


산책로에는 길이 헷갈리지 않도록 간간이 세워둔 이정표도 보였고

지진이나 해일을 만났을 때 피신할 수 있는 장소를 표기한 표지판도 세워 놓았다.

산책하는 중, 한번 가본 후 친숙함이 느껴지는 뉴질랜드의 상징인 망가누이 산도 저 멀리 보였다.

전력질주로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의 모습은 여기나 거기나 똑같아 보여 웃음 짓게 만들었다.

아름다운 꽃 식물로 둘러싸인 예쁜 집도 보였고, 마당에 작은 수영장인듯한 그곳에서 가족들만의 물놀이 시간을 보내는 집도 낮은 담 너머로 본의 아니게 엿보게 되었다.

참으로 평화로운 그곳의 풍경이 마치 우리 동네인듯한 착각을 불러오게도 했다.


보편적인 걸음으로 3시간 정도 걸린 다했는데 절반쯤 갔을까?

바다 쪽을 보니 물이 빠진 그곳에 바다 안에 있는 조그마한 섬으로 가는 길이 드러나보였다.

멀리서 보이는 섬에는 민가인 듯 희미하게 건물이 보이기도 했다.

한번 가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섬까지 가는 길이 제법 길어서 패수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K는 우리가 그곳을 가지 않기를 잘했다고 했다. 그곳은 마오리족이 신성시하는 섬이며,

그들의 조상의 제를 지내는 곳이라 외부인이 드나들 수는 없는 곳이라고 한다.

육교를 넘어가도 성당은 멀었다.ㅠ

산책로 반환점을 지나니 시가지를 만났다.

큰 대로를 기점으로 이쪽은 바다와 인접한 우리가 걷고 있는 산책길이고 저쪽은 도심인 듯했다.

구글링을 통해 확인하니 대로를 건너 멀지 않은 곳에 성당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성당마다의 색깔은 있을 테지만 성당이 가진 고유함은 세계 어디나 똑같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럼에도 뉴질랜드의 성당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성탄미사에 참례 못한 아쉬움이 성당을 구경이라도 하고 싶었었나 보았다.

육교를 지나 약간의 비탈 산길을 올라가니 새로운 동네가 나왔다.

성당 방향으로 걸어가는데 성탄절임에도 거리는 한산해서인지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실제 성당까지의 거리는 시간이 제법 걸려서 조금 가다가 아쉬움을 남기고 되돌아 나왔던 기억이 난다.


언니와 함께 우리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았다. 산책로를 따라 삐뚤빼뚤 원을 그리듯 걸어온 그 길.

산책하지 않았으면 알지 못하니 후회 따윈 없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걸으며 보았던 많은 것들이 걷지 않았으면 후회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길을 걸으며 우리 사는 곳과 다른 모습을 이야기했고 저편으로 사라질 기억을 탓하지 않기 위해 장면마다 카메라에 담았다.


달아난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 사진첩을 뒤적이다 나도 모르게 미소 짓고 있는 나를 본다.

그때 그 시간 속에서는 뉴질랜드 살이가 내일 하루 남았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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