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한 장, 그게 전부였다.

사고 싶은 거 다사

by 오그레스

결혼하고 딱 한 달쯤 지났을 때였다. 하루는 우편함에 두툼한 봉투 하나가 도착했다.

“ㅇㅇ카드사”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봉투를 열었다. 그리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금액, 사용처, 날짜.
그 모든 숫자들이 내가 알고 있던 현실과 너무 달랐다. 남편의 월급을 알고 있었기에 더 충격이었다.


‘이걸 다 갚고 나면 남는 돈이 없잖아.’
‘나는 앞으로 뭘로 살아야 하지?’


나는 카드 한 장을 받았다. 그 카드가 내 생활비였다. 남편은 한 번도 현금을 건넨 적이 없었다.


“카드 있으니까 필요하면 써.” 그게 전부였다.


그 카드의 결제 대금은 누가 갚아야 하는지 묻고 싶었다.
혹시 내가 그 카드로 뭐라도 사면, 또 빚으로 남는 걸까?

아니면 ‘임신해도 일해서 네가 갚아’라는 말 없는 명령이었을까.

남편은 경제적인 개념이 없는 건지, 너무 이기적이었다. 카드 대금을 확인하고 계산하면 뻔한 금액인데...

남편은 모른 척하는 듯하다. 그저 자신이 결혼하기 전에 생활했던 패턴을 놓치기 싫은 거다.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 싫어하는 듯 보였다. 혼자 사는 건 외롭고 같이 살려니 골치 아픈 건가?


그는 늘 “나는 대학 다닐 때부터 아르바이트해서 등록금도 벌고 생활도 했다”라고 자랑처럼 말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힘들게 번 돈이니 자기 자신에게 쓰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남한테는 인색하면서 자신에겐 아낌없었다. 자신이 힘들게 벌었으니 쓰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고 한다.

힘들게 일한 사람에 대한 보상이라나 뭐라나...


나는 반대였다. 만약 내가 그런 인생을 살았다면, 더 악착같이 모았을 것이다. 나는 그랬다. 나에게 돈이 생기는 길은 내가 열심히 일해서 정당하게 받는 월급뿐이었다.

모두 같은 길을 걸을 수는 없다지만,

현재는 결혼도 했고 아기도 태어났으니까 미래를 위해서 돈을 더 많이 저축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상황이 변했으니까 거기에 맞춰서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신랑은 미래에 대한 대책이 없다. 신랑은 미래에 대한 책임감도 없다.

그래서 더 답답하고 화가 났다.


“생활비는 카드로 해결하면 되잖아.”
그 말 한마디로 모든 걸 정리하려 했다.


그가 말하는 ‘생활’에는 아마 임신한 아내도, 미래도 포함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절감했다. 아, 이 결혼은 팀워크가 아니다. 결혼을 하면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안전하게 채워지는 줄 착각했다.

각자도생이다. 심지어 나는, 짐이었다. 아니면 일당도 못 받는 집안일을 해주는 정도의 그런 사람인가?


돈을 아껴 쓰라고 빚도 갚고 저축을 해야 하지 않냐고 제안을 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왜 그리 돈독이 올랐어? 매번 돈, 돈, 돈 이 정도면 많이 벌어오는 건데 자꾸 왜 그래?"

하며 그 주제가 다시는 또다시 화제가 되지 않도록 화를 냈다. 대화는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혼자, 싸움을 시작해야 했다.

돈 없는 싸움, 이해받지 못하는 싸움.


그때부터였다. 제일 먼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로 했다. 작은 것부터 실천하기로 했다.

우선 내가 벌어서 모아둔 돈을 아끼기로 했다. 아기를 위해 비상시에 쓸 돈이지만 현재는 신랑이 벌어온 돈으로는 아기 분유도 기저귀도 사지 못한다.


그래서 제일 먼저 장 보러 가기 전엔 꼭 밥을 먹고 갔다. 배가 부르면 장을 볼 때 군것질 거리도 사지 않고 꼭 필요한 것만 사게 된다. 천 원짜리 음료수 하나도 사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다.

폰에 미리 사야할 것들을 적어서 목록을 보면서 장을 봤다.

과일은 사치다. 채소는 건강에 좋은 거다. 다이어트도 되고 좋은 거다.

이런 생각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나를 어르고 달래면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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