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께서 진단하심 어머니께서 진단하심
어느 누구에게도 나의 아픔은 새의 깃털보다 가벼운 것이었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싫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서 좀 더 쉬고 싶다.
창가로 새어 나오는 햇살이 나의 눈을 덮는다.
사실은 일어난 지 30분은 훨씬 많이 지난 것 같다.
이불로 내 눈을 덮고 다시 잠들고 싶었다. 영원히...
그렇게 영원히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데로 지낼 수가 없다.
그런 생각도 잠시, 아이들이 하나, 둘 씩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한다.
내가 움직이지 않고 자는 척을 하고 있었더니 아이들은 나를 깨운다.
배고프다고 한다.
나는 배가 고프지 않다.
식욕도 없고 요리를 하고 싶은 의욕도 없다.
아이들의 배고픔을 채워줄 사람은 나뿐이다.
힘겨운 한숨을 쉬면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조금 짜증이 나지만 참아본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보내기를 반복하다 보면 조금 참을 수 있다.
내가 낳은 아이들이니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
아이들이 무슨 죄야. 아이들을 봐서라도 살아야지. 하는 생각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생각들이 포기하려는 나를 붙잡는다.
아이들은 서로 입맛이 다르다. 한 가지 음식을 할 수 가없다.
같은 메뉴를 반복해서 먹지도 않는다.
그래서 매 끼마다 새로운 메뉴를 아이들에게 선보여야 한다.
큰 솥에 곰탕이나 소고기뭇국을 끓이거나 카레나 짜장을 잔뜩 하는 그런 요리는 내게는 사치이다.
매일 매끼 조금씩 1인분씩 요리를 한다.
그래도 남으면 내가 처리한다.
내가 매콤한 두부조림이 먹고 싶어도 아이들은 매운 음식을 못 먹어서 간장 두부조림을 한다.
아이들은 내가 해준 음식이 맛없다고 안 먹고 투정 부리는 일은 없다.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투정 부리고 짜증 부리고 우는 아이들이었으면,
나는 벌써 모든 것을 포기했을 거다.
아이들이 나를 보고 웃는다. 햇살에 비추는 해맑은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예쁘다.
아이들이 행복해 보이니 나도 행복하다.
사실은 마음 한 구석은 우울하다.
나도 잘 모르겠다. 우울하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고 아직 나는 내 감정이랑 친하지 않다.
내 감정을 나도 잘 모른다.
내 감정과 나는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 따로 있는 신랑과 나 같은 존재이다.
어둑어둑 저녁이 된다.
해가 지는 노을이 나는 좋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말이 적어진다.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나 혼자 생각이 많아지기도 하고 우울해진다.
잠든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생각한다.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바다에 놀러 갈까?
차를 운전한 채로 바닷속까지 들어가면 너무 추울까?
차를 운전한 채로 바닷속까지 들어가면 너무 어두울까?
엄마, 사랑해
매일매일 말해주는 아이들과 함께 그렇게 사라진다면
내가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걸까? 아니면 아이들의 행복을 빼앗는 걸까?
나 혼자 사라진다면,
내 아이들은 누가 키워줄까?
나 없이 자란 아이들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스트레스를 풀다 온 신랑에게 말해본다.
나, 우울증 인가 봐. 병원 가볼까?
그래? 조금 더 지켜봐 봐. 아직 까지 그렇게 심각하게 보이지 않는데? 뭐가 문젠데?
괜히 말을 꺼냈다. 위로를 받고 싶었다. 그냥 따뜻한 한 마디로 위로를 받고 싶었던 거다.
며칠 뒤, 명절이어서 시댁에 놀러 갔을 때 신랑은 어머님께 마누라가 우울증 걸린 것 같다고 고자질을 했나 보다.
어머님이 조용히 나에게 오시더니,
너 요즘 할 일이 없니? 한가해?
아니요, 아이들 돌보고 바빠요.
네 신랑이 그러는데 네가 우울증 같다고 했다고?
네, 요즘 좀 무기력하고 기분이 계속 안 좋고 이상한 생각이 많이 들어서요.
아이들 생각해서 병원에 가볼까 해서 신랑에게 상의를 했었어요.
제가 병원에 가려면 누군가가 아이들을 대신 돌봐줘야 하잖아요.
무슨 우울증이야? 한가하나 보네. 우울증도 걸리고... 나는 돈 버느라 우울증 걸릴 시간도 없었어. 먹고사는데 바빠서!
아... 네.
무슨 할 말이 있겠나? 시어머님만 아니면 머리를 뜯어버리고 싶었다.
나는 아프다고! 내 마음이 아프다고! 보여줄 수도 없었다.